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지방자치를 시작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95년 시행된 지방자치제도는 어느덧 성년을 맞았다. 20살 청년으로 자라는 사이 각종 주민참여제도가 도입되고, 지방의회의 자치입법이 활발해지는 등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틀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지방의 중앙 종속 현상과 열악한 지방재정, 지역 간 불균형 심화 등의 문제도 숙제로 남았다. 이에 본지는 스무살을 맞은 지방자치의 성과와 문제점을 돌아보고 자치단체장들의 인터뷰를 통해 100년의 미래 지방자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

[천지일보=김지현 기자] 2010년 7월 12일, 이재명 성남시장은 취임한 지 10일 만에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지급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했다. 성남시는 전국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재정자립도가 높은 부자 도시였기에 지급유예 선언은 충격 그 이상이었다.

성남시가 지급유예를 선언한 데는 판교신도시 조성을 위해 마련한 판교특별회계가 화근이었다. 전 시장이 2007년 호화 신청사를 짓느라 일반회계에서 청사건립비를 사용했고 이를 메우느라 판교특별회계에서 5400억원을 전출했다. 이재명 시장은 이 중 5200억원을 갚을 수 없다며 지급유예선언을 한 것이다. 이 금액은 당시 성남시 일반회계의 45%를 차지하는 액수였다.

성남시의 지급유예 선언은 지자체의 재정 상태가 부실하다는 그간의 의혹을 더욱 증폭시킨 사건이 됐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지 20년이 됐지만, 지방정부의 재정은 더 악화됐고 재정자립도도 50%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의 재정문제는 성년이 된 지방자치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주요 문제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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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일로 걷는 지방재정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의 핵심은 결국 재원 문제다. 재원이 부족하여 중앙정부 재정에 의존하거나, 재정운용을 정부에 간섭받는다면 지방이 자치적으로 할 수 있는 부문은 그만큼 좁아진다.

우리나라 지방재정의 재원은 지방세와 세외수입이 있고, 지방교부세·국고보조금으로 구성되는 ‘의존수입’, 그리고 ‘지방채’로 나뉜다.

문제는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대 2에 머물러 있어 지방재정의 상당 수를 중앙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국가재정의 지원 없이는 자체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현실이다. 2할짜리 지방자치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세의 부과는 법률에 의한다는 ‘조세법률주의’로 인해 자치단체에서 조세의 종목과 세율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도 없다.

지자체 자체 수입으로 재정을 꾸릴 수 없는 상황은 대다수 지자체가 비슷하다. 전국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1995년 63.5%에서 올해 45.1%로 떨어졌다. 지방자치 시행 이후 20년 만에 20% 가까이 하락한 것이다. 최근 한국지방세연구원에서 내놓은 자료를 보면 전국 243개 자치단체 중 예산 대비 지방세 수입이 10%도 안 되는 곳이 98곳에 이른다. 자체수입으로 인건비조차 해결할 수 없는 지자체도 78곳이나 된다.

여기에 더해 지방 부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자치단체 부채는 계속 늘어나 2008년 19조원에서 지난해 말 기준 49조 8084억원으로 증가했다. 자치단체 소속 지방공기업 부채까지 합하면 100조원이 넘는다. 천문학적인 부채는 부메랑이 되어 지방정부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

지방재정이 악화한 데에는 중앙정부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지방자치단체 사회복지 분야 지출의 대부분은 기초연금, 영유아보육, 기초생활보장 등 국가 주도의 복지사업에 따른 지자체의 부담금이다.

전국 자치단체의 지난해 사회복지 지출은 42조 2005억원으로 2013년과 비교하면 8.8% 늘어났다. 자치단체의 전체 세출이 같은 기간 2.2%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증가 폭이 4배나 크다. 자치단체의 전체 세출 중 사회복지비 비중은 23.3%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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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단체의 도 넘은 방만 경영

재정악화에도 일부 자치단체장들의 방만 경영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선심성, 전시성 공약사업으로 예산이 낭비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인천시의 경우 아시아게임 경기장 건설을 위해 지방채 발행을 남발하면서 재정 위기에 몰린 후 몇 년째 빚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3년 기준 총부채가 13조원을 넘어섰고, 자산 대비 부채비율이 9.19%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높다.

