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획] ‘목숨을 건 기록이 시작되다’ 독립운동가 조희제 <1부>
[역사기획] ‘목숨을 건 기록이 시작되다’ 독립운동가 조희제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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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으로 지켜낸 구국의 신념 ‘목숨을 건 기록이 시작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윈스턴 처칠 1965년
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 - Winston Churchill

“비록 한때 이름 없는 사람일지라도 절개와 의리를 굳게 지키며 몸을 바쳐 굴하지 않은 이들의 경우는 장하고 훌륭하다 하겠다.” -염재야록(念齋野錄) 서문-

[천지일보·천지TV=서효심 기자] 마루 밑 땅속에서 발견된 궤짝 하나.
궤짝에 숨겨져 있었던 것은 바로 낡은 책 한 권이었다.
‘덕촌수록’

하지만 책 속에 숨겨진 진짜 이름은 ‘염재야록’
이 책이 이토록 숨겨져 있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염재 조희제 선생의 야록, 덕촌수록이라고 표기된 염재야록 초고본이 공개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1895년 을미년 8월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이어 그해 11월 내려진 단발령으로 유생들의 반일감정은 극에 달했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양반 의병장을 중심으로 조선 말기 최초의 대규모 항일의병인 을미의병이 일어났다.

이러한 혼란 가운데 항일의병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지역 중심에 염재 조희제 선생이 있었다.

1873년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 절골에서 태어난 조희제 선생은 참봉 조병용 선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희제 선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총명하고 품행이 남달랐으며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화목했다.

조희제 선생에게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심어준 부친 조병용 선생은 평소에도 거리낌 없이 일본을 배척하는 발언을 하며 소신을 밝혀왔다.

그러나 일제의 만행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결국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사내대장부라면 이처럼 어지러운 날을 맞아 의병을 일으켜 토벌하다 죽어야 마땅하다. 뜻한 일을 이루지 못하고 집안에서 죽게 생겼으니 이 서러움을 어떻게 풀 것인가”

(1907년 1월 29일)

1907년은 고종의 양위와 군대해산으로 전국에서 의병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때 조희제 선생은 부친상을 당하게 된 것이다.

<선생 간찰>

“저는 운명이 기구해 일찍이 의지할 아버지를 여의고 곁에는 좋은 벗들의 도움이 없었습니다. 의지할 곳 없는 홀몸인데, 이웃에서는 입소리 없이 미워하고, 드센 무리들이 위태롭게 합니다. 가는 곳마다 욕을 당하니 여러 가지 기괴한 형편과 상황은 낱낱이 거론하기 어렵습니다… 어찌하면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듣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땅을 뚫고 들어가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어찌하겠습니까.” (정미년 1907년 7월 12일)

부친상을 치를 당시에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편지글에는 그가 얼마나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으며 국권을 상실하고 변해가는 세태를 바라보는 그의 참담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일찍부터 연재 송병선과 송사 기우만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워 도학과 의리의 요체를 깨달아 가슴에 새기고 적극 실천했던 염재 조희제 선생.

항일의식이 강했던 집안 분위기나 선생의 스승 역시 염재야록 집필의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스승 송병선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망국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음독 자결했다. 기우만은 을미사변 이후 의병활동을 펼치다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조희제 선생은 상당한 재력가로 한약방을 했었는데 한약을 팔았던 돈으로 많은 의병과 애국지사를 도왔다. 재산을 털어 회문산 산세를 활용해 숨어 활동하는 의병과 옥고를 치르는 애국지사들의 뒷바라지를 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선생의 집에는 의병들이 수시로 드나들었고 늘 일본 경찰의 삼엄한 감시를 받아야만 했다.

유학자로서 학문을 연마하며 한편으로는 국권을 상실하고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의 상황을 몸소 느끼며 스스로 나라에 충성하는 길을 찾았던 조희제 선생. 그는 염재야록 편찬을 결심한다.

▲ 나라에 대한 충심을 보이기 위해 염재야록을 편찬한 조희제 선생. ⓒ천지일보(뉴스천지)

염재야록 집필을 마음먹은 조희제 선생은 수십년에 걸쳐 각지를 돌아다니며 항일투쟁 사실을 모았다. 또한 법정에서 애국지사들이 재판을 받는 과정을 방청하며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기록하기도 했다.

1931년 마침내 두 권의 염재야록 초고가 완성됐다. 그의 나이 58세.
 

<2부>에 계속 됩니다..

(기획/취재/편집: 서효심 기자, 촬영: 황금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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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보여달라 2016-02-03 16:25:18
2부 2부!!!! 언제 나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