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전 대한변리사회 회장 

 

국회 청문회에서 논문 표절이 도마 위에 자주 오른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2000년 8월 노사정위원회에 ‘향후 금융 구조조정과 고용안정 방안’이라는 연구용역보고서를 제출했고, 2000년 12월 ‘산업노동연구’에 게재한 논문에 노사정위에 제출한 논문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 실은 것을 두고 자기표절 논란이 생겼다. 김 후보자는 “노사정위 승인을 받았다”고 해명하고, “2000년에 쓴 글이라 지금 윤리규정에 비춰보면 미흡하여 송구하다”고 했다. 또, “2007년 논문에 원고지 9매 분량의 내용을 자기 표절했다”는 것도 있는데, 그 논문을 실은 ‘사회경제평론’의 발행자 한국사회경제학회는 성명서에서 “논문표절이 아니다”며 태도를 분명하게 밝혔다.

저작권제도에 비추어보면 ‘자기 표절’은 참 이상한 말이다. 자기 것을 자기가 베꼈다는 것인데, 자기 것을 자기가 쓰는 게 당연하지 그게 마치 무슨 범죄나 부도덕한 일로 비치는 것 같아 의아하다.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다. 저작물에는 어문, 음악, 연극, 미술, 건축, 사진, 영상, 도형, 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 같은 것으로 구분한다. 논문은 어문저작물이다.

저작물을 창작한 사람은 자기의 저작물에 대하여 저작인격권(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과 저작재산권(복제권 공연권 방송권 전시권 배포권 대여권 2차저작물작성권)을 갖는다. 저작인격권은 저작자 자신에 속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없다. 반면에 저작재산권은 재산상 가치가 있는 것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권리를 넘길 수 있다.

저작물을 만들지 않았으면서 저작물에 자기 이름을 올리면, 즉 제자가 연구한 성과물에 지도교수 이름을 올리면 범죄나 마찬가지다. 제자는 다른 사정을 고려해서 냉가슴 앓는 일이 자주 일어났었다. 이런 것은 막아야 한다.

자기 표절은 사정이 다르다. 권리자는 자기 권리를 자기가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소설을 쓴 사람이 그것을 책으로 만들어 팔고, 영화도 제작하고, 연극을 올릴 수 있다. 이것을 누가 뭐라 할 것인가. 자기 표절은 범죄가 아니다. 자기 표절이란 말은 함부로 쓰면 오해하기 쉽다.

자기 논문을 다시 사용하면 문제가 될 때는 언제일까? 연구과제를 제안할 때와 연구 성과 보고서가 대표적일 것 같다. 아직 연구한 적이 없는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겠다고 과제를 제안하면, 그 제안이 참신할 때 지원 과제로 선정될 것이다. 그런데 이미 연구된 과제를 제안하고, 이미 나와 있는 논문을 다시 제출한다면 이는 속임수다. 연구과제를 수행할 때 이런 재탕 논문을 제출하면 안 된다. 이미 발표된 논문을 성과물로 제출하면 계약을 어긴 불법행위일 것이다. 

권리 관계를 살펴보면, 연구 결과로 논문을 제출한 것이더라도 특별히 정한 것이 없으면 그 논문의 저작권은 연구자의 것이다. 연구자는 자기 논문을 그대로 또는 가공 편집하여 다른 곳에 실을 수 있다. 김 후보자가 연구보고서의 저작권을 노사정위에 넘기지 않았다면 다른 매체(산업노동연구)에 싣게 허락하는 것은 저작권자의 권리다. 매체의 발행자가 새로운 논문을 요구했음에도 이미 나온 논문을 냈다면, 그것은 저작권자와 발행자 사이의 계약을 어겼느냐의 문제다.

피땀이 어린 저작물은 널리 활용돼야 저작물답다. 저작권제도가 있는 이유다. 자기 저작물을 활용하는 것이 자기 표절이란 이름으로 몹쓸 짓을 한 것으로 비치면 곤란하다. 되도록 많이 자기 표절하자.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