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안보 등 협의체 신설 합의
“공급망 위기시 함께 극복 의미”
“반도체 동맹 공식화 양국 처음”
미의 중견제로 장비 수출 막혀
장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적기
동맹, 되려 공급망 불안케 할 수도
회담 상대, 내년 정계 은퇴 총리
과도 내각이라 회담 퇴색 가능성

(벨트호벤=연합뉴스)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벨트호벤 소재 ASML 본사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반도체 기업인 간담회에 앞서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 빌럼-알렉산더르 국왕(오른쪽)과 함께 기업 설명을 듣고 있다. 2023.12.13
(벨트호벤=연합뉴스)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벨트호벤 소재 ASML 본사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반도체 기업인 간담회에 앞서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 빌럼-알렉산더르 국왕(오른쪽)과 함께 기업 설명을 듣고 있다. 2023.12.13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한국과 네덜란드 정상이 13일(현지시간) 회담을 갖고 반도체 협력을 ‘반도체 동맹(semiconductor alliance)’으로 격상한다.

이는 두 나라가 반도체 협력을 현 단계보다 높여 공급망을 둘러싼 위기에 긴밀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잘 된 일인 것 같은데,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 속 실제로도 그런 것인지 어떤 의미가 있을지 짚어봤다.

◆공동성명에 반도체 동맹 공식화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계기로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마르크 뤼터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반도체 동맹을 공식화하기로 하는 정식 공동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대통령실이 전했다.

반도체 동맹 구축에 따라 두 정상은 이를 실천하기 위한 경제·안보·산업 분야 양자 협의체를 신설하기로 합의했다.

세부적으로 양국 외교 및 산업당국은 연례 경제 안보 대화와 반도체 정책을 조율하기 위한 반도체 대화를 각각 설치하고, 핵심 품목 공급망 협력 양해각서(MOU)를 바탕으로 한 공급망 협의체 구성을 추진한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전날 암스테르담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통해 “한국과 네덜란드 양국은 반도체 분야에서 평시 각별한 협력을 도모하기로 했다”며 “위기 발생 시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반도체 공급망 위기 극복 시나리오를 함께 집행하고 이행해나가는 동맹관계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 공동성명에도 긴밀한 협의를 거쳐 ‘반도체 동맹’이란 용어를 직접 기입해 넣었다"고 강조했다. 또 양국이 국가 간 외교관계에서 반도체 동맹을 명문화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라고도 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세계 1위 반도체 장비 기업인 ASML의 ‘클린룸’을 방문해 차세대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극자외선(EUV) 장비 공정 등을 참관했다.

대통령실은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이라고 했지만 누구나 일정 절차를 거쳐 참관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와 ASML은 내년부터 1조 원 규모의 공동 투자를 통해 국내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한다.

◆큰 의미 없단 관측도

대통령실은 두 정상의 회담 성과를 담는 공동성명에 반도체 동맹을 명시하는 건 처음이라며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와 공급망 위기 시 함께 돌파해 가자는 뜻이라고 홍보하지만 외교가 안팎에선 큰 의미 없다고 일축한다.

일각에선 일정상 하도 내세울 게 없으니 억지로 짜낸 명분이라고까지 할 정도다. 이유인즉슨 미국 정부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한다고 네덜란드의 수출을 막고 있어 장비 재고가 쌓이고 있고 이런 작금의 현실은 이전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적기인데 무슨 동맹이 필요하냐는 설명이다.

또한 반도체 장비를 네덜란드가 만든다고 알고 있지만 장비 제작에는 전 세계 수십개 공급망이 신경망처럼 얽혀 있다고 한다.

네덜란드가 만들지만 전 세계적인 공급망이 관련돼 있고 거기에 중국이 엄연히 딱 들어와 있어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반도체동맹을 맺는다는 건 안정적 공급망‧공동 공급망 구축보다는 인위적인 공급망 재편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되려 전체적인 공급망은 불안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윤 대통령의 회담 상대인 뤼터 총리는 지난 11월 네덜란드 총선에 앞서 이미 정계 은퇴를 선언한 상태다. 그 이전인 7월 자신이 제안한 전쟁 난민에 대한 이민규정 완화안이 연정의 반대로 무산됐기 때문이다.

현재는 내년 1월 취임하는 차기 당수에게 권력 이양을 준비하는 과도 내각을 이끌고 있어 새로운 정책 수립 등을 할 수 없는 명목상의 정부 수반일 뿐이다. 과도 내각은 외교 조약이나 협정을 맺지 않는 관례도 있는 바 두 정상 간 회담의 의미가 퇴색될 것이라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우려다.

더욱 걱정되는 건 지난 11월 22일 치러진 네덜란드 총선에서 극우 성향의 자유당(PVV)이 승리했다는 것인데, 이에 따른 내년 1월 취임하는 차기 총리로 게르트 빌더스 당수가 유력해 이 같은 해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윤 대통령과 성향이 같다지만 극우 세력의 특징은 언제든지 정책 방향을 틀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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