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손짓에 서방 등 적극 화답
북 ‘고립 탈피’, 서방 ‘관계 선점’
미국도 北-서방 외교 행보 지지
남북은 등돌린 채 갈수록 안갯속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새해를 맞이하여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국기게양식과 축포 발사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2024.1.1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새해를 맞이하여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국기게양식과 축포 발사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2024.1.1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서방 국가가 북한과의 외교 재개를 서두르고 있다. 북한의 적극적인 움직임과 맞물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폐쇄됐던 유럽 각국의 북한 주재 대사관 재가동 소식이 연일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독일 외무부가 평양을 방문한 사실이 공개됐고, 28일에는 주북 스웨덴 대사에 임명된 인물이 북한을 방문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지난 1일에는 유엔이 평양주재 유엔 상주조정관을 임명했다고 밝혔고, 영국과 폴란드 등의 관련 움직임도 잇따라 포착됐다. 6일에는 스웨덴 정부를 통해 주북 스웨덴 대사 내정자가 북한을 방문한 사실이 확인됐다.

북한의 손짓에 서방이 적극 화답하고 있지만 단절된 남북 관계는 앞이 보이지 않은 채 여전히 깜깜한 상태다. 작금의 상황도 남북은 서로 지지않겠다는 듯 상대를 자극하는 말폭탄만 늘어놓고 있어 관계 개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더욱이 지금은 북한이 민감하게 여기는 상반기 한미 연합훈련이 진행 중이라 도발 가능성이 큰 만큼 군사적 긴장이 한층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서방‧유엔, 북한과 외교 속속 재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러시아와 중국 등 우방국에 한정해 열었던 북한이 지난달 26일 서방 국가로는 처음으로 독일 외무부 대표단의 입국을 허용했다. 당시 주북한 중국대사관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사진을 통해 알려졌다.

독일 외무부 대표단은 최근 북한 외무성 초청으로 평양을 찾았고 독일 외무부 대변인은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평양 공관 복귀를 염두에 두고 시설 점검 등을 위해 외무부 인사를 북한에 보냈다고 전했다.

독일 외무부 대표단에 이어 주 28일 주북 스웨덴 대사에 임명된 인물도 북한을 방문했다고 주북 중국대사관이 밝혔다. 왕야쥔 대사가 북한을 방문 중인 벵트손 주북 스웨덴 대사 내정자를 만났다고도 했다.

6일에는 스웨덴 외무부가 안드레아스 벵트손 스웨덴 대사 내정자를 비롯한 대표단의 평양 방문에 대해 묻는 미국의소리(VOA) 방송의 질의에 스웨덴 대표단의 최근 방북은 외교관의 평양 복귀를 준비하는 차원이었다고 확인했다.

영국과 폴란드 등도 움직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영국 외무부의 기술·외교 분야 대표단이 조만간 평양에 방문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고, 스위스와 폴란드 외무부도 북한과 자국 대표단들의 방북 일정을 조율 중이라 말했다.

유엔기구와 비정부기구들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비정부기구들에는 여전히 빗장을 채우고 있지만 유엔에는 입국이 허용된 분위기다. 유엔은 이달 1일자로 북한주재 상주 조정관을 임명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주재국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평양에 상주하는 외교관이기에 아그레망(주재국 동의) 절차를 거쳤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따라서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개발계획(UNDP), 세계식량계획(WFP),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등 평양에 상주하던 다른 국제기구 직원들도 비슷한 시기 다시 평양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방-북한 외교 재개에 적극적인 배경은

유럽 등 서방 국가와 북한 간 외교를 정상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코로나19 이후 중국과 러시아 등 친북 성향의 국가하고만 제한적으로 교류해오던 북한이 외교 재개에 적극적으로 돌아선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대북 제재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외교적으로도 위축된 북한이 대외 활동을 본격적으로 재개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인데, 동시에 서방 진영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많다. 북한과의 관계 선점에 적극 나서는 서방의 속내가 주목되는 건 이 때문이다.

실제로 관계 복원하는 국가들을 면면을 보면 영국을 제외하면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포탄 등 무기 지원을 이유로 북한을 적성국으로 규정하고 제재 대상으로 올려놓은 국가들이라는 점이다. 제재 대상국과 외교관계를 회복하겠다는 것인데, 그만큼 얻어낼 게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는 설명이다.

