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중일전쟁의 계기가 된 노구교(蘆溝橋)사변은 칠칠사변이라고도 한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근대 천황제도를 확립해 군국주의로 질주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조선과 산동을 차지하고 아시아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1932년 일본이 상해를 점령했다. 동북에 만주국을 세운 일본은 화북의 자치운동을 지원하며 점령 계획을 세웠다. 1936년 일본은 국책기준이라는 총체적 전략계획을 수립한 후 군사훈련을 거행했다. 전면적인 중국침략전쟁에 참가할 부대가 참가했다. 1937년 7월 3일, 동군의 참모장 동조영기(東條英機)가 중국을 타격하자고 건의했다. 조선 주둔군 2만과 100여기의 전투기가 화북에 투입됐다. 7월 17일, 일본 육군참모본부는 화북에 40만의 병력을 동원하기로 결정했다. 노구교는 북평의 서남쪽 영정하(永定河)에 설치된 교량으로 남하를 위한 요충이며 북경의 인후에 해당한다. 중국군도 노구교를 지켰다. 1874년에 대만을 침략하면서 시작된 일본의 중국침략이 본격화됐다.

사변 발생 전날 저녁 일본군이 북평의 북, 동, 남쪽을 포위했다. 북쪽은 열하(熱河)와 찰동(察東)에서 파견된 동군의 일부, 서북쪽은 동군의 통제를 받는 몽고군 4만명이 배치됐다. 동쪽은 기동(冀東)의 자치정부 7천의 보안대가 배치됐다. 남쪽의 중국군은 이미 물러났다. 일본군은 노구교 부근에서 도발성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1937년 7월 7일 오후, 일본의 하북 주둔군 제1연대 3대대 8중대가 노구교로 실탄을 운반했다. 저녁에 일본군의 훈련이 시작됐다. 총성이 울렸고 지촌국차랑(志村菊次郎)이라는 사병이 실종됐다. 일본군은 중국군 주둔지를 수색하겠다고 요구했다. 중국군은 완강하게 거절했다. 일본군은 전투부서를 배치하고 일부러 중국과 교섭을 진행했다. 북평 주둔 특무대장 마쓰이는 총을 쏜 중국군을 수사하라고 요구했다. 중국군이 거절하자 마쓰이는 일본군이 무력으로 수사를 강행하겠다고 통보했다. 실종된 일본군 사병은 귀대했지만, 숨기고 알리지 않았다. 7월 8일 새벽 5시, 일본군이 갑자기 포격을 퍼부었다. 중국 제29군 사령부는 노구교와 완평성을 확보하라고 명령했다. 오후 1시 노구교 부근에서 양군의 충돌이 발생했다. 노구교 부근 연료창고를 일본군이 점령했다. 완평도 포위됐다. 일본군은 노구교와 완평을 향해 100여발의 대포를 발사했다. 노구교가 끊어지고 중국군 50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7일 새벽, 일본군은 담판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일본군은 중국군의 철수를 요구했다. 중국군은 거절했다. 

일본군이 77사변을 일으키자 중국 전역에서 강렬한 반향이 일어났다. 장개석은 항전을 결의했고, 모택동도 조국을 지키자고 호소했다. 중일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일본군은 담판을 통해 압력을 가하면서 대규모 군대를 동원할 시간을 벌었다. 일본국 내에서 5개 사단 20만명이 중국전선에 증원됐다. 일본군 사령관 향월청사(香月清司)는 북평 주위에 조선에 주둔하던 제20사단을 집결시켰다. 30일 천진이 함락됐다. 이 사건으로 제2차 국공합작이 성립됐다. 홍군은 8로군과 신4군으로 개편됐다. 중국의 동북방에서 벌어진 국지전이 전면적인 침략전쟁으로 비화되자 동방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이 점화됐다. 77사변 이후 중국과 일본 양국정부는 전쟁을 선전포고 하는 문제를 숙고했다. 각자 모두 충분한 숙성과 토론을 거친 결과 본국의 이익을 고려해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하거나 절교를 하지도 않았다. 쌍방은 상대방에 파견한 대사를 소환하기만 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중국침략은 중국인의 생존을 위협했다. 중국국민정부가 일본에 대해 기대했던 한 점의 평화에 대한 환상도 완전히 사라졌다. 장개석은 중국공산당에 항일민족통일전선을 구축하자고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일찍이 없었던 항일민족통일전선에는 민족의식이 모든 것을 우선한다는 사상이 체현됐다. 대적을 앞에 두고 거대한 민족적 응집력이 생겨난 것이다. 민족의 위기는 오랫동안 잠자던 중화민족을 깨어나게 만들었다. 무정한 전쟁이 전국의 국민들을 자극한 것이다. 노구교의 총성이 점화한 중국민족의 항일성화가 타오르자 중국은 새로운 역사시대를 맞이했다. 중국은 최근 100년 동안의 치욕을 일소하고 외세의 침략과 맞서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 우리도 위기가 오면 남북이 단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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