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지방자치를 시작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95년 시행된 지방자치제도는 어느덧 성년을 맞았다. 20살 청년으로 자라는 사이 각종 주민참여제도가 도입되고, 지방의회의 자치입법이 활발해지는 등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틀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지방의 중앙 종속 현상과 열악한 지방재정, 지역 간 불균형 심화 등의 문제도 숙제로 남았다. 이에 본지는 스무살을 맞은 지방자치의 성과와 문제점을 돌아보고 자치단체장들의 인터뷰를 통해 100년의 미래 지방자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

▲ 1961년 김상돈 민선 초대 서울시장 취임식 모습. (사진제공: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천지일보=김지현 기자]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건국헌법에 의해 1949년 최초의 지방자치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됐다.

지방자치가 실제로 시행된 것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으로, 폐허가 된 잿더미 속에서 지방의원 총선거와 함께 지방의회가 구성됐다. 당시 선거는 지방자치법에 따라 서울시장과 도지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시·읍·면장만 주민의 투표로 뽑았기 때문에 완전한 지방자치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이후 지방자치법은 5차에 걸쳐 개정을 거듭했고, 지방분권과 중앙집권 체제 사이에서 헤매다가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인해 1960년 선거를 끝으로 지방자치 시계는 멈춰버렸다.

이렇게 끝날 것만 같았던 지방자치는 민주화 바람을 타고 1988년 4월 지방자치법이 전면 개정되면서부터 빛을 보게 된다. 민주화의 정점을 찍은 직선제 개헌 이후 2차례의 개정을 통해 1991년 4월 30년 만에 지방의회가 구성되면서 지방자치는 부활하게 된다.

문민정부 시절인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모두 주민직선으로 선출하는 4개의 지방선거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동시에 시행되면서 본격적인 민선 지방자치 시대의 문이 열렸다.

이후 4년에 한 번 치러진 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 1956년 경기도 의정부 지방선거 모습. (사진제공: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지방자치 20년의 성과

1995년 민선 지방자치 시대가 열린 후 20년간 자치제도 기반이 다져지고 주민과 생활과 밀접한 여건들이 개선된 것으로 평가됐다.

행정자치부 ‘지방자치 20년 평가’ 내용에 따르면 자치단체의 복지예산 비중은 1996년 7.5%에서 2013년 27.6%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인구 10만명당 사회복지시설은 2003년 3.3개에서 2012년 15.6개로,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은 2006년 1만 8512명에서 지난해 3만 448명으로 늘어났다.

지방자치의 꽃인 지방의회의 입법 활동도 활발해져 조례 수가 1995년 3만 358개에서 지난해 6만 3476개로 2배 정도 증가했다. 특히 여성들의 지방정치 참여가 두드러졌다. 여성 지방의원 수는 175명에서 839명으로 약 4.8배 증가했다.

제도적으로는 선거를 통해 주민대표를 선출하는 대의 민주주의가 확립했으며, 주민투표·주민소환·주민소송 등이 도입되면서 주민 직접참여의 기반이 마련됐다. 국민제안이 19배 늘어난 것을 보면 주민참여가 정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선 6기 이후 온라인을 통해 정책수립 전 과정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방안이 일부 시범적으로 도입되기도 했다.

국민 대부분도 지방자치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지방자치 20주년을 맞아 실시한 대국민인식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8명은 ‘지방자치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20대와 30대의 약 90%가 지방자치가 필요하다고 대답한 걸 보면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지방행정은 중앙집권적인 정책 시행에서 자치단체에 권한을 이양해 자율적 집행으로 변화했다. 주민이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을 선출하고 지방정책에 주민 참여가 정착되면서 지방행정은 주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에 자치단체에서는 중앙정부의 획일적인 방침에서 벗어나 지역 맞춤형 새로운 정책 시도로 이어졌다. 지역 맞춤형 일자리 창출과 마을공동체 사업 등은 중앙정부에서도 관심을 갖는 사업이다.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개표 모습. (사진제공: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아직 갈길 먼 지방자치

지방자치가 여섯 번의 선거를 치르는 동안 주민생활 개선과 제도발전은 이뤘지만 아직은 홀로서기가 가능한 성년으로 인식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민 간 소득 격차가 커지고 지역 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면서 단체장을 바꿔봐야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주민의 실망감은 더욱 커졌다.

지방행정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 10명 중 4명 이상은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에 만족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공무원과 자치단체장에 만족한다는 국민은 각각 32.2%와 31.0%에 머물렀고, 특히 지방의원들에 대해서는 ‘불만족’이 47.7%에 달했다. 만족한다는 응답은 23.5%에 불과해 지방의회에 대한 불신이 강했다.

주민의 실망감을 드러내듯 지방선거 투표율은 지방자치 시행 첫해에 68%에서 2002년엔 48%까지 떨어졌고 이후 계속 50%대에서 게걸음을 하고 있다.

지역 간 소득 불균형과 중앙정부에 대한 재정 의존도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세입면에서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은 8대 2에 머물러 중앙에 대한 재정 의존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실제 지방재정자립도는 1995년 63.5%에서 2014년 50.3%로 낮아졌다. 재정의 중앙정부 의존 심화로 인해 지방정부의 책임성과 자율성이 부족하다는 한계도 드러났다.

경일대학교 최근열 교수는 “지방분권과 주민참여라는 본래 가치를 실현하는 데는 지방자치가 아직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며 “성공적인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과 지방세재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앙대학교 홍준현 교수는 “재정분권은 지방자치 정착화에 선결 조건”이라며 “지금처럼 지방재정 지출에 상당한 부분을 중앙정부에 의존한다면 자치단체와 주민들은 지방정부 재정에 대한 책임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의 비리와 불법선거는 지방자치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웠다.

2010년 선출된 민선 5기의 경우 자치단체장 244명 가운데 27명이 실형을 선고받아 자격을 잃었다. 전북 임실군은 1995년 민선자치 시행 이후 군수 5명 가운데 4명이 중도 하차했고, 그중 3명이 교도소 신세를 져야 했다.

이렇다 보니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에 대한 주민의 평가가 박할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가 지방의 자율권과 재정권을 제약하는 근거가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 교수는 “지방자치의 주인은 주민이기에 ‘주민’의 실질적인 행정 참여가 자치단체장들의 비리를 견제할 수 있다”며 “읍·면·동 단위로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이에 대한 교육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지방정부가 책임을 가지고 지방자치를 실현하려면 정부로부터의 세입에 대한 분권과 자율성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즉, 주민이 부담하는 세금으로 행정이 이루어져야 주민참여 동기가 확보되고 주민이 정책에 더 관심을 갖고 참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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