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달 27일 국회법개정안(일명 상시청문회법안)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 즉 국회 재의(再議)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법제처에서는 국내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적이 있다. 국내 헌법학자와 행정법 전문가 14명으로부터 상시청문회법안 관련 핵심 쟁점이었던 ‘권력 분립 위반’ 여부에 관한 의견을 받은 뒤 제정구 법체처장은 기자회견을 열고서 “현안 조사 청문회를 신설하는 것은 헌법에 근거 없이 국회법에서 행정부 등에 대한 새로운 통제수단을 신설한 것으로 이는 국력분립 및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던 것이다.

국무회의에서 상시청문회법안 재의 요구 의결 후 꼭 한 달 만인 지난 27일, 제정구 법제처장은 “상시 청문회법에 대해 ‘합헌’이라고 답한 전문가들이 14명 가운데 절반인 7명에 달했다”고 뒤늦게 밝혔는데, 이 내용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하기 위해 정부가 검토하고 기자회견을 한 내용과 비교해봤을 때 전문가 의견과는 다르게 정부쪽에 유리하도록 판단했음이 드러났다. 당시 헌법학자 등 전문가 14명의 의견 내용은 상시청문회법안의 ‘권력 분립 위반’ 여부에 대해 ‘위반했다’가 5명, ‘위반이 아니다’가 7명, 조건부 위반이 1명, 의견 미제출이 1명이었다.

묻어질 뻔 했던 일이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제처가 5월 24일부터 26일까지 학자 14명으로부터 의견 수렴 내용을 제출 요구하자 법제처에서는 뒤늦게야 그 내용을 사실대로 밝힌 것이다. 만약 백 의원이 관련 자료를 요구하지 않았다면 법제처가 ‘상시 청문회법’에 대해 ‘합헌이라고 답한 전문가들이 14명 가운데 절반인 7명에 달했다’고 과연 밝혔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정부 자료의 공개 청구 제도는 유의미하고 청문회는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국회에 접수된 상시청문회법안 재의 건은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는 19대 국회에서 자동폐기된 법안이라 해석하는 데 반해 야당에서는 유효하다며 국회의장에게 재의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정세균 국회의장은 법리적인 문제를 면밀히 따져서 법대로 처리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따져보면 제헌국회 이래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74차례 있었고 이 중 14건이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사라졌지만 이번처럼 임기 종료가 임박해 거부권이 행사된 것은 처음이어서 법리해석이 불가피해 보인다. 어쨌거나 상시청문회법 재의는 입법권 보장과 행정부 견제라는 측면에서 국회의 합법적, 합리적인 결정이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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