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새해 연휴기간, 공전의 대히트를 치는 영화 ‘히말라야’를 아내와 함께 봤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 영화화한 것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감동적이었다. 영화는 2004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실종된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2005년 휴먼 등정대를 결성한 엄홍길과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실제 상황선 박무택, 백준호, 장민 등 세 사람은 서로 도와주다가 8000m 고지대에서 같이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영화에서 필자가 가장 강렬한 느낌을 받은 것은 박무택 역을 맡은 영화배우 정우의 멘트였다. “왜 산에 오르냐구요. 힘들게 산을 오르다보면 가식적인 모습 말고 진짜 내 맨 얼굴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고인이 된 박무택이 실제 이 얘기를 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영화에서의 대사는 필자의 귀에 확 꽂혔다. 영화적 구성을 위해 산소의 양이 평지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8000m 고지대에서 정상적인 대화를 하는 등 현실과 다른 부분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아마도 고인이 산을 오르는 심경을 잘 표현한 대목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대사를 접하면서 35년 전 긴 산악행군을 했던 군대 시절이 떠올랐다. 자원해서 공수부대 장교로 근무하던 1980년대 초, 경상북도의 오지인 봉화군 청량산에서 한 달여간 야외훈련을 가진 적이 있었다. 60㎏의 무거운 군장을 메고 청량산 일대에서 습격, 매복 훈련으로 몸이 극심한 탈진상태에 이를 때마다, “이 고생을 왜 사서 했지? 정말 고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번민과 의문을 거듭 갖게 됐다. 이때 얻었던 답은 아마도 박무택 대원과 비슷한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 진짜 내 참된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배운 사람이 더 고생해야 한다는 각오를 갖고 군에 입대, 가장 훈련이 세기로 유명한 공수부대에 지원하면서 진짜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를 고민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참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지만 쉽사리 이를 볼 수 없다는 고민을 모두들 안고 있다. 윤리나 종교, 철학 모두 이런 고민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 많은 담론과 설법을 쏟아낸다. 스포츠도 이런 고민을 해결해주는 데 기여한다. 극한에 도전하는 스포츠에서 평소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인간의 존재감과 무한함을 맛볼 수 있다는 게 정설이다. 육체적으로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가면 정신적으로 두려움이 없어지며 ‘유체 이탈’ 현상을 맛볼 수 있는 게 스포츠가 갖고 있는 특징이자 장점이다.

마라토너들이 자신의 한계점을 극복하고 계속 뛰면 기분이 좋아지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는 비단 마라톤 주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등산가, 고도의 체육 훈련을 하는 군인, 스키어, 레슬러 등도 ‘러너스 하이’와 같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는 느낌, 세상의 꼭대기에 오른 듯한 순간을 체험할 수 있다.
프랑스 정신분석 철학가 라캉에 따르면 인간은 평소 자신의 모습과 진짜 모습이 일치하는 않은 삶을 산다. 외부적인 모습과 내부적인 모습이 같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인간의 모습은 외부적이기보다는 내부적인 것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인간의 삶을 연기가 아니라 참된 삶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겉치레의 외부적인 얼굴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내부적인 맨 얼굴의 모습을 볼 때 인간의 참된 의미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히말라야’가 영화 흥행면에서 성공을 거둔 것 못지않게 의미를 두게 한 것은 진정한 인간의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철학·종교에서 고민하는 인간의 깊은 성찰을 들여다보게 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병신년 새해에는 맨 얼굴을 드러나게 하는 스포츠의 진정한 의미를 통해 인간의 존재감과 무한함을 느끼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를 모토로 삼아 스포츠의 참된 가치를 구현하면서 경쟁 사회에서 가려졌던 인간의 순수성과 참신함을 찾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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