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 친팔·친이 시위
수천명 “인질석방” vs “종전”

이스라엘 국제 재판 시작돼
일부 국가들 지지·비난 표명
EU 포 많은 나라는 ‘침묵’

지난 1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 밖에서 한 사람이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친이스라엘 시위를 지나가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 1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 밖에서 한 사람이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친이스라엘 시위를 지나가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간의 가자지구 분쟁은 이미 국제 정치 지형을 재편했다. 미국, 유럽 및 여러 나라 국민 사이에서도 가자지구 전쟁에서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에 따라 분열이 일고 있다.

이 같은 갈등이 가장 심한 곳 중 한 곳은 미국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과 무기 공급,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접근 방식을 꾸준히 지지하면서 중동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위상과 영향력을 잃었다. 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주민에게 더 인도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면서 미국의 입지는 더욱 약화됐다.

16일(현지시간) 하마스가 운영하는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개전 이후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 사망자 수는 2만 4285명을 넘어섰다. 보건부는 이 중 75%는 어린이, 여성, 노인인데 특히 어린이가 최소 1만 6000명이 넘는다고 전했다.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전쟁 시작 이후로 하루 평균 100명씩 목숨을 잃은 셈이다.

하마스는 지난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급습해 약 1200명을 살해하고 250명을 납치했다. 지난 협상에서 일부는 풀려났지만 136명은 여전히 억류 중이다.

가자지구 전쟁으로 인해 지구촌이 나뉘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전쟁 당사국들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시위를 벌였다. 사진은 지난 13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광장에서 시위대가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의 석방을 촉구하는 모습. (출처: 뉴시스)
가자지구 전쟁으로 인해 지구촌이 나뉘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전쟁 당사국들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시위를 벌였다. 사진은 지난 13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광장에서 시위대가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의 석방을 촉구하는 모습. (출처: 뉴시스)

◆‘전쟁 100일’ 지난 주말 내내 시위 물결

지난 주말에는 세계 곳곳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집회가 각각 열렸다.

친팔레스타인 단체들은 전쟁 100일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을 ‘세계 행동의 날’로 삼고 세계 30여개국에서 대규모 시위를 열었다. 친이스라엘 시위대도 이튿날 런던, 베를린, 파리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집회로 맞불을 놨다.

이날 미국 백악관 맞은편에서는 수천명이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 중단을 촉구했다. 시위대는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아일랜드, 미국, 이스라엘 정부를 비판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자유, 팔레스타인”을 외쳤다.

이날 이탈리아 로마에서도 시위대 수백명이 콜로세움 근처의 대로로 내려와 “대량 학살 중단”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 파리에서도 즉각적인 휴전, 전쟁 종식, 가자지구 봉쇄 해제,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 부과를 촉구하는 행진이 열렸다.

다음날인 14일에는 독일 베를린, 파리 등에서 친이스라엘 집회가 이어졌다. 시위대는 “그들을 집으로 데려오라”고 외치며 가자지구에 억류된 인질 석방을 요구했다.

이날 영국 런던에서도 친이스라엘 시위대 수천명이 거리에 나섰다. 시위대는 ‘지옥에서의 100일’ 등의 메시지가 적힌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으며 영국 국적 인질의 가족 등도 참여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에서는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의 가족들이 13일 밤부터 24시간 철야 집회를 열고 인질들의 즉각 석방을 촉구했다.

가자지구 분쟁에 따른 분열은 산업계와 스포츠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크리스마스를 앞두고는 친팔레스타인 시위대가 가자지구의 즉각적인 휴전과 함께 ‘이스라엘 관련 브랜드 불매’를 촉구하기도 했다. 런던에서는 시위대가 푸마, HP, 자라 등 매장 밖에서 “당신이 쇼핑하는 동안 폭탄이 떨어진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친팔레스타인 국가인 튀르키예 프로축구 리그에서 뛰던 이스라엘 축구 선수는 경기 도중 전쟁 관련 세리머니를 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안탈리아스포르 구단 소속 사기브 예헤즈켈(29)은 가자지구 전쟁이 100일째 되는 14일 밤 안탈리아 스타디움에서 열린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카메라를 향해 왼손을 들어 올려 보였다. 그의 왼쪽 손목을 감싼 붕대에는 ‘100일, 10월 7일’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유대인을 상징하는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었다. 

이 세리머니로 사기브는 튀르키예 검찰에 체포를 당해 조사를 받았으며 해당 구단도 그를 선수 명단에서 즉각 제외했다.

지난 14일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친팔레스타인 집회가 열린 가운데 시위대가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연대를 표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 14일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친팔레스타인 집회가 열린 가운데 시위대가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연대를 표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뉴시스)

◆獨 등 이스라엘 혐의에 의구심 표현

이스라엘이 국제 재판을 받으면서 국가 간 분열도 악화할 전망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한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학살) 혐의에 대한 재판 절차는 지난 11일 시작됐다.

AP통신은 지난 11~12일 네덜란드 헤이그 ICJ에서 공개심리가 열린 이 사건이 75년 동안 이어져 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에 대한 전 세계의 예상 가능한 분열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 15일 남아공은 가자지구 전쟁에서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고발하는 ICJ에 50개 이상의 국가가 지지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미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은 이스라엘이 유엔 집단학살 범죄 예방 및 처벌에 관한 협약을 위반하고 있다는 남아공의 주장을 강력하게 거부했다. 더 많은 국가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남아공의 주장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국가는 아랍 세계와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볼리비아, 브라질, 콜롬비아, 요르단, 말레이시아, 몰디브, 터키, 베네수엘라 등 57개국으로 구성된 이슬람국가기구(OIC) 회원국들도 공식적으로 지지를 표명했다. 유럽에서는 무슬림 국가인 터키만이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명했다.

남아공의 주장을 환영하는 선언한 서방 국가는 아직 없다. 이스라엘과 가까운 동맹국인 미국은 근거가 없다고 거부했고, 영국은 정당하지 않다고 말했으며, 독일은 “명백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또 이스라엘의 확고한 동맹국으로 여겨지는 오스트리아, 체코는 이 사건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번 사건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유럽연합(EU)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유로뉴스는 이와 관련 “27개 회원국의 일관성 없는 입장을 가져 EU는 이에 대해 대부분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ICJ 자체에 대한 지지를 확인했지만 “EU는 이 소송의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언급을 피했다.

다만 유로뉴스는 EU가 가자지구 민간인을 위한 ‘인도주의적 전쟁 일시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며 “EU가 서서히 이스라엘의 자제를 촉구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신호”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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