한 전문가는 독일을 예로 들고 “북한이 독일의 타우러스 미사일, 즉 현존하고 있는 최강의 무기인 공대지미사일에 대한 남한 수출을 문제 삼을 수도 있다”면서 “노무현 정부 때부터 도입했고 이후 대량 구입에다 생산 계획까지 진행하고 있는데 이 미사일에 대한 시비를 걸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치 편향 외교로 남한이 자꾸 패싱되고 서방 진영과 북한이 보다 밀착하는 일이 현실화할 경우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외교 다변화를 시도하는 움직임도 같은 이유인 셈이다.

북한의 외교관계 재개는 서방의 자본 유치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완화 조짐이 없는 대북 제재로 북한이 당장은 자신들의 의도대로 투자 유치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미국 대선 결과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고 북미 관계가 진전된다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정부도 4년 만에 이뤄진 유럽 등 서방 외교관들의 잇따른 방북 관련 행보를 고무적으로 평가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4일(현지시간) 최근 독일 외무부 대표단 방북 등 서방국들의 관련 움직임에 대한 VOA의 논평 요청에 “우리는 다른 나라 외교관들의 평양 복귀를 지지하고, 이를 통해 북한과의 대화와 외교, 기타 형태의 건설적인 관여가 다시 활발해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북한 상황 관리에 방점이 찍힌 모습이다.

◆남북은 되려 군사적 긴장 고조

서방이 북한에 몰리고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 등 우방국을 넘어 서방에도 외교의 문을 열어가고 있음에도 남한 정권인 윤석열 정부는 가치외교로 대변되는 미일과의 연대를 고집한 채 동북아 움직임과 동떨어져 있어 우려된다. 북한의 봉남(남한 봉쇄) 속 남측은 기꺼이 고립을 자초하는 듯한 형국이라 걱정스럽다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북한과의 접촉면은 남한을 거쳐야 했지만 윤 정부는 중재자 역할은커녕 현재는 북한 접촉국의 설명조차 없다는 평가다. 최근 북일 관계 개선을 언급하고 나선 일본도 노골적으로 패싱하고 있다. 윤 정권의 굴욕적일 정도의 끝없는 구애에도 눈치조차 보지 않고 자국의 이득 앞에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문 정부 당시 한반도 문제에서 일본은 철저히 배제됐지만 지금은 한반도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남북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분명하다. 윤 정부 출범 이후 남북 관계는 경색국면을 넘어 완전히 끊어졌다. 남북은 지금도 여전히 등돌린 채 갈수록 안갯속이다. 관계 개선 가능성이 없는 데다 되려 윤 정권의 경우 대결을 조장한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니 서방 입장에서는 당연한 게 아니냐는 논리다.

북한은 연초부터 남북을 동족 관계가 아닌 두 개의 국가로 규정하고 통일 관련 대남기구를 정리한 데 이어 정치 분야에서부터 주민 생활 분야에 이르기까지 집요하게 민족이니 통일이니 하는 표현 지우기에 매달리고 있다. 남측과는 상종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로다.

윤 정권 역시 한치도 뒤지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올해 들어서자마자 신년사에서 말폭탄을 쏟아내더니 최근 3.1절 기념사에는 자유주의라는 기치 아래 통일을 연결 짓는 등 이른바 ‘흡수통일’을 연상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을 샀다. 극우‧뉴라이트 세력이 대통령실 안보실을 차지하고 있는 결과물인데, 민족공동체 통일방안도 수정‧보완할 것이라고 말해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게다가 현재 상반기 한미 연합연습인 ‘자유의 방패’가 시행 중이다. 야외 기동훈련도 작년보다 2배가 늘었다고 홍보한다. 윤 대통령은 이날도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이라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며 군이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4.10 총선을 앞두고 마치 북한 도발을 위한 기우제를 드리는 듯한 모양새라는 의견도 나온다. 마침 북한이 국방성 담화를 통해 “전쟁 연습 노골화”라면서 맹비난한 다음날이기도 하다.

다만 전문가 일각선 북한이 이 기간 잠잠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미국의 힘이 작동했다는 것인데, 한국과 미국의 해병대가 해안에 상륙해 반격하는 쌍룡훈련이 이번 한미 연합훈련에서는 실시되지 않은 걸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쌍룡훈련은 북한이 가장 반발하는 훈련이다.

또 주한 미 제8전투비행단(8전비) 소속 전투기가 태국에서 열린 다국적 연합훈련 ‘코브라 골드’에 참가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는데 같은 맥락이다.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의 비중 자체를 축소하고 있는 건 북한 관리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은 윤 정권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부추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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