강원도 태백시는 태백관광개발공사의 오투리조트 사업에 1년 총예산 약 3300억원의 50%에 해당하는 채무를 지급 보증한 결과 1761억원이나 되는 공사의 빚을 떠안게 됐다.

경기도 용인시는 1조원이 넘는 돈을 경전철 사업에 투자했다가 이용자가 없어 심각한 재정난을 겪었다. 경전철을 운영하는 데 매년 295억원의 비용이 필요하지만, 애초 예측 승객의 5%에 머물면서 운임 수입은 50억원에 그쳐 매년 수백억원의 혈세로 적자를 메워야 할 판이다.

괴산군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가마솥을 기네스북에 올리려고 5억원을 들여 쇠 가마솥을 제작했다. 하지만 호주에 이것보다 더 큰 가마솥이 있어 기네스북 등재에도 실패하고 5억 원의 혈세도 날려버린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전국에서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지역축제도 지자체 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축제 비용으로 사용된 지자체 예산은 3289억원에 달했지만, 수익은 728억원에 그쳤다. 110억원이 들어간 ‘오송국제바이오산업엑스포’는 지난해 가장 값비싸게 치른 행사였다.

경일대학교 최근열 교수는 “지역 축제가 지역브랜드를 높이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읍면동별로 진행되는 행사성 축제는 돈 낭비”라며 “기초자치단체가 243곳인데 행사성 축제만 매년 2500여개가 된다는 것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과 관련 없다”고 지적했다.

급기야 최근에는 막대한 빚으로 재정 위기 상태인 인천시 등 자치단체 4곳을 행정자치부에서 ‘예비 재정위기단체’로 지정했다. 지난 2011년 재정위기관리제도가 도입된 후 ‘주의’ 등급이 나온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지방재정 악화, 해법은 무엇인가

재정 운용에 대한 지방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해 미국과 일본 등에서 시행 중인 ‘지자체 파산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지자체 파산제는 민간기업의 워크아웃처럼 채무불이행 등으로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운 지자체에 중앙정부가 개입해 재정회생을 취하는 제도다. 부채비율이 일정 기준을 넘은 지자체에 파산 선고를 하고, 예산 편성 권한이나 자치권을 박탈하는 방식을 취한다.

지자체 파산제도가 도입되면 지자체에 경각심을 주어 전시 행정, 선심성 사업의 남발을 막고 지방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지만 중앙에 대한 재정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나라 지자체의 현실을 감안할 때 지금 당장 도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부는 지방재정 운용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자치단체 파산제도’를 뼈대로 하는 지방재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은 기존의 재정위기 관리제도와 연계해 자치단체가 재정난에 빠져 스스로 극복할 수 없게 되면 ‘긴급재정관리단체’로 지정하고 정부가 관리관을 파견, 지자체 예산편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전문가들은 지자체 재정문제에 대해서는 세법 개정 등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의 국세 대 지방세 비중은 각각 79대 21로 미국 56대 44, 일본 57대 43 등에 비해 턱없이 낮다. 반면 세출 비율은 40대 60으로 세금의 80% 이상은 정부가 가져가지만, 지방에서 쓰는 돈은 60%에 불과하다. 또한 지방세법, 지방세특례제한법, 조세특례제한법 등을 통해 중앙정부가 지방세 감면 결정을 내리면 지방정부는 수용할 수밖에 없다. 2013년 기준 국세 감면율은 14%이지만, 지방세는 23%에 달한다. 중앙정부가 지방세 감면을 결정하면 지방정부의 의견을 듣도록 하는 규정이 있지만 사실상 형식적 절차에 머물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경일대학교 최근열 교수는 “지방세 관련 법률 개정으로 조세감면에 대한 실질적이고 명확한 장치가 필요하다”며 “열악한 지방재정 확충을 위해 지방세제를 개편하는 한편 비과세·감면 세목을 정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대학교 홍준현 교수는 “지방정부가 책임을 지고 재정을 운용하려면 세입 측면에서의 분권과 자율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지방이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는 세원을 조절할 수 있도록 조세법률주의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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