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어머니와 홀시어머니 모시고 ‘효·예’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유림인 안정희 다솜예절문화원장. 지난 2월 본지가 개최한 6.25사진전시회 방문한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안정희 다솜예절문화원장

유복자 출생, 전쟁의 상처 안아
공무원 재임 중 노후 인생설계

패륜범죄 발생, 유림의 길 계기
두 어머니 모시고 ‘효·예’ 공부

4전5기로 예절 전문강사 자격
“실천이 가장 고난이도 수행”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1990년대 중반, 한의원을 경영하던 부모의 100억대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20대 초반 청년이 부모를 살해하는 충격적인 패륜범죄가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다. 이후에도 돈이 목적이 돼 흉악한 존속살인 패륜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효(孝)와 예(禮)의 개념이 마치 기억 속에 사라져간 고어(古語)가 된 듯한 부끄러운 현실을 누구나 느꼈을 법하다.

평범한 공무원으로 살아가던 안정희(64) 다솜예절문화원장에게도 이 당시 사건들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의 인생에 변화를 가져오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안정희 원장은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다. 그의 부친은 6.25전쟁 당시 전장에서 전사했다. 안 원장이 모친의 뱃속에서 빛을 보게 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태아로 자라고 있을 때다. 이 때문에 안 원장은 유복자로 태어났고, 그는 지금껏 부친의 얼굴도 모른 채 한평생을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와야 했다.

아버지가 없는 빈자리는 그에게 콤플렉스가 됐다. 자존심이 강했고, 아버지가 없다고 놀림 받을까봐 지레 걱정해 친구들을 멀리했기 때문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한 채 학창시절을 보냈다. 안 원장은 지금도 그렇게 보낸 순간들을 후회하며 부친에 대해 늘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성심을 다해 정성껏 제사를 지내는 등 추억조차 할 수 없는 아버지지만 효를 다하고 있다.

직장생활 4년차인 24세에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를 만나 결혼했고, 그의 남편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그에게 유일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도 같았다. 운명인지 팔자인지 그의 남편 역시 6.25 전장에서 부친을 잃은 유복자로 출생했다. 이 같은 불행한 가정환경은 오히려 동병상련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잘 통하는 금술 좋은 부부가 되게 했다. 다만 친근하게 ‘아버지, 아버님’이라 부를 수가 없다는 점은 늘 아쉬움으로 존재했다. 이 때문에 안 원장과 그의 남편은 누구보다도 전쟁의 고통과 아픔, 평화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긴 후부터 안 원장은 공무원 정년퇴임 후에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노후 인생설계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살던 중 패륜범죄가 종종 발생하자 인성교육의 부재와 함께 효와 예절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고, 이를 회복해 건강한 사회가 되도록 나서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10여년간 주말마다 효와 예절에 관한 교육을 받으러 다니며 공부했고, 생소한 한문까지 익히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더구나 직장생활하면서 홀어머니와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자녀 셋까지 양육하며 공부를 병행했으니 그가 얼마나 인고의 시간을 보냈을지 감히 짐작이 간다.

안 원장은 “여성으로서 홀어머니와 홀시어머니만 모시고 살아도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겪어본 사람은 잘 알 것”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만큼 힘든 여건에서도 효와 예절의 본보기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을 갈고닦았다.

이 같은 상황은 그에게 효와 예절을 아무리 학문적으로 잘 아는 전문가라 하더라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했고, 아울러 실천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수행과도 같다는 점을 깨닫게 했다.

그는 “내가 효와 예절에 대해 공부한답시고 정작 가정에 소홀했다면 배운 것을 누구에게 가르칠 자격조차 없는 헛된 시간이 되지 않았겠냐”며 “이 모든 어려운 순간들을 포기하지 않고 이겨냈기에 유교사상에 효 정신을 실천하는 증인이 된 것 같다”고 뿌듯해하며 웃었다.

특히 안 원장이라고 해서 고부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럴지라도 그는 시어머니가 주문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무조건 ‘네’라고 대답할 정도로 참아가며 복종했고, 남편은 그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며 어머니 말씀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며 위로가 돼줬다.

그는 예절 전문강사가 되기 위해 범국민예의생활실천운동본부에서 실천예절지도사 자격증을 다섯 번 응시 만에 합격했다. 집안 경조사로 인해 딱 한 번 불참한 것을 포함해 4전 5기만에 비로소 예절 전문강사 자격을 얻었다. 2010년도에 정년퇴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예절 전문강사로 유림의 길을 걷게 됐고 현재 성균관에서 홍보실장 역할도 맡고 있다.

정년퇴임과 함께 치매를 앓고 있는 친정어머니를 6년 전부터 집에 함께 모시고 있다. 두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그는 보통 오후 3시가 통금시간이나 다름없다. 혼자서는 식사하기 어려운 친정어머니를 직접 챙겨야 하고 시어머니까지 모두 챙겨야 한다. 그래도 안 원장은 행복하다. 대한민국이 다시금 군자의 나라 동방예의지국(東邦禮義之國) 백의민족(白衣民族)으로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자부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하며 흔들림 없이 효와 예를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고자 자신을 계속 채찍질하는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다문화 다종교 시대를 살고 있어 국내에서 나타나고 있는 작금의 종교 갈등에 대해서도 안 원장은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서로가 말조심하고, 개성이 있으니 다름을 인정해주고 존중과 배려를 한다면 더불어 사는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IT의 발전으로 정이 그리워지는 시대가 된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예절과 효가 습관이 되지 않고는 감동이 올 수 없다. 감성을 울리는 사회가 되길 소망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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