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배후 찾아 무자비하게 파괴할 것” 보복 예고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록 콘서트를 보려고 6000여명이 모여있던 공연장에 돌연 총탄이 빗발치면서 현장이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무차별 총격에 사상자가 200명을 훌쩍 넘기는 등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이슬람 무장세력이 수백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1000명 이상을 인질로 잡은 지난 2004년 베슬란 학교 참사 이후 러시아에 대한 최악의 공격으로 기록됐다.

22일(현지시간) 저녁 모스크바 북서부 외곽에 있는 대형 공연장 ‘크로커스 시티홀’에서 무차별 총격이 벌어져 62명이 숨지고 146명이 다쳤다고 러 타스 등 현지 언론과 로이터 등 외신이 이날 전했다. 직전 발표의 40명의 사망자, 100여명의 부상자 수보다 크게 불어난 규모다. 사상자 중에는 어린이를 포함한 여성, 노인들도 여럿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자는 지금보다 더 늘어날 전망이다. 러 보건 당국은 현재 약 145명이 다친 상태로, 그중 60명 정도는 위독한 상태라고 발표했다.

이날 저녁 공연장에서는 ‘피크닉(Picnic)’이라는 러시아 록 밴드가 공연할 예정이었다. 공연장은 6200석 규모였다. 표가 매진된 것으로 볼 때 참사 당시 6000명 안팎의 관중들이 모여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도에 따르면 무장괴한 최소 4명이 공연장에 침입해 로비와 공연장 내 관람객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했다.

확인된 영상에는 앉아 있던 관람객들을 향해 총격을 가하는 괴한들의 모습과 함께 로비에 누워있는 다수의 시신들도 목격됐다. 로비와 공연장 내에서 비명 소리가 울리면서 인파가 출구로 몰려드는 모습도 비쳤다. 한 목격자는 “모두가 도망쳤다. 비명과 함께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달려갔다”고 말했다.

이후 대형 화재까지 발생해 팬들이 대피소로 몰려들었다. 공연장 화재 면적이 3000㎡에 달하고 화염에 휩싸인 공연장 지붕이 무너졌다고 현지 매체들은 보도했다.

러시아 비상사태부는 공연장 지하를 통해 100명 정도 구조했고, 옥상을 통한 구조 작업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주러시아 대사관 측은 지금까지 한국인 사상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전했다.

이번 참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선에서 압승해 정권을 굳힌 뒤 불과 며칠 만에 발생했다.

총격 사건 발생한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공연장. (AFP/연합뉴스) 2024.03.23.
총격 사건 발생한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공연장. (AFP/연합뉴스) 2024.03.23.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각)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서 열린 대선 승리와 크림반도 합병 10주년 기념 음악회에 참석해 관객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5~17일 실시된 러시아 대선에서 득표율 87.28%로 압승하며 5선에 성공했다. (AP/뉴시스) 2024.03.23.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각)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서 열린 대선 승리와 크림반도 합병 10주년 기념 음악회에 참석해 관객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5~17일 실시된 러시아 대선에서 득표율 87.28%로 압승하며 5선에 성공했다. (AP/뉴시스) 2024.03.23.

참사가 발생한 공연장도 러 크렘린궁(대통령실)에서 불과 20km 떨어진 곳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새벽 비상회의를 소집하고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을 비롯한 보안 책임자들로부터 상황을 보고받고 있다고 크렘린궁이 밝혔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이번 사건을 “피비린내 나는 테러 공격”으로 규정하고 국제사회가 규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도 “(배후가) 우크라이나 정권의 테러리스트라는 것이 확인된다면 모두 찾아 무자비하게 파괴될 것”이라며 보복을 예고했다.

사건 직후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는 테러 행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러 수사 당국은 칼라시니코프 자동 소총, 여러 개의 예비 탄창이 달린 조끼, 그리고 탄피가 담긴 가방 사진을 공개했다. 러시아 일부 언론에서는 흰색 승용차에 타고 있던 괴한 2명의 사진을 게재했다. 현재까지 공격자들의 정확한 신상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슬람 무장세력 IS는 성명을 내고 자신들이 총격 사건의 배후라고 자처했으나 이렇다 할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미국 백악관은 희생자를 애도하는 가운데 현재로서는 우크라이나가 연루된 징후는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로시야24 방송에 나와 “미국은 비극 속에서 어떤 근거로 누군가가 죄가 없다고 결론 내릴 수 있느냐”면서 “미국이 신뢰할 만한 정보를 갖고 있다면 즉시 내놔야 하고 그렇지 못한다면 백악관은 누구에게도 죄가 없다고 할 권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모스크=AP/뉴시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외곽 크라스노고르스크에 위치한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22일(현지시각) 총격이 발생해 최소 40명이 사망했다. 사진은 이날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 상공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는 모습. 2024.03.23.
[모스크=AP/뉴시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외곽 크라스노고르스크에 위치한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22일(현지시각) 총격이 발생해 최소 40명이 사망했다. 사진은 이날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 상공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는 모습.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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