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남북 ‘적대관계’ 규정 주목

(서울=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해 7월새 기록영화 '만대에 떨쳐가리 위대한 전승의 영광을'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8일 리훙중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국회부의장 격)을 단장으로 하는 중국 당정 대표단을 접견하고 초대한 연회에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연설하는 모습을 방영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3.7.31
(서울=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해 7월새 기록영화 '만대에 떨쳐가리 위대한 전승의 영광을'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8일 리훙중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국회부의장 격)을 단장으로 하는 중국 당정 대표단을 접견하고 초대한 연회에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연설하는 모습을 방영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3.7.31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새해 벽두부터 남북 관계가 심상찮다. 남북 정상이 대남, 대북 관련 정책 방향을 담은 신년사로 맞붙었고, 북측의 ‘남한 평정’ ‘전쟁 준비’ 등 거친 발언에 남측은 적 도발 ‘분쇄’ ‘파멸’ 등의 단어로 맞섰다.

2일 밤에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사를 저격하는 담화와 함께 조롱조로 비난하자 남측 당국은 ‘궤변’ ‘억지 주장’ ‘책임 전가 위한 잔꾀’라는 표현 등으로 물러서지 않았다.

남북의 강대강 기조에 방점을 둔 대남, 대북정책을 두고 양측이 서로를 겨냥해 새해 시작부터 거칠게 말폭탄을 쏟아내는 등 한반도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는 양상이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남북, 통일 지향 특수관계아냐”

남북 간 강대강 정책 기조는 예상됐던 상황이지만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연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결론’을 통해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대남노선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선언한 건 주목할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 규정은 남북이 더 이상 통일 과정에 놓여 있는 특수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강조한다. 앞서 지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작성됐을 당시 남북 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인 특수한 관계’로 적시한 바 있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그렇게 판시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통미봉남’ 정책과도 연결된다. 남측과는 소통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김 위원장이 연말 전원회의 결론에서 초강경 대미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을 천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협상을 노린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구상에 정통한 측근 세 명의 의견을 인용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북한이 현재 보유 중인 핵무기를 용인하되 새 핵무기를 생산하지 않는 조건으로 경제제재 완화를 추진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올해 강력한 핵‧미사일 개발 과시로 몸값을 올리는 동시에 트럼프 전 대통령 재선시 핵 보유를 용인받고 핵동결과 핵군축 협상에 나설 가능성을 대비하려 한다는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남측은 별개의 나라로 취급하고 완전 배제를 하려 한다는 게 북한의 속내라는 시각이다.

전원회의 결론의 후속 조치 성격인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에서 윤 대통령을 문재인 전 대통령과 대비해 문 전 대통령을 “영특하고 교활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뒤 “문재인의 평화 의지에 발목이 잡혀 우리가 전력 강화를 위해 해야 할 일도 못하고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한 것은 큰 손실”이라고 토로한 것도 궤를 같이하는 대목이다.

◆대내 문제와도 관련 있는 듯

북한이 대남기구의 폐지 및 축소, 즉 정리작업에 들어간 건 이런 연장선의 일환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일 김 위원장이 지시한 대남·대적기구 폐지 및 정리를 위한 협의회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연말 전원회의 결론에서 남북 관계 전면적 전환을 선언하면서 지시한 데 따른 조치다.

특히 이날 협의회가 북한 외무성 주도로 열려 통일전선부 등이 외무성으로 흡수될지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외무성이 대남업무를 주도할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 이는 전문가들이 계속 언급한 것처럼 북한은 앞으로 남북 관계를 국가 간 관계의 하나로 보고 처리해 나가겠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김 위원장의 적대 국가로의 남북 관계 규정은 북한 내부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1990년대 2000년대를 걸쳐 이뤄진 남북 교류는 많은 남북 문물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가는 계기가 됐고 북한 장마당(상품을 사고파는 시장)의 형성은 장마당 세대를 이끌었고 북한 체제 위협 요인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2021년 청년교양보장법, 2023년에는 평양문화어보호법이 제정됐는데 이들 법률이 김정은 시대 남한 문물을 배격하는 대표적인 사회통제법이다. 북한 체제를 위협할 만큼 남한 문화가 북한 사회에 깊숙이 침투했다는 것을 시사한 셈이다. 남측을 적대 국가로 상정하고 통일을 배격하는 이유다.

동족 관계가 아닌 별개의 국가로 여기라는 것이다. 최근 김 위원장이 자녀 관리에 목적을 둔 어머니대회를 연이어 개최하고 올해 신년 첫 행보로 학생들이 꾸리는 2024 설맞이공연과 학생들이 만든 과학모형 등을 관람하고 사회주의 건설을 거론하며 후대 챙기기에 나선 것도 이런 맥락과 관련돼 있다.

한 전문가는 “김 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로의 남북 관계 규정은 지난 2년 윤석열 정부와의 결산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스런 통미봉남이 될 것”이라며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는 이런 판단에 기초한 것인데 향후 남북 관계, 대미 관계를 어떻게 꾸려갈지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분석했다.

국방부. (mbc화면 캡처.) ⓒ천지일보 2023.12.31.
국방부. (mbc화면 캡처.) ⓒ천지일보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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