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동아예술전문학교 예술학부 교수)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33일 만에 관객 수 1000만명을 돌파하며 따뜻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영화 흥행의 주요 원인에는 2시간가량 관객들이 지루함을 느낄 수 없도록 쉴 틈 없이 쏘아붙이는 빠른 전개와 당시의 생생한 역사적 사건 조명,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 정교한 편집과 플롯이 주효했다. 이번 웰메이드 작품은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12.12 사태를 잘 모르는 MZ세대, 중고생까지 극장가로 불러들이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의 봄’ 관객 중 50%가 20·30세대다. OTT에 집중하고 있는 20·30세대도 작품의 완결성과 좋은 평판을 이어가는 입소문을 믿고 영화관을 찾았다. 이는 현재 대세가 OTT 플랫폼인 상황과 코로나 사태로 인해 극장을 멀리했던 젊은이들도 작품만 괜찮다면 언제든지 다시 영화관에 발을 들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일부 관객들은 ‘서울의 봄’을 관람하면서 정치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당시의 군부 세력과 권력자들을 보면서 혼돈의 상황에 놓인 현재의 정치 상황을 비교하고 리더십 부재도 들여다본다. 혹은 당시가 현재보다 취업하기 좋았고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생산성이 향상되고 지역경제의 성장 기반도 탄력을 받았다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일부 장년층도 있다.

관객들은 각자의 개인 철학을 술자리에 내놓으며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를 안줏거리로 삼는다.

김성수 감독은 당시 반란군과 진압군이 직면한 급박한 순간들을 빠르게 교차시키며 관객들을 역사 속 현장에 있는 것처럼 몰입하게 만들었다. 주인공과 적대자의 확실한 선이 보이는 서로 물어뜯는 캐릭터 구축, 시대를 그대로 재연한 영화적 미장센과 색감은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특히 카메라 앵글, 소품 등을 당시와 최대한 비슷하게 세팅했고 시대적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어두움, 하늘의 톤과 구름 모양, 조경 밀도뿐만 아니라 질감과 빛, 색감 등 디테일한 요소에도 공을 들였다.

이 영화가 흥행하자, 총선을 불과 몇 개월 앞둔 상황에서 여야가 정쟁을 벌이며 정치적 이슈로까지 번지고 있다. 전두환-노태우의 하나회를 척결시킨 건 보수당이 계승하고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라며 영화를 악용하지 말라는 반발도 나오고 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인권변호사 시절을 다룬 영화 ‘변호인’, 6월 민주항쟁을 그린 ‘1987’ 개봉 후에도 여야는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김성수 감독은 영화 ‘아수라’와 같이 이번 영화에서도 어두운, 음울한 당시 사회의 상황을 그대로 드러낸다. 기회를 틈타 탐욕과 권력욕을 가진 이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목을 잡고 비틀며 이익만을 좇는 틈바구니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이번 ‘서울의 봄’ 흥행 성공으로 바닥을 치고 있던 영화 업계의 역대급 위기는 한풀 꺾였다.

코로나 이후에도 대작 영화 흥행의 연이은 실패로 신작들에 대한 투자 심리도 크게 위축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서울의 봄’이 다시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시그널을 보냈고 막혀있던 신작들의 투자에도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돈이 돌아야 경쟁력 있는 작품들도 만들어지고 극장가에도 큰 힘이 된다.

OTT를 포함한 영상콘텐츠 시장이 더욱 다양해지면서 플랫폼은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천만 영화의 흥행 가속화가 오프라인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위기 탈출 롤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관이 다시 과거처럼 터보를 장착한 엔진을 달고 성공을 향해 나아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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