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한(漢)나라 무제는 흉노족을 토벌하여 굴복시키고 사방의 이민족을 복종시키고자 힘쓰고 있었다. 이에 대해 급암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제에게 건의해 이민족과 싸우지 않고 화친할 것을 설득했다.

그 즈음 무제의 관심은 유학으로 기울어져 누구보다도 공손홍을 신임하고 있었다. 나랏일 은 더욱 복잡해지고 관료와 백성들도 교활하게 행동하자 무제는 법을 통해서 이를 다스리고 장탕은 새로운 판례를 만들어서 더욱 무제의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급암은 유학을 비판하며 공공연히 공손홍을 비난했다.

“속이 검은 자들이 지혜를 들먹거리며 폐하께 아첨하고 유학의 무리가 법을 주물러 죄명만 늘리고 있다.”

그럴수록 공손홍과 장탕을 대하는 무제의 신임은 두터워질 뿐이었다. 그들은 급암 따위는 무제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고 흠을 잡았다. 그러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쫓아내려고 벼르고 있었다.

무제는 흉노와의 전쟁에서 유리한 입장에 있었으므로 급암의 말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급암이 대신이 됐을 때 공손홍이나 장탕은 아직 일개의 중급 관리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이 자신과 같은 지위로 승진했지만 비판하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공손홍은 지금 승상으로 열후의 지위를 얻었고 장탕은 어사대부가 됐으며 일찍이 자신 주변 측근들도 차례로 출세하여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됐다. 그렇게 되자 급암도 과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는 기회를 보아 황제에게 뒤틀리는 말을 했다.

“폐하의 인사는 장작을 쌓는 것과 꼭 같사옵니다. 뒤에 온 자가 맨 꼭대기에 있습니다.”

무제는 아무른 대꾸가 없었으나 이윽고 급암이 물러가자 말했다.

“인간이란 반드시 배워야 한다. 급암의 탈선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만 하구나.”

그 뒤 얼마 안 있어 흉노의 혼야왕이 부하를 데리고 항복해 왔다. 한나라는 그에게 위엄을 보이려고 수레 2만대를 보내 맞이하려 했다. 그러나 나라에는 그만한 예산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백성들로부터 나중에 돈을 지불한다는 조건으로 말을 사들이기는 했으나 숨기는 자가 많으므로 그 숫자를 채울 수가 없었다. 무제는 화가 나서 장안의 시장을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급암이 나섰다.

“죄 없는 시장을 죽일 바에는 최고 책임자인 저를 죽이십시오. 그러면 말은 쉽게 모일 것입니다. 자기 나라를 배반하고 항복한 자들을 역전거에 태워서 실어 오면 될 것을 그런 오랑캐를 맞이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떠들어 댈 필요가 있겠습니까?”

무제도 이 말에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마침내 혼야왕 일행이 장안에 도착하자 상인들은 그들을 상대로 다투어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흉노족과의 교역을 금지한 법률에 위반돼 사형을 선고 받은 자가 무려 5백명이 넘었다. 급암은 다시 무제 앞에 나섰다.

“흉노가 화친 조약을 어기고 우리 북쪽 변두리의 요새를 침공했으니 우리도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한 사상자는 많았고 군비도 수백억에 달합니다. 따라서 저는 잡은 그들을 모두 노예로 삼아 전사자 유가족에게 내리시고 전리품도 같은 방법으로 나누어 주어 백성들의 노고를 위로하셔야 합니다. 혼야왕과 수많은 투항병을 국고를 축내고 양민을 징발해서까지 환대하심은 방자한 아들에게 돈을 들이붓는 것과 같사옵니다. 백성이 그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것도 폐하의 방침을 따랐을 뿐이지 적과 몰래 내통해 장사한 것이라고는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흉노족으로부터 얻은 전리품으로 백성들의 노고를 위로하시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법을 빙자해 무지한 백성을 오백명이나 죽이지 마십시오. 이것은 마치 잎사귀를 위해서 가지를 상하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사오니 도저히 찬성할 수가 없사옵니다.”

무제는 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나간 다음 말했다.

“오랜만에 급암의 불평을 들었는데 아직도 그는 계속 함부로 지껄이더군.”

수개월 뒤에 급암은 작은 잘못으로 파면돼 향리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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