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위원

중국이 1949년 10월 1일 국민당을 대만으로 몰아내고 대륙을 평정했다. 국가체제가 확립되기 전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연인원 추산 200만명의 군대를 북한에 파견하고 한국전에 깊숙이 관여했다. 종전협정 당사국이 됐다. 서명국이라는 지위를 누리게 되면서 향후 평화협정을 맺더라도 국제법상 다시 협정장에 나타나는 국가의 지위를 누리게 된다. 한반도 사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며 현재 남북에 부인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 국가로 대내외에 인식됐다.

국가체제가 온전히 갖춰지지도 않은 상태였기에 국내적으로 체제 안정화를 위한 제도화와 정치 경제 발전을 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도 한국전에 대규모의 병력을 파견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북한이 무너지면 미국 중심 서방이 중국의 심장부 베이징을 노리게 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종합국력은 미국에 비견할 수 없는 조족지혈의 상태였고, 국토만 크고 인구만 많은 대국으로써 어떻게 난국을 헤쳐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 끝에 비동맹을 외치고 외교라는 정치 된 고도의 전술과 전략을 통해 눈앞에 놓인 난관을 돌파하기 위한 원칙들을 세우기에 이른다.

영원한 외교장관 저우라이가 중국 외교 노선의 근간을 1954년 6월 28일 인도, 미얀마 총리와 공동성명을 통해 전 세계에 제시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중국 외교의 보도인 ‘평화공존 5개 원칙’이다. 영토 보존과 주권의 상호 존중 원칙, 상호불가침 원칙, 상호 내정 불간섭 원칙, 호혜 평등원칙, 평화공존 원칙 등이다. 5개 원칙의 뿌리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하는 중국 외교의 왕 보석들이 됐다.

이후 2014년 6월 평화공존 5개 원칙 발표 60주년을 맞아 현 중국의 절대 권력자 시진핑에 의해 신 6대 원칙을 발표하게 이른다. 첫째 주권 평등원칙, 둘째 공동안전 원칙, 셋째 공동이익 원칙, 넷째 각국 특색 인정 포용 원칙, 다섯째 공동 발전 원칙, 여섯째 공평 정의 원칙 등으로 확대됐다.

시진핑이라는 절대 권력자의 상징성을 통해 6대 원칙이 발표됐지만 60여년 전의 5대 원칙을 현대에 맞게 해석하고 원용하고 있다. 그 기저에 흐르는 기본 공통분모는 속셈은 따로 있지만, 세계가 평화로워야만 하며 그 바탕 위에 서로 존중하고 포용하고, 국가 간 크고 작든 일률적으로 평등하며, 평화 상태에서 자유롭게 무역해야만 한다는 내용이다.

근저의 ‘평화’는 중국의 확고부동한 원칙이며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다. ‘평화와 발전’은 당대에 가장 중요한 주제이며 과제라고 규정한다. 균형이 깨지지 않은 ‘평화’만이 중국이 발전하고 세계가 온전히 공동 발전한다는 주장이다. 평화가 있었기에 중국의 종합국력이 커짐을 확인했고, 미국의 73%에 이른 국력까지 접근한 오늘에는 전 지구적으로 외교역량을 확장해야만 하는 것이 진리라고 여기며 오늘도 외교역량을 지구촌에 예외 없이 투사하고 있다.

당연히 한반도 남북한 모두에게 외교 영향력 극대화를 꾀하고 힘쓰는 균형점을 찾아가 행하는 남북한 기회주의적 등거리 외교를 이 시간에도 전개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상왕 노릇 하겠다는 음모를 숨김없이 보이는 중국만 바라만 보는 한국의 현실을 냉철히 인식하고 타파를 위한 국가 대중국 외교전략을 정권의 권력 이동과 무관하게 정립하고 펼쳐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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