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준 민속 칼럼니스트 

 

무당(巫堂)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무(巫)의 사제자(司祭者)로 길흉화복을 점치고 굿을 주관하는 사람이다. 한민족의 가장 오랜 신앙이자 종교이며 문화이기도 하다. 

무당이라 하면 여무(女巫)를 뜻하나 일반적으로 남무·여무 구별 없이 쓴다. 흔히 무속(巫俗)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지만 ‘속(俗)’은 ‘속된 것’ ‘저급하다’는 뜻이다. 무당은 ‘높고 존귀하다’는 뜻이 담겨있다. 최근 일부에서는 무교인(巫敎人)이라고 하기도 한다.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단군의 나라다. 단군은 고조선의 통치자인 동시에 사제자 즉 무당이었다. 이후 사회가 점차 분화돼 정치와 종교로 분리되면서 무당은 사제기능만을 담당하게 됐다.

무당에 관한 가장 오래 된 기록은 삼국유사에 “김대문(金大門)이 말한 차차웅이나 자충이라 함은 우리말로 무당을 말하며 사람들은 무당을 통하여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올린다(次次雄 或云慈充 金大門云 方言謂也 世人以巫事鬼神尙祭祀)”는 것으로 보아 신라 초기에 무당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유리왕은 질병에, 고구려 차대왕(次大王)·산상왕(山上王)과 백제 의자왕은 무당을 불러 점을 쳤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에 와서는 기우제·서낭제 및 질병구제를 위한 행사에 무당이 제사를 주관했다.

조선 초에는 무녀를 전국 명산으로 보내 제사를 지냈고, 세종은 전염병이 돌자 무당들을 동서활인원(東西活人院)에 소속시켜 병을 고치도록 했다. 전염병 퇴치에 힘쓴 무당에 대해서는 무세(巫稅)를 감하여 주고 부역을 면제해 주기도 했다. 

특히 무당은 미래를 예지하는 기능을 갖추었다. 삼국시대 관상감(觀象監), 고려시대 태사국(太史局), 조선시대 서운관(書雲觀) 등이 이러한 직제의 하나였다. 여기에 소속됐던 일관(日官)·무사(巫師)·점자(占者) 등은 모두가 예언 기능을 인정받았던 무당들이었다.

아울러 무당이 주재하는 굿은 노래와 춤이 수반되는 큰 규모의 제의로서 신과 인간의 대화를 통해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하여 국가에서는 대사를 결정하기에 앞서 무당의 예언을 들었고, 백성들 역시 크고 작은 일에 무당을 찾아가서 미래를 점쳤다.

이처럼 고대시대부터 무당은 사제·치병·예언의 기능을 담당했다.

고조선, 부여를 거쳐 삼국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무당은 사제자로서 높은 지위를 유지해왔으나 불교가 들어오면서부터 종전의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조선시대는 천민으로 추락했고 일제강점기 때는 미신으로 내몰렸다. 광복이후 개신교로부터는 귀신 추종세력으로 몰려 대한민국의 마이너리그 신세가 됐다.

역사적인 경험으로 보면 종교는 지배 권력과 결탁해야 종교로 인정받아 왔다.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는 “무당은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이라고 평했다. 

현재 한국인은 하느님, 부처님에게 세속적 행복을 빌고 85%의 국민이 무당에게 점을 본다는 통계다. 

무당은 서사문학, 판소리, 연극, 인류학, 민속학 등 한민족 문화 원형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보물창고나 마찬가지다. 즉 알려지지 않은 문화콘텐츠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은 도교나 신도를 미신이라 폄하하지 않고 지키고 가꾸고 있다. 수천년 동안 탄압받아온 무당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시대가 올까?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