전남대 5·18연구소 前 소장 최영태 교수 인터뷰

▲ 전남대학교 최영태 교수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이현정 기자] “70~80년대는 학생과 시민이 격렬하게 투쟁하는 것이 민주화를 위한 최대한의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공동체를 위해 더불어 사는 정신을 발휘하는 봉사정신이 5·18정신의 현대적 승화라고 봅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말처럼 광주의 80년 5·18민중항쟁은 지금까지 세 번이나 모양새가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4일 만난 최영태(전남대 사학과) 교수는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5·18의 정신계승과 방향 모색에 대해 가장 현실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광주출신으로 해외출국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삶을 광주에서 보냈으며, 전남대부속5·18연구소의 전 소장을 역임했다. 본지는 그와 함께 짚어본 5·18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색하는 시간을 마련해 보았다.

◆ 5·18, 순수했던 이념이 시민들을 움직였다

80년 5월, 계엄군의 도시 장악과 시민군의 항쟁은 마치 전쟁과도 같은 양상을 보였고 언론 탄압과 광주권내 시내전화 두절은 사실상 도시 전체의 마비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가운데 5월 27일 죽을 것을 알면서도 수백 명의 시민군이 도청에 남아 마지막 항쟁을 벌이며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70~80년 당시 5·17비상계엄확대 조치로 전국의 민주화운동이 중단될 무렵, 광주는 과감하게 5·18민중항쟁을 진행했고, 이 소식이 훗날 전국에 알려지면서 이를 계승하는 민주화운동이 전개됐다.

‘왜 광주는 당시 계엄령확산에도 불구하고 항쟁을 펼쳤는가?’라는 질문에 최 교수는 ‘광주만의 특수성’이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정치적 배제를 받던 광주·전남이 정치는 물론 경제적 여건까지 어려워지면서 민주정부에 대한 갈망이 높아졌고 계엄령확산은 시민들의 실망과 분노를 사고 만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외치는 항쟁으로 바뀌게 되고, 이 가운데 계엄군이 무자비하게 학생들을 학살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일반 시민들의 감성을 자극해 시민과 학생들이 모두 합세하는 양상으로 항쟁이 전개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5·18민중항쟁의 성격은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웠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5·18은 타 항쟁과 다르게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사건이었다. 정부는 광주항쟁을 반공주의에 대항하는 세력들로 왜곡시키려 했지만 당시 광주시민들은 반공의식이 아주 투철했기 때문에 결국 광주항쟁의 이념 색깔을 왜곡시키는 데 실패했다”고 전했다.

특히 5·18항쟁 당시 광주 전체가 마비됐어도 은행이나 상점에 약탈 등의 범죄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후일담은 매우 유명한 사례로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5·18민중항쟁의 성격 즉 이념은 매우 투명하게 ‘민주수호’를 외쳤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 5·18항쟁, 한국의 민주화 정착에 촉진제로

30년이 흐른 5·18광주항쟁은 어떤 모습으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을까.

87년 6월 항쟁은 80년 5·18민중항쟁의 정신계승의 발전으로도 볼 수 있다. 최 교수는 이를 7년 항쟁이라 불렀다.

그는 “87년 6월 항쟁으로 인해 민주화의 방향 물꼬가 자리 잡아 전두환·노태우 처벌과 수평적 정권교체, 인권위원회 설치 등 한국의 민주주의 저변이 점점 더 확대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아시아나 제3세계 국가들은 한국을 경제발전에 이어 민주주의 발전에도 성공한 나라로 평하고 있으며, 바로 그런 정치발전의 촉진제에 광주항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경제발전과 더불어 정치발전이 동시 성공한 케이스가 되어 현재는 이를 배우러 아시아 인권운동가와 시민운동가들이 인턴으로 5·18기념재단을 찾고 있는 추세다.

반면 30년이 지나 한 세대가 흘러버린 대한민국의 요즘 젊은 세대들은 5·18에 대한 인식이 어렴풋하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지금 5·18은 젊은 세대가 겪지 못한 역사가 됐다. 역사나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르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볼 수 있다”며 80~90년에는 군부독재 극복을 위한 분위기와 민주화운동이 5·18과 자연스럽게 결합되는 시기였으나 이제는 분리된 시기인 것을 강조했다.

◆ “사회공동체 일원으로 최선을 다하라”

수많은 민주화운동이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도시전체가 ‘민주화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가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이루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처럼 광주는 현재 5·18 정신계승 문제를 놓고 중대한 고심에 빠져있다.

최 교수는 “지금 한국의 정권교체와 삼권분립은 절차상의 민주주의가 막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가 튼튼하게 자리잡기 위해서는 교육·언론·노동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발동되어야 한다”라며 일반적인 현장에서의 민주주의 인식이 5·18 정신계승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전했다.

작은 예로 대한적십자사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신종플루로 인한 헌혈 기피현상에도 불구하고 전남대 학생들의 헌혈 참여도가 전국 1위를 기록했다. 4년 연속 1위를 기록한 것이다.

마치 80년 5월, 무고한 시민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맞아 출혈과다로 쓰러지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헌혈을 통해 봉사한 모습과 오버랩 되는 순간이다.

최 교수는 이처럼 요즘 학생들과 젊은 세대가 5·18 정신계승 및 민주주의 계승을 위해 사회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며, 각각의 현장에서의 민주주의 정신을 잃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는 “지난 세대들이 80~90년대 극렬하게 싸워 쟁취한 민주주의에는 그만큼 흘린 피와 땀, 희생이 따랐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며 “아직 한국의 민주주의가 안정적 단계에 도달한 것이 아닌 만큼 경계의식을 가지고 이것을 지킬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마지막으로 젊은 세대들이 어른들에 비해 이상주의적이고 개혁적인 정신을 품는 것도 필요한 사항이라 전했다.

예전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비현실적이고 무모한 도전이라고 평가된 80년 대학생들의 직전제 요구가 결국 쟁취된 것처럼 말이다.

그는 “사실 5·18 정신의 구체적 정신계승이라는 것은 논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 세대의 현실비판적이며 미래지향적 사고가 한국사회를 발전시키고 나아가 진정한 5·18정신을 계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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