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한국의 주거 현실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아마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것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주거권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국회의 입법, 정부의 정책, 정당과 후보의 공약 내용, 공약의 이행의지가 모두 낙제점이다. 2년마다 이사하게 만들 수 있는 ‘한시적 거주제’가 통용되고 임대료를 아무리 많이 올려달라고 해도 제어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없다. 브레이크 없는 차량과 같다. 재개발과 뉴타운, 재건축을 이유로 세입자 대다수를 아무런 주거 및 생활 대책 없이 내쫓는 강제 철거 제도가 존재한다. ‘용역깡패’가 등장해 삶터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피 흘리게 만드는 못된 법과 제도가 온존하는 참혹한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재개발, 재건축 명목으로 멀쩡한 집을 파괴하면서 가옥 소유주를 내쫓고 있다. 

주거권과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용산의 주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권력의 반인도적인 행위가 있었음에도 처벌받지 않았고 가해자들은 떳떳하다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심지어 참사 당시 진압 당사자였던 전 서울경찰청장 김석기는 여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는 어이없는 일까지 발생했다. 용산참사의 종국적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과 한마디 한 적이 없다. 지금이라도 고인과 유족, 국민 앞에 사죄하는 게 도리다. 용산참사가 나기 전에 벌어진 갈등의 근본 원인인 ‘대책 없는 강제 철거 및 퇴거’는 변함없이 계속 되고 있다. 입법할 의지도 없고 입법할 능력도 없는 국회와 주거권을 유린하는 정부 때문이다. 이처럼 참혹한 주거현실이 계속되는 것은 주거권을 파괴함으로써 이득을 보는 세력이 건재하고 위정자들은 물론 주거당사자도 주거권 의식이 낮기 때문이다.

탄핵정국이 지나고 평화가 찾아왔지만 민생은 극도로 불안하다. 주거문제는 더욱 불안하다. 주거안정과 주거복지를 실현하려면 네 가지가 해결돼야 한다. 첫째, 주거권을 훼손하고 주거불안을 야기하는 악법을 개폐해야 한다. ‘임대차 계약 2년제’의 근거법이고 임대료 안전장치조차 담고 있지 못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처럼 세입자가 한곳에 계속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자. 

강제 철거를 합법화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을 개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헌법에 주거권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그 결과 주거권을 유린하는 임대차보호법이나 도정법, 전원개발촉진법, 화상경마도박장 설치법 같은 악법이 제정될 수 있었고 현재까지 통용되고 있다.

둘째, 적정 수준의 공공임대주택을 확보하는 것이다.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현재 5%에서 20%로 높이는 게 필요하다. 셋째, 주거급여 제도를 선진국 수순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넷째, 주거권에 대한 의식을 공유하고 집을 ‘부동산’으로 보는 가치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주거권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공교육에서 사회권을 깊이 있게 다루고 주거권과 주거복지를 비중 있게 다루어야 한다. 

주거권과 주거복지를 누리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지만 우선 이 네 가지가 해결되면 한국사회는 훨씬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고 사회통합은 그만큼 잘 될 것이다. 말로 외치는 사회통합은 의미 없다. 삶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참 재미있는 것은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대선후보도 주거권은 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많은 대선후보들이 저마다 자신이 적임자라고 외치지만 권리로서 인권으로서 주거권을 외치고 ‘계속거주권(자동 갱신권)’을 주장하는 후보는 단 한명도 없다. 주거권에 목말라 하는 서민들 입장에서 보면 ‘구름 속에 떠 있는 후보들’이다. 2300만 세입자, 1700만 예비 세입자, 홈리스에게 그리고 결혼 적령기에 이른 자녀가 있는 부모, 사회에 나오는 청년들에게 ‘계속거주권’이 얼마나 절박한지 전혀 모르는 후보들이다. 각 당 경선이 끝나기 전에 우후죽순으로 나온 후보들 가운데 어느 한 명도 ‘계속거주권 보장’을 외치는 사람이 없었고 후보가 결정된 지금도 없다는 것은 주거권의 의미를 모르는 후보들만 널려 있다는 걸 의미한다. 

국회의원 소득비례제를 도입해야 한다. 소득 1분위부터 10분위까지 골고루 국회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각 분위별로 30명씩 선출하면 된다. 지금 국회는 소득 1분위가 아마도 90%는 될 것이다. 최상류층의 기득권자들이 정치를 독점하고 대다수의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권리가 유린되는 걸 외면하고 국민의 기본권과 인간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법률과 제도를 만들지 않는 것도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는 것이다. 만약 소득비례제가 도입된다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국민들을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국회의원은 퇴출시켜야 한다. 지자체 선출직 공무원에게 적용하고 있는 국민소환제를 국회의원과 대통령에게도 적용할 수 있도록 입법을 해야 한다. 

법률과 제도의 변화를 통해 국민이 더 이상 개돼지로 취급받지 않는 사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주거권을 비롯한 기본 인권을 누리는 사회를 만들자.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해. 그리고 후손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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