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준 민속 칼럼니스트 

 

흔히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은 신화시대로 생각한다. 우리의 담배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대체로 17세기 초 광해군(재위기간 1608∼1623년) 때 일본에서 들어왔다는 것이 통설이다. 400년쯤 됐다.

담배 원산지는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의 고산지대다. 담배는 영어로 ‘타바코(tabacco)’다. 1492년 콜럼버스가 유럽에 전했다.

우리가 부르는 ‘담배’라는 이름은 ‘타바코(tabacco)’가 일본을 거치면서 ‘다바코’가 되고 우리말로 바뀌는 과정에서 ‘담바구’, ‘담배’ 등으로 변했다.

한방에서 담배 잎을 연초(烟草)라는 약재로 쓴다. 소화불량과 통증을 완화시키는 데 쓰고, 종기·악창·옴·버짐에 환부에 붙여 치료하며 개나 뱀에 물린 데도 효과가 있다.

담배가 들어왔던 초기에는 남녀노소 구분이 없었다. 어린아이들도 담배를 피웠다 하니 한마디로 골초 국가였던 셈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많이 피웠다. 당시 양반집 마님들은 나들이 때 담배 전담 여종을 뒤따르게 했다.

조선 후기부터 차츰 아랫사람은 윗사람 앞에서, 젊은이는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담배예절이 생겼다.

양반의 담뱃대는 쓰임새가 다양했다. 아랫사람을 부르거나 꾸짖을 때 때로는 매로도 쓰였다. 남에게 얻어맞거나 의외의 일을 당해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빗대 ‘대통 맞은 병아리 같다’는 말이 생겼다. 우리 민요 중에 “담바귀야! 담바귀야!” 하고 부르는 담배를 예찬하는 ‘담바귀 타령’도 있다.

모든 백성을 흡연자로 만들고자 하는 조선의 군주가 있었다. 골초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는 임금이 바로 정조이다. 규장각에 “담배를 전 백성이 피우게 할 방법을 강구하라”는 ‘남령초 책문’을 내리기도 했다.

반면 영조를 필두로 이덕무를 비롯한 여러 선비들은 금연주의자였다.

조선의 금연론자 중 윤기는 ‘남초’에서 “인간의 윤리를 없애고 질서를 사라지게 하는 것은 모두 담배로부터 말미암는다. 남녀 간에 음란한 짓을 할 때에는 담배 한 대 태우자는 수작을 건다”고 빗댔다.
담뱃대가 긴 것은 1m 내외의 장죽에서, 한 뼘 정도의 곰방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담배 도구는 담뱃대, 재떨이, 부싯돌, 쌈지 등 4개로 끽연사우(喫煙四友)라고 하던 시절도 있었다.

우리가 지금 피우는 현대식 담배의 시작은 일제 때 권연(卷煙)의 수입이다. 권연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흡연 방식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곰방대, 장죽 등의 담뱃대가 사라지고 쌈지와 같은 담배 용품도 사라진다.

이후 1945년에 우리나라 최초 제조담배 ‘승리(판매가 3원)’가 탄생했다. 당시 가장 애용했던 담배는 쌈지담배 ‘풍년초’였다. 최장수 담배는 ‘화랑(32년 8개월)’, 가장 많이 팔린 담배는 ‘솔(200억갑)’이다.
17세기 초 이래 400년 동안 우리나라 기호식품의 대명사가 바로 담배였다. 그러나 21세기 현재 1000만 애연가들은 가정, 직장, 공원,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마음 놓고 담배를 피울 수  없다. 혐오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격세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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