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태 중국 북경화지아대학교/한국기업관리대학 학장

 

문신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대중화되고 있다. 국내 문신 시술자가 1만여명에 이르는데다가 문신시술을 받은 사람만 해도 이미 100만명을 넘어섰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최근 한 조사기관에서는 20대 젊은이들의 10%가 문신을 한 경험이 있었다고 제시한 바 있다. 

문신이란 ‘피부 또는 피하조직에 상처를 낸 후 물감을 들여 글씨·그림·무늬 등을 새기는 일’을 말한다. 문신을 미적 관점에서 보면, 디자인, 창의성, 다양한 기술을 발견할 수 있다. 

문신에 대한 기록은 BC 2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 근거로 세티 1세(BC 1317∼BC 1301)의 무덤에서 나온 인형을 들 수 있다. 이처럼 문신의 역사가 오래된 이유는 무엇일까? 문신의 용도 때문이다. 주술종교적인 의례, 장식, 지위·신분·소속의 표시, 액땜을 위한 것, 결혼이나 출산 때 호적용, 질병 또는 재앙으로부터 보호 등이었다. 

문신은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민족이 행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집트의 미라·그리스인·게르만인·영국인 등 그 분포가 광범위했다. 문신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사람은 제임스 쿡으로 1769년 타히티 탐험에서였다. 

우리나라에서 문신에 대한 기록은 ‘삼국지’ 위지동이전에서 찾을 수 있다. 장식·주부(呪符)·신분 표시가 주목적이었다. 조선 시대에 와서는 도망가다 잡힌 노비를 대상으로 문신을 했다.

오늘날 문신은 주로 개인적 취미, 패션, 장식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눈썹에 문신을 하는가 하면, 입술에도 문신을 한다. 또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신앙심을 보여주기 위한 면도 있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죄수 및 노예들을 대상으로 문신을 새겼는데, 문신의 전파가 이뤄진 것은 1세기경 칼리굴라 황제가 문신을 한 이후부터였다. 미국에서는 인디언들이 몸이나 얼굴에 문신을 했다. 이러한 결과, 1891년 미국에서 전기문신 기구가 등장하게 됐다.  

시대에 따라 문신의 대상과 목적이 조금씩 달랐다. 19세기에는 감옥에서 나온 미국의 죄수들과 영국의 탈영병들이 자신들의 전력을 나타내기 위해서였으며,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강도나 오토바이 갱들이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한편 1960년대 초 뉴욕에서는 시 차원에서 규제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문신 장비가 위생적이지 못해 간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주요 지역별 문신 실태를 살펴보자. 뉴질랜드의 마오리족 중 지위가 높은 사람의 문신은 얼굴 전체를 곡선이나 직선으로 한다. 또 통가의 남성은 배꼽에서 넓적다리까지 문신을 한다. 

세계에서 문신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태평양 제도의 마르케이사스 사람들이다. 이들의 문신 시술 범위가 눈꺼풀·입술·치경(齒莖)·머리의 피부에까지 이르며 시술기간만 해도 30년쯤 걸린다고 한다.   

문신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피부색이 짙을 경우 상흔(傷痕)의 문신이 행해지고, 피부색이 엷을 경우 색소를 사용하는 문신이 행해진다. 보편적으로 알려진 문신 시술방법은 자문신(刺文身)이다. 이는 피부에 모티프가 그려지면 색소를 적신 바늘로 찔러 시술을 하는 방법을 말한다. 

최근 문신시술이 보건위생상 위해여부로 쟁점 대상이 되고 있다. 문신시술자의 유자격자에 대한 규제도 필요하지만 양성과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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