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잡기 위한 美 금리 인상
인플레는 통화가치와 연관
달러 가치 떨어져 인플레 올라
배경엔 브릭스 ‘노 달러 운동’

[요하네스버그=AP/뉴시스] 23일(현지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제15차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요하네스버그=AP/뉴시스] 23일(현지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제15차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천지일보=이솜 기자] 최근 많은 언론이 미국 증시의 초단기 반짝 활기와 국제통화기금(IMF)의 미국 성장률 전망치 상향(1.4%→2.1%)에 주목했다.

이 가운데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8일(뉴욕 현지시간)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하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실질금리가 상승하면서 연방준비제도(연준, Fed)가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는 당초 물가상승률을 2% 이내로 잡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렸다. 한때는 0.75%p씩 4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올리는 파격을 보이기도 했다.

공격적으로 높인 기준금리 덕분에 물가가 잡혔다. 그런데 이번엔 실질금리가 올랐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수치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명목금리 상승분보다 물가상승률이 더 많이 더 빠르게 하락하니 실질금리가 오르는 것이다.

같은 과정을 더 쉬운 말로 설명할 수 있다.

물가가 너무 올라 미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파격적으로 올려 간신히 물가를 잡았다. 정확히는 고삐 풀린 물가를 잡아둘 단초, 곧 고삐를 잡아 외양간(거시경제)에 묶어둘 정도는 됐다는 의미다.

그런데 높은 금리는 총공급과 총수요를 동시에 위축시킨다. 너무 높은 금리는 거시경제에서 총수요를 구성하는 소비와 투자, 정부지출, 수출을 위축시킨다. 소비와 투자가 줄면 기업은 생산량을 줄여야 하고 이에 따라 고용도 꺼리게 된다. 이러면 정부는 소비세와 직접세(법인세, 소득세)로 세금을 덜 걷게 돼 경기부양을 위한 정부지출도 제약을 받는다. 요약하자면 높은 금리는 경기침체를 부르는 것이다.

경기가 침체되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려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 그런데 미 연준은 금리를 쉽게 내리지 못한다. 한번 금리를 내린 뒤 다시 올리기 어렵고, 무엇보다 물가가 다시 반등하지 않을 정도로 잡힌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에스더 조지 전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총재 지난해 연말 야후파이낸스와의 인터뷰에서 미 연준이 그동안 매우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려 긴축 조치를 취했고, 이에 따라 공급 뿐만 아니라 수요가 둔화한 점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금리를 인하하는 데 너무 주저하면 노동시장이 복구하기 어려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소에도 금융비용이 평균 25%에 이르는 미국 가계의 고금리 부담이 잠재 노동 인력들을 회복 불가능한 파탄 지경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경고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등 위험자산 투자 심리가 다소 회복되면서 달러가 4거래일만에 1270원대까지 떨어진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들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290.5원)보다 12.5원 내린 1278.0원에 출발했다. (출처: 뉴시스)
달러화. (출처: 뉴시스)

◆美 러시아 제재가 부른 나비효과

그런데 미국이 막대한 경기침체를 감수하면서까지 파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 이유는 뭘까.

베네수엘라에서 배추 한 통을 사기 위해 리어카에 자국 지폐를 가득 싣고 가는 보도 사진을 보면 누구나 베네수엘라 법정화폐가 가치가 폭락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몇 년 전 미국에서 물건값이 3~4배 올랐을 당시에는 미국인은 물론 세계 누구도 미국 달러의 가치가 폭락했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인플레는 통화가치가 떨어진 결과임을 이해하면서도 미국의 초인플레(hyper inflation)는 베네수엘라와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면 미국 달러의 가치는 왜 떨어지기 시작했을까. 전 지구적 달러 결제 시스템을 유지하던 와중에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그런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 제재(sanction) 조치를 단행한다. 바로 러시아의 해외계좌를 동결한 조치다. 전쟁 이후에도 유럽 등 전 세계에 에너지를 공급(값도 올라 매출은 오히려 올랐다)해온 러시아는 미국의 제재로 달러로 에너지 수출대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오로지 루블화로 밖에는 거래대금을 못 받게 됐음을 거래처에 알리자 에너지 수입상들은 루블화로 환전해야 했고, 한때 루블화 가격이 치솟았다. 탈달러(De-dollarization)의 방아쇠가 당겨진 순간이다.

때마침 산유국(이란, 사우디 등)들이 중국의 위안화를 에너지 등 무역대금으로 본격 받기 시작했다. 인도의 석유상들은 달러 가치에 정확히 연동되는 아랍에미리트(UAE) 통화 디르함으로 러시아 석유 대금을 지불했다. 브릭스(BRICS) 국가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노(no) 달러 운동’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2022년 브릭스 회원국은 11개로 늘어났다.

상위 산유국이 모두 포함된 브릭스. 세계 경제의 절반에 육박하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이 주도하는 ‘노 달러 운동’의 자초지종을 지구촌 모든 나라가 지켜봤다. 크고 작은 무역 거래에서 자국 통화로 서로 지불하자는 협약이 늘기 시작했다.

미국의 혈맹인 한국도 2022년 5월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에서 인도네시아와 자국 통화로 무역 결제를 하자는 협약을 맺을 정도였다.

이런 움직임이 결국 달러 수요를 줄였고, 이는 달러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아직도 달러 패권의 영속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많다. 달러 가치의 변동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할 ‘신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몸집 불리는 브릭스, 탈달러 성공할까

한편 러시아가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힌트를 최근 줬다.

러시아 무역 수지에서 브릭스(BRICS)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2년 만에 두 배 증가한 40%를 기록했고, 같은 기간 달러가 아닌 해당 국가와의 국가통화로 결제한 금액이 3배 이상 증가한 85%에 이른다고 스푸트니크가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를 인용해 지난달 29일(모스크바 현지시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러시아 수출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86배 증가한 34.5%, 수입에서는 8배 이상 늘어난 36.4%로 집계됐다.

러시아 무역에서 브릭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40%에 달한다. 전쟁이 러시아의 브릭스 의존도를 높였지만, 브릭스 자체가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은 분산된다는 게 러시아의 판단이다.

브릭스 회원국들을 중심으로 중앙은행디지털통화(CBDC)로 무역 결제를 시작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장은 “현재 많은 국가에서 중앙은행디지털통화(CBDC) 도입을 고려하고 있고, 러시아는 이 디지털 통화로 국경을 넘는 결제를 위해 많은 우호국과 협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4년 브릭스 의장국을 맡은 러시아는 차제에 신용등급 상호인정과 자금세탁방지 공동 플랫폼 구축 문제를 올해 제기할 예정이다. 2월 말까지 최종 안건을 구성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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