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성 전 명지전문대 겸임교수/법학박사

양극화(polarization)는 사회적으로 양분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어느 사안에 관한 논쟁이 진전될수록 사람들이 합의에 근접하기보다는 양측으로 더 멀어져가는 경우를 말한다.

정보가 홍수를 이루는 현대사회에서는 당사자들이 공통된 이해관계를 확인하여 오해를 풀고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기 수월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정보사회에서도 각자가 갖고 있는 견해차는 좁혀지기 어렵다.

자신과 견해가 다른 경우 그 사람들이 사실을 제대로 모른다거나, 너무 감정에 휘둘려서 상황판단을 못한다거나, 너무 아둔해서 그렇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은 이를 ‘동조편향’으로 설명한다. 오래된 실험을 예로 들어본다. 각기 8명으로 구성된 다수의 집단에 몇 가지 문항을 보여주고 정답을 고르게 했다. 집단마다 한 명씩 배치된 피실험자를 마지막 여덟 번째 배치하고 앞의 7명은 사전에 모의하여 명백히 틀린 답을 선택하게 했다. 실험의 피실험자들 1/3은 나머지 구성원들에게 동조하여 명백히 틀린 답을 선택했다.

이러한 동조편향은 두 가지로 설명된다. 하나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의견이 다르기를 원하지 않으며,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들의 일치된 판단이 자신의 판단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는 이유이다. 이러한 동조현상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현실의 개개인인 우리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1846년 헝가리 비엔나종합병원의 산부인과는 전문의사들이 임산부 환자를 치료하는 제1병동과 조산사들이 맡는 제2병동으로 구분되어 운영되었다. 제1병동에 근무하던 내과의사 제멜바이스는 조산사들이 맡은 제2병동의 임산부 환자 사망률(3~4%)에 비하여 전문 의사들이 치료하는 제1병동의 사망률(10%)이 높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고 조사했다.

결론은 시신을 부검한 의사들이 임산부 환자를 치료할 때 사망률이 높다는 상관관계를 파악하고 의사들의 손을 염소 성분 소독제로 씻게 하여 제1병동의 사망률을 1% 밑으로 떨어뜨리는 성과를 일구었다.

제멜바이스는 수많은 여성과 아기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료 의사들의 신망을 받기는커녕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의사들의 손을 조산사들보다 더럽게 보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동료 의사들은 제멜바이스 연구 결과에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판했고 결국 제멜바이스는 비엔나종합병원에서 쫓겨나야 했다.

동조편향은 합리적 판단과는 별개로 작동한다. 그저 무리로부터 튀어나와 보이기를 원하지 않는 심리를 반영할 뿐이다. 제멜바이스 사례는 동조편향에 따른 양극화현상이 우리 개인의 피해로 돌아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극단적 편향은 사회 전체의 질서를 붕괴시키기도 한다. 1932년 히틀러는 대통령 선거에서 2위로 낙선했다. 그러나 반유대주의와 인종차별주의, 극단적 민족주의를 강조한 히틀러가 독일 총통에 취임하여 국가권력을 장악한 시기는 단 2년이 지난 1934년 8월이었다.

급진적 정치세력으로서 극단적 정치운동을 펼친 히틀러와 나치당은 정치적 분열과 공포감을 조장하여 독일 민심을 장악한 것이다.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민주주의 체계를 무너뜨린 역사적 사례라고 하겠다.

극단적 편향을 피하는 합리적인 방법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당사자들이 접촉하고 의견을 교환하며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인지 인지할 기회를 갖는 데 있다.

심리학자들은 연결망 실험을 해보았다. 양분된 두 개의 무리에서 각각의 당사자들을 연결하는 관계를 만들어서 서로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관찰했다. 서로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당사자들은 연결망을 통해 더 나은 선택을 인지하게 되면 시차를 두고 행동 변화에 반영했다. 그러나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방과 연결되지 못하고 같은 성향의 부류와 관계를 유지한 경우에는 더 나은 선택을 고려하지 못한 채 기존 의견에 일방적인 동조편향을 보였다.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 SNS는 동조편향을 효율적으로 극대화한다. 바로 ‘알고리즘’이 그 역할을 한다. 사용자의 시청 이력과 채널 영상 실적(관심도, 참여도, 만족) 등을 고려하여 사용자의 성향과 비슷한 동영상을 추천한다. SNS의 알고리즘에 의한 동조편향은 서로 다른 의견을 접할 기회조차 어렵게 만든다. 그로 인해 특정한 사안에 대립된 의견은 무리를 지어 더 멀어지게 된다.

총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은 국민과 여론의 향방을 살펴보고 비판적인 목소리에 담긴 합리성을 수용하여 타협하는 등 자신이 처한 위치를 수시로 확인해 나가야 한다. 종국에는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고 국민이 설정한 정치세력 구도 속에서 통합을 지향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정당 지지율 26%를 받은 비례정당 조국혁신당의 제1호 공약은 특검이다. 더 나아가 탄핵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화답하듯이 모든 정치세력이 힘을 합치자고 제안했다. 여권인 국민의힘은 ‘막말’을 사유로 공천 취소하는 와중에 ‘언론인 회칼 테러’ 발언으로 더욱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양대 진영은 해명을 하기도 하고 번복하거나 막말 당사자가 공직 사퇴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당화’는 사실이 아닌 인식에 기반을 둔다고 했다. 국민이 얼마나 공감할지 의문이다.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것이 선거전략은 아닐진대 그 대립각이 너무 크고 거칠다. 지나친 양극화는 사회뿐만 아니라 국민 개인에게도 불행한 일이 될 수 있다. 너무 나간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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