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티 공격에 홍해 ‘마비 위기’
미·영, 예멘서 후티에 공습 나서

홍해 리스크에 무역업계 ‘한숨’
세계 해상 무역 15% 홍해 통과
수에즈운하-지중해, 유럽-亞 이어

주요 업체 6개, 경로 변경·중단
배송기간 늘며 인플레↑ 전망

영국 해군 구축함 다이아몬드호의 병사들이 10일(현지시간) 홍해 해상에서 후티가 민간 선박에 발사한 드론과 미사일을 겨냥해 바이퍼 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 (출처: 뉴시스)
영국 해군 구축함 다이아몬드호의 병사들이 10일(현지시간) 홍해 해상에서 후티가 민간 선박에 발사한 드론과 미사일을 겨냥해 바이퍼 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새해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 중 하나로 예멘 반군 후티의 홍해 선박 공격이 부상했다. 자동차 부품부터 신발까지 모든 것을 지구 반대편으로 운반하는 대부분의 컨테이너선이 지나는 세계 주요 무역로 중 하나가 사실상 폐쇄됐기 때문이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는 작년 11월 말부터 아라비아반도와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 상업용 선박에 대한 공격을 크게 강화했다. 이에 세계 최대 해운 회사들은 중요한 국제 무역로인 홍해를 통한 운송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내전으로 예멘 대부분을 점령한 후티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지지를 위해 이스라엘과 연결되거나 이스라엘 항구로 향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후 표적이 된 선박 중 상당수는 이스라엘과 관련이 없었다.

홍해에서 후티의 공격은 지난 11월과 12월 사이에 500% 증가했다. 상선 공격 위협 가운데 있는 국가들은 대응에 나섰다. 지난달 20개 이상의 국가가 홍해 상업 교통을 보호하기 위한 미국 주도의 연합 ‘번영 수호자 작전’에 참여했다. 여기에 미국과 영국 해군은 보복 차원으로 11일 예멘 후티 근거지에 공습을 시작했다.

홍해에서 예멘 반군 후티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 홍해는 수에즈 운하와 지중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국제 무역로다. (출처: 연합뉴스)
홍해에서 예멘 반군 후티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 홍해는 수에즈 운하와 지중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국제 무역로다. (출처: 연합뉴스)

◆공급망 불안에 업체들 운송 경로 바꿔

홍해 위협이 지속되면서 세계 경제 위기도 고조되고 있다.

수에즈 운하와 연결되는 이 수로가 장기간 폐쇄되면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이 생기고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제조품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에즈 운하는 석유 수출을 포함한 세계 무역의 10~15%, 전 세계 컨테이너 수송량의 30%를 차지하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최단 운송 경로인 홍해를 통과한다.

독일 킬세계경제연구소(IfW Kiel)는 이날 홍해에서 발생한 화물선 공격의 결과와 관련 지난 11~12월 세계 무역이 1.3% 감소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은 12월 수출이 2% 감소하고 수입이 3.1% 감소하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미국은 수입이 1.5%, 수출이 1% 감소했다. 세계은행은 지난 9일 발표된 연례 보고서를 통해 “주요 운송 경로의 중단이 공급망의 여유를 약화시키고 인플레이션 병목현상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현재 10대 컨테이너 선사 중 머스크, MSC, 하팍로이드, CMA CGM, ZIM, ONE 등 6개사는 후티 위협으로 인해 홍해 해항을 거의 또는 완전히 피하고 있다. 선원, 화물 및 선박에 대한 위험으로 인해 운송업체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희망봉 주변으로 선박의 경로를 변경해야 했다. 이로 인해 배송은 최대 3주까지 지연됐다.

일부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는 희망봉 주변으로 운송 경로를 변경했다.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 협회 대변인은 “이 때문에 비용이 증가하고 배송 시간은 약 2주가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다. 스웨덴 가구 회사 이케아와 같은 업체들은 배송 지연과 특정 제품의 부족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마찬가지로 영국 의류 소매업체 넥스트도 최근 “수에즈 운하 접근에 어려움이 계속되면 올해 초 재고 배송이 다소 지연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신발 제조업체인 크록스도 유럽으로 향하는 상품이 도착하는데 평소보다 2주 정도 더 걸린다고 전했다. 의류 브랜드 애버크롬비앤드 피치(NYS:ANF)는 배송 지연을 피하기 위해 가능한 한 항공 화물을 이용할 계획이라고 블룸버그통신에 전했다.

빈센트 클러크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홍해의 안전한 통항로를 다시 확보하는데 ‘몇 달’이 걸릴 수 있다고도 추정했다. 그는 “이러한 공격은 우리의 비용과 고객, 그리고 유럽과 미국의 소비자들에게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1월 말, 2월, 3월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예멘 반군 지도자 압둘 말리크 알후티(45). (로이터/연합뉴스) 2024.01.13.
예멘 반군 지도자 압둘 말리크 알후티(45). (로이터/연합뉴스) 2024.01.13.

