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미술관 공개 ‘묵란 선면도’

후학 민영익 진장, 김용진 배관

석파 이하응의 '묵란도'도 찾아

이재준 한국역사유적연구원 고문(전 충청북도 문화재 위원)은 논문을 통해 완당 김정희의 새로운 부채에 그려진 묵란 선면도와 화첩에 그려진 대원군 묵란도를 진품으로 감정, 이를 발표했다. 추사와 대원군은 조선 후기 난화의 최고봉으로 민간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가운데는 위작이 많다. 이 작품을 소장한 서울 세운미술관(관장 정세운)은 지난주 두 작품을 최근 언론에 공개했다. 이에 이고문의 논문(2022.7)을 요약․발췌 정리해 보았다.

묵란선면도 (세운미술관 소장) ⓒ천지일보 2023.12.18.
묵란선면도 (세운미술관 소장) ⓒ천지일보 2023.12.18.

[정리=백은영 기자] 조선 최고의 명필 완당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선생은 난을 즐겨 그리지 않았다. 이것은 스스로 겸양하여 만권의 책을 읽고 더 인격이 도야된 후 붓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난을 치는 것을 그림의 영역이 아닌 글씨의 법도라고 생각한 것이다.

주위에서 혹 난화를 부탁하면 모두 사양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흥선대원군을 찾아가라고 했다. 그런데도 요즘 엄청난 양의 ‘추사난’이라고 하는 위작들이 돌아다니는 것은 제자들이나 위작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세운미술관이 일반에 공개한 묵란 선면도(51㎝x19㎝, 지본, 먹, 김정희 작, 부채에 그린 그림)와 흥선대원군 난 화첩 중 한 점(지본, 먹, 30㎝x25.5㎝)은 한지에 그린 것으로 한눈에 작품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다.

주목되는 것은 완당의 묵란은 본래 원정 민영익이 진장(珍藏)했던 작품이라는 묵기와 배관도서가 찍혀 있으며, 운정을 사사한 구룡산인 김용진(金容鎭, 1878~1968)이 추사의 진품임을 증명한 또 하나의 배관 기록이 있다는 점이다.

산심일장란 난맹첩(蘭盟帖) ⓒ천지일보 2023.12.18.
산심일장란 난맹첩(蘭盟帖) ⓒ천지일보 2023.12.18.

세운미술관의 수장품인 완당 묵란 선면도는 많은 작품 가운데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난 잎의 방향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길게 멀리 뻗어나갔다. 맨 아래 잎은 부채의 오른쪽 끝에 닿을 듯 뻗었다. 농묵의 잎에 담묵의 꽃, 청초한 난 잎 굵기의 다양한 변화가 일품이다.

가운데 중간의 묵기는 ‘노검(老芡)’이라 쓰고 그 아래에 거사기(居士記) 낙관을 찍었다. ‘노검’이란 아호는 그리 흔하게 쓴 것이 아니다. 이 아호는 ‘나이 많은 가시연꽃’ 이라는 뜻이다.

이 시기는 추사가 제주도와 북청 귀양에서 해배된 시기라고 상정된다. 인장은 찬제거사(羼提居士) 김정희인 등 4개의 인장이 찍혔다. ‘찬제거사’란 뜻은 신분차별로 인한 온갖 인간적, 사회적 능욕을 견디면서 사는 불자(佛子)를 지칭한다.

그런데 맨 오른쪽 아래에 ‘원정진장(園丁珍藏)’이란 묵기와 배관 낙관이 찍혀있다. 원정은 바로 민영익이다. 민영익은 완당에게 배우지 않았지만 부친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평생 추사를 존경하고 살았다.

화제인 ‘산심일장 인정향투(山深日長 人靜香透)’은 송나라 시인 조맹견의 시구에서 인용한 것이다. ‘완당집’에서도 ‘난을 잘 쳤던 조이재(彛齋 趙孟堅, 1199~1267?)의 글’이라고 언명했다. 완당이 가장 존경했던 조이재의 시구를 화제로 삼고 해서로 쓴 것은 유풍을 따르려고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산은 깊고 해는 길지만 사람의 고요한 향기가 가득해야 한다’는 선비의 기풍에 비유한 것이다.

민태호는 완당과 인척으로 조카뻘이 된다. 그는 완당이 제주 유배에서 풀려 돌아온 후 10대 중반의 소년 나이에 과천 과지초당을 찾아다니며 수학했다.

완당으로부터 부채그림을 받은 민태호는 이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아들 민영익에게 남겨준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가보(家寶)가 된 이 ‘묵란 선면도’는 민영익의 선비정신과 예향을 지켜주고 ‘운미란’을 완성시키는 기운이 되었다.

부채 상단 왼쪽에 쓰인 배관기는 운정의 묵란화를 이은 구룡산인 김용진(九龍山人 金容鎭, 1878~1968)이 해서 종서로 썼으며 ‘완당의 보배로운 진묵일 뿐 아니라 그 청정한 마음을 우러러 본다’고 평가했다. 완당의 진묵을 보고 이보다 더 극찬한 평가는 없다.

玩堂眞墨非徒 완당진묵비도
敬仰心神淸靜 경앙심신청정
後學 金容鎭 후학 김용진

석파 이하응의 난 ⓒ천지일보 2023.12.18.
석파 이하응의 난 ⓒ천지일보 2023.12.18.

완당으로부터 글씨를 배운  석파 이하응의 묵란화는 본래 묵란첩에 있던 것으로 생각되는 작품으로 석파난의 전형적인 맛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상단의 화제는 대원군 난에서 보기 드문 예서로 쓴 것이다.

坐久不知香在室 좌구부지향재실
오랫동안 앉아 있다 보니 방안에 향기가 있는 줄 모르네

석파가 스승의 글씨를 답습하여 쓴 시기보다는 이른 시기로 보인다. 완당은 ‘난화’라는 글을 직접 써 대원군에게 주며 많은 책을 읽은 후 난을 그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난초를 치는 법은 또한 예서를 쓰는 법과 가까워서 반드시 문자향과 서권기가 있은 다음에야 얻을 수 있다. 또 난 치는 법은 그림 그리는 법식대로 하는 것을 가장 꺼리니 만약 그리는 법식을 쓰려면 일필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한때는 간송미술관 소장의 보물로 지정된 ‘추사난맹첩’이 위작이라고 평하는 전문가들이 있었다. 특히 간송의 ‘산심일장란’을 문제 삼는 견해도 있다. 시간을 늦출 수 없이 전문가들이 모여 진지한 토론을 통해 완당 묵란의 진위를 가리는 것이 후손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감정기관들도 진적을 알아보는 높은 식견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값진 문화유산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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