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전 대한변리사회 회장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협상해야 한다는 발언에 걱정하는 것 같다. 나는 지식재산권 분야를 중심으로 협상 과정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번 재협상 요구를 어떻게 봐야 할지 생각해보자.

정부 사이에 협상이 타결돼, 각자 나라에서 비준을 받아 시행되고 있는 협정을 일방적으로 깨면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우리도 이에 대비해야겠다.

나라들 사이에 걸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 방식에는 다자간 협상과 양자 협상이 있다. 다자간 협상은 협상에 참여하는 국가에 다같이 적용되는 것으로, 참여하는 각국이 각자 요구사항을 내고 이들을 조율하여 한꺼번에 타결한다.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시작됐던 세계무역기구(WTO) 설립에 관한 협정이 대표 격이다. 다자간 협상은 협상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타결이 쉽지 않지만 국력이 약한 나라는 자기 목소리를 반영하기 쉽다. 양자 협상은 두 나라 사이에 현안을 조율하는 것으로 협상 진행이 빠르지만 힘센 나라의 목소리가 작용하기 쉽다. 한미무역협상은 양자 협상이다. 우리 역사를 돌아볼 때 우리보다 힘센 나라를 상대로 협상을 벌였을 때 우리에게 유리하게, 아니 동등하게 협상을 마무리한 적이 있었을까?

미국이 지닌 힘과 협상 전문성을 생각할 때 한미자유무역협정은 우리에게 유리하게 협상한 것이라 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한미협상에서, 미국은 정보 조직 배후 단체들 여러 면에서 막강했다. 우리는 분야별 담당자는 순환 보직으로 2~3년이면 담당자가 바뀌기 때문에 정보와 전문성에서 상대와 맞수가 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고, 협상책임자도 현업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를 활용하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현업에 있던 전문가는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보를 알 수 없었고, 협상 담당자도 진지하게 협조를 구하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협상 자리에 나갔으니, 우리가 공격적으로 미국 쪽에서 얻어내기 어려웠고, 미국의 요구를 방어하기에 바빴다고 본다. 협상 타결 뒤 설명회에서 ‘상대가 몇 개를 요구했는데 우리가 노력하여 몇 개를 막았다’는 것을 자랑하는 자리였던 상황을 생각하면, 타결된 협상이 우리에게 유리하다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데도 재협상을 요구하여 어쩔 수 없이 응해야 한다 하더라도 우리만 일방적으로 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재협상이 현재의 불평등을 바로잡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제대로 준비하여 협상에 나선다면 꼭 불리하다 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일부만 협상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전체를 다시 협상 의제로 올려 타당성을 짚어야 한다. 협상에서는 정보와 협상을 담당하는 조직과 인력의 전문성이 중요하다. 재협상 요구를 겁낼 일이 아니라, 제대로 준비하여 재협상에서 지금보다 나은 조건으로 바꾸자.

미국이 국제 신의를 깨면서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우리도 미국과 맺은 다른 협정을 점검해보자. 예를 들면, 한미방위조약에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은 불평등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 기회에 주권국가답게 당당하게 개정을 요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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