◆파나마 운하·中 춘절 변수까지 겹쳐

12월 초부터 상선 보험 비용도 10배나 상승했다. 이미 일부 배송비가 급등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소비자 물가에 반영될 수 있다. 알리안츠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모하메드 A. 엘 에리안은 최근 엑스에 “혼란이 오래 지속될수록 세계 경제에 미치는 스태그플레이션 효과는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자지구 전쟁이 더 광범위한 지역 분쟁으로 확대되거나 후티가 철광석, 곡물, 목재와 같은 중요한 원자재를 운송하는 유조선과 벌크화물선을 공격한다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세계은행 보고서는 “분쟁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에너지 공급도 크게 차질을 빚어 에너지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며 “이는 다른 원자재 가격에도 상당한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에너지 가격에 대한 위협이 가장 큰 위험이다.

이 컨설팅 회사의 이코노미스트인 사이먼 맥아담과 릴리 밀라드는 지난주 메모에서 “현재의 운송 차질 자체가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하락 추세를 방해할 가능성은 낮지만, 근본적인 군사적 갈등이 현저히 고조되면 에너지 가격이 상승할 수 있으며, 이는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도 인플레이션이 계속 완화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여전히 물가 상승 위험이 있다고 봤다. 이 회사의 글로벌 거시경제 연구 책임자인 벤 메이는 지난 4일 메모에서 컨테이너 운송 비용이 12월 초의 거의 두 배인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면 세계 인플레이션이 약 0.6%포인트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홍해 사태는 심각한 가뭄으로 인해 이미 파나마 운하를 통한 교통이 제한된 상황에서 운송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마시앤드매클레넌 유럽 지역 책임자인 캐롤리나 클린트는 이날 CNN에 “전 세계로 상품을 운송하려는 기업들은 파나마 운하를 이용할 수도 없고, 수에즈 운하를 이용할 수도 없는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다”고 전했다.

중국의 설 연휴를 맞아 공장이 문을 닫기 전에 배송업체가 중국에서 주문을 받기 위해 서두르면서 앞으로 몇 주 동안 상황은 더 악화할 수 있다. 해운분석기관 드루리의 필립 다마스 헤드는 지난 8일 “2월 10일 춘절까지 이어지는 향후 5주는 운송업체와 물류업체 모두에게 매우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현재의 총체적 난국이 코로나19 팬데믹 때보다는 낫다는 낙관론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중국으로부터의 수입품 해상 운임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지수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2년 전 팬데믹 당시와 비교할 때 절반 이상 하락했다.

(출처: EPA, 연합뉴스) 새로 모집된 예멘 후티 반군 멤버들이 20일(현지시간) 북서부 암란 지역에서 행진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지지하고 나선 후티 반군은 지난달 14일 이스라엘과 연관된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홍해를 지나는 선박 여러 척을 공격했다.
(출처: EPA, 연합뉴스) 새로 모집된 예멘 후티 반군 멤버들이 20일(현지시간) 북서부 암란 지역에서 행진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지지하고 나선 후티 반군은 지난달 14일 이스라엘과 연관된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홍해를 지나는 선박 여러 척을 공격했다.

◆예멘 후티 반군, 시아파 분파 뿌리

후티는 예멘의 무슬림 시아파의 소수파인 자이드파의 하위 종파에 속하는 무장단체다. 예멘에서 다수파는 수니파다. 1990년대 당시 예멘의 독재자인 알리 압둘라 살레의 부패에 맞서 싸우기 위해 결성됐으며 이 운동의 창시자인 후세인 알 후티에서 이름을 따왔다.

살레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군대의 지원을 받아 2003년 후티를 저지하려 했으나 후티는 군대를 격퇴했다. 후티는 2014년부터 예멘 정부를 상대로 내전을 벌이고 있다. 예멘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연합이 주도하는 아랍 국가 연합의 지원을 받아 후티에 맞서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2022년 초까지 이 전쟁으로 인해 약 37만 7천명이 사망하고 난민 400만명이 발생했다. 또한 후티는 하마스, 헤즈볼라와 함께 이스라엘, 미국, 서방에 대항하는 이란 주도의 ‘저항의 축’의 일원임을 선언하고 있다.

후티는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인 헤즈볼라를 모델로 삼았다. 테러리즘 퇴치 센터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2014년부터 이들에게 광범위한 군사 전문 지식과 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이란도 후티에게 무기를 공급한 의혹을 받고 있으나 이란 정부는 부인해왔다.

예멘 인구의 대부분은 후티가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 살고 있다. 후티는 수도 사나와 북부 지역뿐만 아니라 홍해 해안선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세금을 징수하고 화폐를 인쇄하기도 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10년까지 후티가 무장 부대와 비무장 지지자들로 구성된 10만~12만명의 추종자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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