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이태원참사특별법’이 우여곡절 끝에 야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당은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고 대통령은 이를 고려 중이라고 한다. 삼보일배와 오체투지·삭발까지 감내하며 특별법 통과를 요구해 온 유족들은 거듭 호소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450일이 지났지만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 등 그 어느 하나 명확히 해결된 게 없는 상황에서 정치적 공방만 거세질 뿐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시스템 마련은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대한민국의 구멍난 재난관리시스템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재난관리조직은 내무부 건설국 이수과의 사무관 계장급이 담당했다하니 정말 빈약하고 초라한 편이었다. 그 후 대형재난이 터지고 나서 중앙행정기관에 재난관리 조직이 비로소 설치됐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초기 ‘행정자치부’의 명칭을 ‘행정안전부’로 개칭해 재난·안전기능이 대폭 강화됐고, 2013년 박근혜정권이 출범하면서 안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개칭했다.

허나 정부의 조직 확대 개편과 무관하게 대형사고와 재난은 반복됐다. 1994년 10월 서울 한강을 가로지르는 성수대교가 붕괴돼 여고생 포함 32명이 희생됐다. 8개월이 막 지난 1995년 6월, 삼풍백화점이 붕괴됐다. 502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된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적 피해를 낸 참사로 기록됐다. 그 삼풍 자리에 들어선 아파트가 바로 윤석열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아크로비스타다.

급기야 안전행정부로 ‘안전’을 더욱 강조한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세월호 대참사가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 후 ‘국민안전처’라는 장관급 매머드 부처가 탄생하였지만, 그것도 잠시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국민안전처는 행정안전부의 차관급 재난안전관리본부로 격하됐다. 그나마 ‘코로나’ 방역 관리에 최선이었던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비교적 큰 사고 없이 무탈하게 넘어갔다.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재난관리 시스템뿐 아니라 전문성과 고유 역할을 가진 재난관리 공무원의 존재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근무하는 재난업무 공무원은 일반직 공무원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중앙부서와 지자체, 교육지자체 방재안전직 총정원은 60만명이 조금 넘지만 방재직 공무원은 2%에 불과하고, 전국 시․군․구의 재난관리 부서 7000여명 인력 가운데 방재안전직 직렬의 전문 공무원은 1100여명(16%)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이 사실만 봐도 대한민국의 재난관리 수준이 어디까지 왔고, 재난관리의 현주소가 어떠한지가 극명하게 나타난다고 하겠다.

지난 여름 수해로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일어난 후 관할 행정당국의 총체적 부실이 참사의 원인임이 속속들이 밝혀지는 가운데 익명의 한 공무원이 ‘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안전 관련 부서는 주말 근무와 새벽 출근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데 비해 월급은 300만원이 채 안 되는 박봉이라고 한다. 다른 공무원들과 비슷한 임금을 받으면서도 격무에 시달리다보니 이 부서는 기피 일순위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령이 나는 경우 ‘휴직을 선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단다.

이러다보니 누가 그 자리를 채우겠는가? 결국 신규 발령자가 그 자리에 가게 된다. 가뜩이나 새로운 업무라 힘들고 인원도 부족한데, 경험도 물어볼 사람도 없는 상황, 담당자가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돌발 상황이 터졌을 때다. 어렵게 매뉴얼대로 대응을 하면 민원들이 폭탄처럼 밀려들고, 혹 매뉴얼을 못 지키면 법적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안전 담당 공무원이 휴직이냐, 감옥이냐,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느냐의 ‘죽음의 삼지선다’ 앞에 설 수밖에 없다”고 씁쓸하게 글을 맺고 있다. 물론 과실이 있는 공무원은 명확히 찾아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그와 함께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구멍에 대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점검하고 고치고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이다.

참사가 일어나면 국가최고책임자는 원인 파악과 사고 수습, 그리고 재발방지책을 주문한다. 여야 정치권도 한목소리를 낸다. 국회는 ‘안전제일’을 외치며 추경 편성에 나서고, 정부는 복구 예산 조기집행에 총력을 기울인다.

수사기관은 관련자를 재판정에 세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흐지부지 용두사미가 돼버린다. 그때뿐이다. 세월호를 겪고도, 이태원 참사를 겪고도 변한 건 없다.

‘안전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은 구호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재난 안전 시스템과 재난에 특화된 질 높은 전문요원, 안전 담당 공무원의 체계적인 양성 없이는 만사 도로아미타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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