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전국 순행 길에서 시황제가 죽자 옥새를 관리하는 중거부령 조고는 아직 큰아들 부소에게 발송하지 않은 유언서를 손에 쥐고 있었다. 조고는 순행에 동행했던 막내 왕자 호해를 황제로 만들기 위해 그를 설득했으나 쉽게 응하지 않았다. 

“형을 폐하고 아우가 그 자리에 올라가 부왕의 조칙을 무시하고 황제에 올라 죽음의 공포를 스스로 초래하다니, 재능도 없는 주제에 남의 농간에 좌우되어 높은 자리를 넘보는 일, 그런 불의와 분에 넘치는 악덕으로 천하가 굴복하리라 생각한다면 큰 오해일 것이오. 머지않아 이 몸은 위기에 처하게 되고 진나라의 사직도 끊어질 것이오.”

조고는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은의 탕왕, 주의 무왕은 어쨌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 분들은 왕을 죽였습니다만, 천하의 인심은 그 분들을 불충이라고 비난하기는커녕 옳은 일이라고 칭송하지 않았습니까? 또한 위나라 왕은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위나라에서 그는 덕망이 높은 임금으로 불리었으며 공자도 그때의 사건을 기록할 때 불효라는 평가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큰일을 도모하려는 자는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아야 하며 큰 덕을 갖춘 자는 사소한 일 따위에는 속박되지 말아야 합니다. 작은 일에 얽매여 큰일을 잃는다면 반드시 화가 다가올 것입니다. 어물어물 하다가는 나중에 뉘우칠 일이 생깁니다. 어려운 일에 결단을 내려 행하면 귀신도 피해갑니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성공이 약속됩니다. 아무쪼록 결단을 내리십시오.”

그 말을 들은 호해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황제의 승하도 공포되지 않았고 장례도 치르기 전인데 어찌 이 일을 승상에게 의논하겠소?”  
“아닙니다. 그러기에 오히려 촌각을 다투는 일입니다. 이것저것 따지고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여 오직 달릴 따름이옵니다.”

호해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조고는 틈을 주지 않고 말을 다시 이었다.

“승상과 의논 없이는 이 일이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왕자님을 대신해 제가 나서 승상과 의논하겠습니다.”

조고는 곧장 승상 이사를 만나 설득하기 시작했다. “승하하신 폐하께서는 장차 부소에게 서한을 내리시어 당신의 유해를 함양으로 모시도록 하라고 명령을 하셨고 또한 부소를 후계자로 세울 것을 뚜렷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서한 말입니다만, 사실은 아직 발송하지 않았습니다. 황제께서 돌아가신 일은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서한과 옥새는 호해 왕자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승상과 제가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태자가 결정된다는 얘기가 되겠는데 승상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조고의 그 말에 승상 이사는 펄쩍 뛰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요?”

“승상께서는 잘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승상님과 몽염을 비교한다면 어느 쪽이 강자라고 생각하십니까? 능력과 공적, 그리고 장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천하의 인망을 얻고 있는 점, 또 큰 왕자 부소의 신임을 받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말씀해 보십시오.”

그래도 이사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몽염을 당할 수 없소.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거요.”

그러자 조고는 이사에게 바싹 다가앉으며 말했다. “저는 비천한 출신입니다. 다행히 문서 기록 직책에 처음으로 등용됐습니다. 그로부터 이십 년 동안 그 일을 맡아보고 있습니다만, 그동안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승상이나 공신이라도 파면이 되면 그 녹봉이 자손 대대로 계속 이어진 예가 별로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모조리 죽임을 당해 집안이 망해 버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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