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한나라 무제는 동곽함양과 공근을 대농승(경제차관)에 임명해 소금과 철의 업무를 맡게 했고 또한 경리에 밝은 상홍양을 비서관에 임명했다. 동곽함양은 제나라의 제염업자요, 공근은 남양의 제철업자로서 모두가 대부호들이었다. 이 두 사람을 추천한 것은 대사농(경제장관)인 정당시였다. 상홍양은 낙양 상인의 아들로 비서관이 된 것은 13세 때였다. 이 세 사람이야말로 이익을 꾀하는 데에는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그 즈음 법에 의한 규제는 엄격해 파면되는 관리가 많았다. 군대 동원이 거듭됨에 따라 부역 면제의 자격이나 오대부의 작위(부역면제의 특권)를 구입하는 백성이 늘어나서 병졸로 징발할 수 있는 사람은 줄어들기만 했다. 그렇게 되자 인재 부족의 대책으로 천부나 오대부의 작위를 가진 자를 관리에 임명하도록 하고 관리가 되고 싶으면 나라에 말을 바치도록 했다.  또한 파면된 관리에게는 징벌로 상림원에서 잡목을 베게 하고 곤명자(수중훈련을 위해 만든 사방 40리의 인공호수) 공사에 배치했다. 

다음 해(기원전 119년) 대농에서 소금과 철 담당 차관인 동곽함양과 공근이 황제에게 건의 했다. 

“모름지기 이 땅과 산과 바다는 나라의 재산이므로 산과 바다에서 나는 산물은 천자의 재산으로서 소부(황실의 재정실)에 귀속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폐하의 뜻에 따라 황공하옵게도 대농의 자리를 맡자와 국가 재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원컨대, 제염·제철 사업을 국영사업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 경우 백성들에게 기구를 빌려 주시어 그들의 돈으로 생산시킨 뒤 국가가 한꺼번에 모두 사들이도록 합니다. 본업을 저버리는 장사치들은 철과 염을 사유화하여 부자가 되고자 전매 제도의 저지를 위해서 온갖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멋대로 제철, 제염을 독점하려는 자에게는 기재의 몰수는 물론 금고의 형에 처하겠습니다. 또한 철이 나지 않는 지방에도 소철관을 두어 현에 감독을 일임할 생각입니다.”

그런 다음 동곽함양과 공근은 전국 각지로 나가서 소금과 철의 전매권을 실시하고 그를 위한 관청을 만들고 이전부터 제염, 제철을 경영하던 사람들을 관리로 임명했다. 그 뒤부터 관리의 임용제도는 더욱더 혼란스러워 상인 출신의 관리가 늘어났다. 

무제는 여기서 처음으로 복식이라는 인물을 기용할 생각을 해 냈다. 그리하여 복식을 불러 중랑(궁중 호위관)에 임명하고 좌서장의 지위와 농지 40경(1경은 80헥타르)을 주고 이 일을 나라 안에 포고해 본보기로 삼았다. 그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 

복식은 원래 하남의 농사꾼이었는데 동생이 어릴 때 부모를 여의었다. 그 동생이 30세에 이르렀을 때 복식은 양 백여 마리를 가지고 집을 떠났다. 그때 복식은 가지고 있던 땅과 집 등 모든 재산을 동생에게 주어 버렸다. 그렇게 하여 산에 들어가 양치기에 전념하기를 10년이 되자 양은 천여 마리 이상으로 늘어났고 땅과 집도 마련했다. 그런데 동생은 몹시 무능해 재산을 모두 잃었다. 복식은 그때마다 동생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곤 했다.  

그 시기 한나라는 흉노족을 토벌하는 일에 착수해 빈번히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복식은 장안으로 올라가 상소문을 통해 자신의 재산 절반을 군사비로 바치겠다고 청원했다. 무제가 사자를 보내 어떤 관직을 원하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복식은, “소인은 젊어서부터 목축업에만 종사해 왔습니다. 벼슬길에 나아가다니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했다.

“그럼 무슨 뜻을 품고 있는가?”

“저는 일찍이 남과 다툰 적이 없습니다. 가난한 자에게는 생활을 도와주고 불량한 자에게는 가르쳐서 깨닫게 했으므로 모두 제 말이라면 잘 따라 줍니다.”

“그렇다면 무슨 목적으로 재산을 나라에 바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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