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윤 행복한통일로 대표/을지대 겸임교수

 

프랑스를 급히 방문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프랑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유럽예선이 치러지는 통일골든벨 행사를 참관하는 것과, 북한의 솔제니친 반디 선생의 고발 소설집이 프랑스판으로 번역, 출판돼 지난달에 개최된 파리도서전에 출품했고 그때 계획했던 방문 일정이 연기되면서 교민사회와 프랑스 지성인들과의 만남을 위한 것이었다.16년 만에 찾은 프랑스였다. 도착하자마자 휴대폰을 켜는 순간 연신 자국민 보호차원에서 날아오는 긴급문자는, ‘파리테러 대비 신변주의 요망’이라는 단어로 조금은 걱정스런 파리 일정을 알리는 시작이었다. 그때가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강산이 두 번 변했을 즈음에 찾은 프랑스는, 연례행사로 치뤄지는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구간이 폐쇄된 줄도 모르는 이방인들은 이 열차만 타고 있으면 목적지에 데려다 줄 거라는 확신 아닌 확신으로 마냥 앉아있다 저녁이 다 돼서야 숙소에 도착한 수모를 겪고서야 유럽 최대 자유국가(?)의 진면목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지난달 3월 한불교류 130주년을 기념해 성대하게 치러진 파리도서전은, 한국과 프랑스 모든 지성인들에게 다시 없을 귀한 교류의 시간이었는데, 여기에 반디 선생의 작품이 첫선을 보인 것으로, 남북한 모두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는 즈음에 북한주민을 위한 인권 대한민국의 가치와 격을 보여줄 수 있는 더없는 기회가 되었으리라 예상했지만, 현장에서 접한 이야기는 그와 정반대의 분위기였다는 것에 한동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겠다.

먼저 민주평통 남유럽협의회가 주최한 통일골든벨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파리시내의 고등학교를 찾아갔을 때, 시내 한복판에 이렇게 큰 학교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한 가지 더 새롭게 알게 됐던 것은, 행사가 예정된 고등학교가 지난날 일제치하의 나라 잃은 설움으로 이역만리 이곳까지 와서 신지식을 통해 국권을 되찾겠다는 헤이그 특사 3인 중 한 분인 젊은 청년 이위종 선생이 유학했던 장송 드 세이라는 고등학교라는 사실을 알고, 청년정신의 열정과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었다.

교정 안으로 들어설 때 실내의 빈 공간마다 예술작품으로 가득 찬 모습에서 문화파리의 격을 새삼 느낄 즈음, 비록 한류바람으로 인기가 높은 한국의 위상이지만 교포사회의 위세가 크게 줄어들고 있고 프랑스 경제가 지속적으로 침체되는 어두운 분위기에서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참석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는데, 이미 예상문제집을 통해 어려움을 토로했다는 풍문(?)이 있었던지라 더욱 조바심이 났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 기우도 잠시, 하나 둘, 삼삼오오 짝을 이룬 낯익은 한국의 청소년들이 모여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프랑스 현지 학생들과 저 멀리 아프리카 등지에서 유학 온 청소년들까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를 연발하며 씩씩하게 입장하는 모습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행사장은 말 그대로 축제장, 학생들의 수다장으로 변모해 있었다.

골든벨 행사가 시작되고 보드판을 높이든 학생들의 열띤 경쟁, 탈락된 학생 등의 패자부활을 위해 한글을 가르치신 선생님들의 고군분투…. 중간중간 짧은 인터뷰로 통일에 대한 생각과 열정,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당당히 말하는 청소년들을 보고 있노라니 역시 이위종 선생의 후배들답게 정말 멋진 통일한국의 주인공, 세계무대의 선구자들임을 확인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하나 둘 탈락자와 골든벨에 다가가는 대상자가 생길 때마다 터져 나오는 탄성과 한숨은 통일에 대한 열정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자신들이 가르친 학생들의 처지에 함께 웃고 울던 한글 선생님들의 사랑과 관심, 행사의 결과에 관계없이 모두가 즐거웠던 이역만리 프랑스의 그날은 그곳이 바로 한반도의 통일이었고 함께 더 행복할 미래였다.

이역만리 조국의 통일을 가슴으로 노래한 프랑스 청소년들의 열정이 한반도에 통일의 축복을 가져다주리라 확신하며, 다음 여정을 위해 프랑스 지방으로 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음에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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