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취소되면 죽으란 소리”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 ‘몫’
“환자 목숨 갖고 거래하는 것”
세브란스병원 수술 50% 축소

19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인턴과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에 나서면서 환자와 보호자 사이에서는 ‘의료대란’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보건복지부는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에게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한다고 밝혔다. (출처: 연합뉴스)
19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인턴과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에 나서면서 환자와 보호자 사이에서는 ‘의료대란’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보건복지부는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에게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한다고 밝혔다.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유영선, 김민희 기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암환자들은 지금 난리 났죠.”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난소암 4기 환자 한모(60)씨는 “암에 스트레스가 안 좋은데 그거(의사 파업) 때문에 수술 날짜 밀릴까 봐 환자들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외래로 항암 주사를 맞고 돌아가던 한씨는 “간호사에게 (의사 파업에 관해)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며 불안감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외래 항암하는 우리 같은 사람은 그나마 나은 상황이지만 급한 사람들은 수술이 취소되면 다 죽으란 소리”라며 “환자 볼모로 파업하는 의사들이나 갑자기 (대책 없이) 정원을 2000명씩 늘리겠다는 정부나 둘 다 너무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을 예고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18년째 CRPS(복합부위통증증후군)으로 투병 중인 환자 이모(30대, 여)씨는 “예전에 파업했을 때도 전문의가 파업하는 바람에 진료가 엉망이 됐었다”며 “다행히 교수님이 스케쥴을 빼서 진료를 봐주셨는데 파업할 때마다 피해 보는 건 환자들”이라고 호소했다.

아주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진료받는 이씨는 “예전에 파업할 때 교수들만 진료를 보고 전문의는 아예 안 보이는 정도였다”며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건 상관없는데 전문의가 없으면 치료에 문제가 생기니 그 부분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의사들은 밥벌이가 달렸으니까 파업하는 건 이해가 가는데 환자 생명을 담보로 파업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김모(35, 여)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레지던트들이 다 그만두니까 교수님들한테 직접 보고해야 한다. 그래서 입원 환자를 지금 안 받고 있다”며 “환자 목숨 갖고 거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소아과 의사가 부족하고, 응급실 의사 부족해서 구급차 안에서 환자 죽어가는 게 몇 번째인데, 그러면 의사 수를 늘리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대부분의 외래 환자들은 진료에 큰 차질은 없었다. 다만 세브란스병원 전공의들이 이날 집단 사직서 제출을 완료해 ‘의료공백’이 우려되고 있다. 게다가 세브란스병원은 수술을 50% 축소했다.

외손녀의 성조숙증 치료를 위해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를 방문한 최모(68, 여, 경기도 부천시)씨는 “전공의가 집단행동한다고 해서 불편한 건 없었고 정상적인 진료를 받았다”며 “예약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으면 문자가 왔을 텐데 문자가 안 와서 제시간에 진료를 잘 받았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남매를 데리고 병원에 온 유모(44, 여, 서울시 은평구)씨도 “아이들의 심리 치료를 위해 상담받으러 왔다”며 “뉴스를 통해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가 심각하다는 걸 보긴 했지만 큰 수술을 받거나 하는 게 아니라서 걱정은 없었다”고 했다.

서울 빅5 대학병원(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 이후 근무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19일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 내 전공의 전용공간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서울 빅5 대학병원(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 이후 근무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19일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 내 전공의 전용공간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세브란스병원은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의료진이 부족해 진료가 늦어질 수 있다는 안내도 하고 있었다.

22개월 딸의 영유아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박모(33, 여, 서울시 영등포구)씨는 “검사실 앞에 ‘의료진 부족으로 검사가 좀 늦을 수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며 “예약 시간보다 일찍 갔는데 진료가 좀 늦어지긴 했다”고 설명했다.

소아청소년과 건물 1층에서 만난 한 간호사는 “일단 피부로 지금 와닿는 것은 레지던트 인력이 빠져서 일이 많이 바빠진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이 현실화하면서 “그대로 수술받을 수 있는 거냐”는 환자들의 문의도 쏟아지고 있다.

빅5 병원에서 오는 21일 수술 예정이었다는 한 암 환자는 환우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입원 안내하는 문자가 오지 않아 전화해보니 월요일(19일)은 돼야 확실히 알 수 있다며 일단 대기하라고 하더라”며 “입원해도 수술이 취소될 수 있다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제왕절개로 쌍둥이를 출산할 예정이었으나, 수술을 하루 앞두고 연기를 통보받았다는 환자의 사연도 전해졌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부모님의 목디스크 수술이 무기한 연기돼 당황스럽다는 보호자의 성토, 당장 분만을 앞두고 출산 시 무통 주사가 불가능하다는 통지를 받았다는 임신부 등의 사례도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은 이날까지 전원 사직서를 내고, 20일 오전 6시를 기해 근무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빅5’ 전공의는 총 2700여명으로 ‘빅5’ 병원 의사 중 39%가량을 차지하고 있고, 중환자 진료나 야간·휴일 응급환자 진료, 수술 보조 등을 맡는 경우가 많아 환자들의 불편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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