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포커스] “우리는 활과 함께한 민족”… 궁도 아닌 궁술이다
[피플&포커스] “우리는 활과 함께한 민족”… 궁도 아닌 궁술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대한궁술협회 연익모 총재가 궁술의 역사와 궁술협회의 활동 그리고 향후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사단법인 대한궁술협회 연익모 총재를 만나다

수천년 이어온 전통 국궁의 명칭 일제치하에서 ‘궁도’ 개칭
2005년 국가 공인기관 ‘궁술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인정
궁술 대중화·세계화 혼신… 자랑스런 韓문화 알리는데 최선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수천 년 전 중국 사람들이 동북지역에 사는 우리 조상들을 부르기를 ‘동이족(東夷族)’이라 했다. 고대 문헌인 설문해자에 따르면 이(夷)는 큰 활과 관련돼 있다는 기록이 있어, 우리 민족이 활을 잘 다루는 민족임을 말하고 있다. 삼국시대에 들어서 활쏘기는 가장 중요한 무예 중 하나이자, 심신수련과 인격을 수양하는 데 큰 도움이 돼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받았다.

고구려 시조 동명왕은 활의 명인이었다. 그의 별명 주몽(朱蒙)은 바로 ‘활 잘 쏘는 이’를 이르는 부여말이다. 고구려 무덤벽화, 신라 화랑도, 조선시대 마상도 등에서도 말 위에서 활을 쏘는 무사들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잘 표현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 이상의 전통을 이어받아 고유의 민족궁을 쏘고 있는 유일한 민족이다. 이러한 전통과 민족정신을 전승하고 있는 사단법인 대한궁술협회 연익모 총재를 만나 국궁(궁술)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봤다.

궁술 마스터 연익모 총재는 “우리 민족은 활과 함께한 민족이다”며 첫 만남부터 궁술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과 애정을 과시했다.

명칭에 관해 궁술과 궁도 어떤 것이 맞는지 물었다. 연 총재는 “우리는 아직도 일제잔재인 궁도(弓道)를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로 잘못 알고 있다”며 “궁도는 일본의 국기(궁도, 검도, 유도)이며, 우리나라의 전통 활쏘기는 궁술(弓術)이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 한국 전통 활쏘기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연익모 총재. (제공: 대한궁술협회) ⓒ천지일보(뉴스천지)

◆민족혼 담긴 국궁의 아픈 역사

조선시대 서울에는 활 쏘는 사람들이 무예 수련을 위해 세운 사정(射亭)이 다섯 군데 있었다. 오사정은 조선 전기부터 무인의 궁술연습지로 유명했다. 그런데 갑신정변 이후 활쏘기 무예가 쇠퇴하고, 일제강점기에 활쏘기를 금지해 많은 활터가 사라졌다. 당시 오사정 중 하나인 ‘황학정’만 그 맥을 이어왔다.

일제치하 초기에 한동안 우리의 활쏘기를 ‘궁술’로 불렸다. 1916년 활을 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경성궁술회’를 창립한 데 이어 1922년 서울·경기지역을 중심으로 ‘조선궁술연구회’가 만들어지고 1928년 전국 궁술대회가 서울 황학정에서 처음 열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조선궁술연구회’가 갑자기 ‘조선궁도회’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해방 후 1946년 2월 ‘조선궁도협회’로, 1948년 8월에는 ‘대한궁도협회’로 개칭된다. 대한궁도협회는 1954년 3월 대한체육회 가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방과 6.25전쟁 이후에도 궁술의 명칭은 복원되지 못하고 ‘궁도’라는 명칭을 그대로 쓰고 있다.

연익모 총재는 1957년 충북 진천군에 자리한 ‘마두(馬頭)’라는 이름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연 총재는 21년 전 1995년 친구의 소개를 받아 대한궁도협회 동호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서울 황학정에서 3년간 활쏘기를 배운 게 계기가 돼 인생이 바뀌었다. 이때부터 국궁을 더 깊이 배웠다”며 “어느 날 우리 전통 활인 국궁을 ‘궁도’라고 부르는지에 대한 의문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제의 잔재인 궁도를 왜 계속 사용하는지를, 대한궁도협회에 문의했지만 답변은 돌아오지 않고 결국 제명당하고 말았다.

▲ 교사들을 대상으로 특수분야 국궁직무연수 교육을 하고 있는 연익모 총재. (제공: 대한궁술협회) ⓒ천지일보(뉴스천지)

◆‘궁술 문화원형’ 디지털로 복원

한동안 충격에 빠져 힘든 시기를 보냈다. 이후 뜻을 같이한 사람들과 단체를 설립하기로 하고, 드디어 2001년 사단법인 ‘한국국궁문화세계화협회’를 창립한다. 지난해 ‘대한궁술협회’로 명칭을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는 10년 전 누구도 도전하지 않은 ‘우리나라 활 문화의 원형’ 복원 사업에 뛰어들었다. 궁술과 관련된 역사 기록과 자료를 정리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궁술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2005년)’로 제작하는 데 성공시켰다.

연 총재는 민족혼이 담긴 궁술문화의 전승을 위해 발 벗고 뛰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성인들 모이는 전국 각 지역을 다니며 특강을 열어 궁술을 알리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특수분야 국궁직무연수를 1년에 여러 차례 갖는 등 혼신을 다하고 있다.

연 총재는 “최근 우리 궁술의 남북 통합을 위해 북한 측 궁술 인사들과 처음으로 교류를 시작했다”며 “또한 궁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전파하고자 유럽 등 다른 나라와의 교류도 힘쓰고 있다”고 국민들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했다.

끝으로 그는 “자라나는 미래세대인 어린아이들에게 한민족의 자랑스러운 궁술 문화를 제대로 알리는 데 국가와 지자체의 관심이 절실하다”며 “더불어 궁술인도 한마음 한뜻으로 지혜를 모아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신궁의 나라로 알려진 우리나라의 궁술이 세계 속에서 빛나는 그 날이 다가오길 기대해본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