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진영, 북러 군사협력 확신
러시아 “근거 없고 입증 안 돼”

북러, 기본적으로 軍정보 ‘극비’
양측 협력 내용 알기 어려워
“美증거사진, 북러 연출일수도”

[서울=뉴시스] 러시아를 방문 중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함께 보스토니치 우주기지 참관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쳐) 2023.09.14.
[서울=뉴시스] 러시아를 방문 중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함께 보스토니치 우주기지 참관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쳐) 2023.09.14.

[천지일보=이솜 기자] 지난 9월 북한과 러시아의 정상회담 이후 서방 매체를 중심으로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 100만발을 제공하고 러시아는 북한이 2차례 실패한 군사정찰위성 관련 기술을 제공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미국과 그 주변국들이 북러 간 군사협력에 관한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오로지 가능성만을 근거로 기정사실화 하는 것을 정면 비판해왔다.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언론브리핑에서 미국과 그 주변국들이 북러 간 무기거래 등 군사협력을 확신하고 있는 것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러시아와 북한 사이의 불법적 군사기술협력에 대한 범서방 진영의 비난은 근거도 없고 입증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그들 스스로 말하는 ‘매우 높은 가능성(highly likely)’을 담은 주장일 뿐”이라며 “어느누구도 미국과 일본에 관련 수사권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포함한 국제적 의무를 책임감 있게 이행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와 오랜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는 북한을 포함한 이웃 국가들과 전통적 우호 협력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위 국제법의 열렬한 옹호자들 중 우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가르치기 전에 거울을 더 자주 들여다보아야 한다”며 “국제법의 통념적 규범과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고 범죄적 우크라이나 정권을 무기로 강화해 유혈사태를 지속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는 이들은 미국과 그 위성국들”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 역시 북러 군사협력 정황을 제시하는 미국 정부와 언론보도를 그대로 믿고 연일 비난 수위를 높여왔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 11월 13일 열린 제55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직후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장관과 공동으로 “러·북 무기거래 등이 명백한 기존 유엔안보리 결의의 위반임을 확인하고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한미 양국에서는 같은 규탄 성명을 수차례 거듭해왔다.

이는 정찰위성 발사를 계기로 한국 측이 9.19 군사합의를 파기하기를 바라는 미군의 일관된 요구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러시아 매체 스푸트니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언론과 전문가, 정부 모두 그(북러 군사협력 강화) 틀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도 스푸트니크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뉴욕타임즈(NYT)가 이미 러시아의 포탄 등 무기 생산 능력이 나토를 포함한 서방의 7배라고 보도했다”면서 “하지만 한국 언론들은 연일 북측이 러시아에 포탄을 보냈다고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며 보도 태도를 비판했다.

(서울=연합뉴스) 북한은 21일 오후 10시 42분 28분께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신형위성운반로케트 '천리마-1'형에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탑재해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조선중앙TV가 22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현지에서 발사 상황을 참관하고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과 연관기관의 간부들과 과학자, 기술자들을 열렬히 축하"해주었다고 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3.11.22
(서울=연합뉴스) 북한은 21일 오후 10시 42분 28분께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신형위성운반로케트 '천리마-1'형에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탑재해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조선중앙TV가 22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현지에서 발사 상황을 참관하고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과 연관기관의 간부들과 과학자, 기술자들을 열렬히 축하"해주었다고 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3.11.22

◆북러, 세계를 상대로 ‘심리전’

이들 전문가들의 관점은 북러 간 군사협력이 없었다는 게 아니다. 진실에 가장 근접한 논평은 ‘아무리 뚜렷한 징후가 있더라도 실제 드러난 징후와 같이 이뤄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과 러시아가 비록 정치체제는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북)와 양원제 대의민주주의(러시아)로 다르지만 군사 분야에서는 똑같이 공식적인 ‘군사비밀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싸움에서 상대방을 가장 두렵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내가 어떤 무기와 병력을 얼마만큼 갖고 있느냐’를 상대방이 알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실제 한국이나 미국도 상당 규모의 군사비밀이 존재하지만 의회에 공식 보고하는 것 이외에 작전계획 등을 미뤄 추정할 수 있는 것들을 예외적으로 비공개하는 ‘네거티브’ 개념을 채택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나 북한은 일단 ‘군사비밀주의’를 표방하고 필요할 때, 곧 다른 나라가 자국의 군사적 능력을 판단하도록 유도할 필요성이 있을 때만 자국 군사정보를 일부 공개하는 ‘포지티브’ 개념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러시아 전문가는 최근 한 외교안보 학술 토론회에서 “미국이 북한의 러시아에 대한 포탄 제공 증거라고 제시한 이미지가 꾸며진 게 아니더라도 실제 포탄이 아닌 포탄 포장재 또는 적재에 필요한 물자들만 연출돼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는 북러 양국이 고수해온 ‘군사비밀주의’가 얼마나 공고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양국은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쓸 재래식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며 북한을 일관되게 비난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구촌 전체를 대상으로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맞춰 보라”라며 심리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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