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에는 어디서 장을 봤을까. 가상인물인 김개똥씨와 딸 말순양이 서울 한양 시장을 둘러보려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일러스트=김예슬 기자)

종로 네거리 부근 운종가 일대
시전 형성돼 명절에 ‘북적북적’
이현·칠패와 한양 3대 시장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아버지, 이제 광통교(종각 남쪽 넓은 다리)예요.”(딸)

“운종가에 다 왔나 보구나, 얼른 가서 제수용품을 사자꾸나.”(아버지)

들어는 보았는가. 조선의 한양 3대 시장(市場) ‘종루시전, 이현·칠패시장’.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은 명절이면 더욱 왁자지껄했다. 신기한 물건에 이리저리 눈이 돌아갔다. 입꼬리도 어느새 귀에 걸렸다. 조선시대 시장은 어땠을까. 가상인물인 김개똥씨와 딸 말순양과 함께 장터를 함께 돌아보자.

◆한양 중심가 ‘운종가’

조선시대 최대의 번화가 운종가(雲從街). 운종가는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였다 흩어지는 거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의 종로 네거리 부근이다.

운종가에 사람이 많이 모인 이유는 뭘까. 운종가 일대에 시전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원래 시전은 왕실과 관청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점차 민간 판매가 늘어나면서 한양의 대표적인 상점가가 됐다.

운종가 중심에는 ‘종루’가 있다. 종루는 큰 종을 달아 도성의 대문을 열고 닫는 때를 알렸다. 종루 양쪽 옆으로는 여섯 곳의 큰 상점인 ‘육의전(六矣廛)’이 있었다. 비단가게인 선전(線廛), 명주가게인 면주전(綿紬廛), 무명가게인 면포전(綿布廛), 종이 가게인 지전(紙廛), 모시·베 가게인 저포전(苧布廛), 생선가게인 내외어물전(內外魚物廛) 등이다.

육의전을 중심으로 돈의문 쪽으로는 품질이 좋은 쌀을 파는 ‘상미전(上米廛)’, 일상생활에 필요한 사기그릇을 팔던 ‘사기전(沙器廛)’, 꿩과 닭, 말린 꿩고기를 팔던 ‘치계전(雉鷄廛)’, 등이 있었다.

흥인문 쪽에는 술을 만드는 누룩을 파는 ‘은국전(銀麴廛)’, 남녀의 헌 옷을 파는 ‘의전(衣廛)’, 일상생활에 필요한 쇠못이나 솥 등 각종 쇠붙이를 판매하는 ‘철물전(鐵物廛)’ 등이 있었다.

시전 상인은 나라에 세금을 내고 행랑에서 장사했다. 한 점포에서는 딱 한 가지 물품만 독점해 팔수 있었다. 농업을 중시한 조선시대에 상업이 발달하지 못하도록 통제한 것.

또 나라에서는 시전 상인에게 ‘금난전권(禁亂廛權)’이라는 특별한 혜택을 줬다. 노점상이나 일반 사람들이 시전에서 장사를 하면 이를 단속하고 관리에게 고발할 수 있는 시전 상인만의 권리였다. 금난전권이 적용되는 범위는 도성 안과 그 밖 10리까지다.

◆생선시장 유명한 칠패

“칠패(七牌)의 생선전에는 각색 생선이 다 있구나.”

시전 상인이 금난전권을 앞세워 사상(私商, 개인이 하는 장사)의 상업 활동을 금지하자, 17세기 후반 칠패시장이 생겼다. 시장은 금난전권의 영향력이 없는 도성 외곽에 상권이 확대됐다.

칠패는 도성 밖 숭례문(남대문)과 소의문(서소문)사이에 형성됐다. 칠패라는 명칭은 우변 포도청의 순라군 중 제7패가 담당했던 데서 유래했다. 칠패에서는 다양한 물건을 팔았는데, 그 중에서도 생선시장으로 유명했다.

당시 시전상인이 판매하는 상품은 대개 지방의 생산자가 서울로 직접 와서 팔거나 행상이 생산자와 시전상인을 연결해 공급했다. 이와 달리, 칠패 상인은 직접 생산지에 가서 상품을 구입하거나, 지방에서 올라오는 어물을 중간에 대량으로 구입했다.

18세기 후반에는 운종가의 내외어물전보다 유통물량이 10배나 많았다. 칠패시장은 주로 새벽녘에 거래가 활발했고 이용자도 서민들이 많았다. 이렇게 난전활동이 활발해지자,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은 1791년 폐지됐다.

◆나물·채소 유명한 ‘이현시장’

이현은 운종가, 칠패와 함께 서울 안의 3대 시장이었다. 이현은 종루의 상가가 동대문쪽으로 확장되면서 형성된 시장이다. 현재 종로 4가와 5가 사이로, 광장시장이 들어서 있다.

이현이라는 명칭은 이곳의 지명이 ‘배오개’였던 데서 유래했다. 배오개는 고개 입구에 배나무가 여러 그루 심어져있다는 뜻이다. 이현도 칠패처럼 서민들이 주로 이용했다. 대낮에 거래가 이뤄졌던 운종가와 달리 새벽녘에 찬거리를 마련하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현에서는 어물과 의류, 목면, 미곡, 과실 등도 많이 거래됐지만, 특히 동대문이나 광희문을 통해 들어오는 서울근교에서 재배된 나물이나 채소류가 유명했다.

◆상전, 병풍전, 모전

그 밖에 한양에는 상전(床廛)도 있었다. 상전에서는 말총, 가죽, 초와 밀, 향사 등의 잡화를 팔았다. 이러한 물건을 상위에 늘어놓았다 하여 상전이라 불렀다. 병풍전은 집안을 장식하는 각종 병풍을 팔았다. 각색 실과가 가득한 모전도 있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