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전 대한변리사회 회장 

 

5월 9일 ‘철쭉대선’을 앞두고, 이 나라를 이끌겠다고 나선 후보의 정책과 토론을 보면 이건 아니다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나라를 이끌 사람은 하늘이 낸다고 하니, 이번에도 그렇겠지요. 지금 상황이 옛 대한제국의 말기와 비슷하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판이라 더욱 걱정스럽습니다.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잃었습니다. 을사늑약 뒤, 사람들의 행동이 나뉩니다. 고위 관리 가운데, 의분을 느낀 사람은 몇몇 자결하며 부당함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권력자들 대부분은 나라를 팔아서라도 권력과 부를 누리려 했습니다. 그들은 일제에 더 잘 보이기 위해, 나라를 더 빨리 팔아먹도록 일제에 충성경쟁을 했고, 끝내 나라를 넘겼습니다.

7년 전, 하얼빈 안중근 기념관을 둘러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교과서에서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등박문을 사살하고 여순 감옥에서 삶을 마쳤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기념관에서 산 ‘안중근 연구’와 돌아와 두어 권 더 읽고서야, 위인의 행동과 뜻을 알게 됐습니다. 낯부끄러웠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법률지식이 높아, 국제관계법과 일본 형법을 잘 알았고, 일본 형법에는 국사 정치범은 사형에 처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등박문을 쏴 죽임으로써 일제가 부당하게 조선을 점령했다는 것을 재판 절차를 통해 온 세계에 알리려고 했습니다. 일제가 재판을 엉터리로 처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를 체포한 러시아는 일본의 압력과 관계를 고려해 재판권을 일본에 넘깁니다. 안중근 의사는 독립전쟁을 수행한 것이니 국제사법에 따라 처리하라고 요구합니다. 한국, 아니면 중국이나 러시아법에 따라 재판하는 것이 맞지만, 을사늑약을 빌미로 일본법에 따라 관동도독부 법원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주권을 빼앗긴 국민의 슬픔입니다. 재판에서 안중근 의사는 “이등을 죽인 것은 목적(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을 달성할 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므로 나쁜 짓 한 것이 아니니 도망갈 이유가 없다. 이등을 쏴 죽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을 안다. 하나둘 행동이 쌓이면 반드시 독립을 이룰 수 있다” 하고 큰 뜻을 당당하게 밝혔습니다. 이 재판은 전 세계의 관심거리였고 변론을 자원하는 법률가도 많았다고 합니다.

독립운동은 돈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에 나서면 돈도 써야 하고, 자신과 가족과 친척까지 희생해야 합니다. 독립운동에 나선 선조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나라가 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우리 역사를 되씹어보면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지도자가 앞장서서 나라를 구한 역사를 찾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권력자는 나라를 구하려고 일어선 백성을 더 못살게 굴었던 역사가 떠오릅니다. 잘못된 기억이면 좋겠습니다.

반장 선거에 나서는 초등학생도, 나를 버리고 나를 던져 우리 반을 좋게 만들겠다고 다짐합니다.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단순히 권력을 잡아 누리겠다는 생각을 뛰어넘어 이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역량을 갖춘 사람을 뽑는 잔치 자리가 돼야 하겠습니다. 잔치 비용은 들지만, 결코 잔치에 드는 돈이 아깝지 않게.

안중근 의사가 하늘에서 ‘내가 이러려고 독립 운동을 했던가?’ 자괴하는 모습이지 않길 기대합니다.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뽑읍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