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 끝까지 입 다물고 떠나
손자 전우원씨 폭로 “주범은 할아버지”
내년도 혈액채취 행불자 가족찾기 지속
40여년 지났지만… 유가족 아픔 여전

5.18민주화운동 당시 진압봉으로 시민을 가격하는 공수부대. (출처: 5.18기념재단 홈페이지)  ⓒ천지일보 2023.11.26.
5.18민주화운동 당시 진압봉으로 시민을 가격하는 공수부대. (출처: 5.18기념재단 홈페이지) ⓒ천지일보 2023.11.26.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당연한 말인 것 같지만 엄중한 의미를 담고 있다. 미래가 중요하니 지나간 역사를 왜 알아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잔인했던 학살이 자행된 ‘광주5.18민주화운동’은 여전히 아픈 역사로 남아있다. 공권력에 의해 자유가 억압당했고 광주는 철저히 고립된 가운데 언론 보도도 통제됐던 시대. 그러나 외신 기자들을 통해 조금씩 세상 밖으로 알려지면서 진실은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날의 사건은 이미 지난 역사가 됐지만, 피해자는 엄연히 존재하고 흔적들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다만 당시 신군부를 이끌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 세상에 없다. 진실을 밝혀줄 인물이 사라진 것이다.

1980년 5월 영령들은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묘지에 말없이 누워있다. 어떤 정치인이든 광주를 방문하면 꼭 찾아 참배하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선거 때가 되면 그들의 왕래는 더욱 발 빠르다. 내년 4월 총선이 5개월여 남은 만큼 5.18민주묘지는 앞으로 또 검은 양복에 넥타이를 맨 국회의원 후보들로 줄을 이을 것이다. 수년 동안 광주에서 5.18 관련 등 취재를 해온 기자로서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특히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활동이 내달 26일 종료됨에 따라 진상규명 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남로에 진주한 탱크. (출처: 5.18기념재단 홈페이지) ⓒ천지일보 2023.11.26.
금남로에 진주한 탱크. (출처: 5.18기념재단 홈페이지) ⓒ천지일보 2023.11.26.

◆전두환 전 대통령 ‘사과’ 없이 숨져

신군부의 통치자로 군 통수권자인 전두환 전(前) 대통령은 2021년 11월 23일 향년 90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5.18 관련 피해자들이 그토록 원했던 ‘사과’는 없었다.

오히려 그는(전두환) 2017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고(故)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비난했다. 이유는 조 신부가 5.18 당시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결국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광주지방법원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알츠하이머’ 등의 병을 핑계로 재판에 출석하지 않는 행동을 취해 5.18피해자들의 공분을 샀다. 전씨는 1심 재판을 3년 이상 지연하다 결국 2심 재판을 앞둔 상태에서 숨졌다. 또 2003년 6월 23일 재산명시 관련 재판에서 전 재산이 29만원 밖에 없다고 주장했지만 골프장에서 목격되는 등 화려한 생활을 이어간 것으로 언론에 보도돼 화제가 되기도 됐다.

◆전 대통령 사과 한 마디 없이 사망

지난 3월 13일,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이 전두환씨 일가의 비리를 폭로하며 이목이 집중됐다. 전 대통령의 손자인 전우원(27)씨는 같은달 31일 광주를 찾아 “5.18 주범은 할아버지 전두환”이라며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최초로 5.18피해자 앞에 공개 사과했다.

전씨는 이날 참담한 표정으로 “저 같은 죄인을 천사같이 대해주셨다”고 울먹이며 5월 어머니들 앞에 큰절했다. 당시 현장에서는 ‘못 살겠다’며 가슴을 치며 울부짖는 유가족도 있었다.

최은홍 열사의 모친 이금순(83)씨는 “병원에 갔더니 은홍이가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서 아무것도 못 먹고 창자가 다 나와 있었다”고 오열했다.

5.18피해자들은 “전두환씨의 죄를 손자를 통해 사과받을 줄은 몰랐다”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했다. 5.18 피해자 문재학(당시 16세)군 모친 김길자씨는 “그런 집안에서도 사람다운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그 많은 세월 동안 정말 너무 힘들었는데 위로가 된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죽은자는 말이 없고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암매장된 시신 등 5.18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아무도 진실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전 대통령의 손자인 전우원(27)씨가 지난 3월 31일 광주를 찾아 “5.18 주범은 할아버지 전두환”이라며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최초로 5.18피해자 앞에 공개 사과하는 모습. ⓒ천지일보 2023.11.26.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전 대통령의 손자인 전우원(27)씨가 지난 3월 31일 광주를 찾아 “5.18 주범은 할아버지 전두환”이라며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최초로 5.18피해자 앞에 공개 사과하는 모습. ⓒ천지일보 2023.11.26.

◆광주시 유전자 분석사업 예산 반영

광주시는 진상규명조사위원회 활동이 오는 12월 26일 종료됨에 따라 ‘행불자 가족찾기 사업’의 지속을 위해 ‘혈액채취 및 유전자 분석사업’을 2024년 예산에 반영했다. 또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갖고 있는 디엔에이(DNA) 분석 데이터와 시신 유골 등도 이관받을 계획이다.

시는 전남대학교 법의학교실과 함께 지난 2001년부터 5.18민주화운동 관련 행방불명자 유가족에 대한 채혈을 추진한 데 이어 2019년 5.18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이후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유전자 분석 사업을 시행, 6월말 현재 446명에 대한 유전자 확인 작업을 마무리했다.

5.18민주화운동기간인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행방불명자로 신고 접수된 전체 신고자는 모두 242명이다. 이 가운데 채혈하지 않은 유족은 14가족이다. 유족이 거부하거나 신고자가 사망해 유가족이 없는 경우, 유가족이 해외에 거주하면서 채혈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다.

지난 14일 5.18행방불명 피해신고(행불자 박모씨)가 추가 접수돼 유가족의 혈액채취를 했다. 그동안 암매장 제보현장에서 발굴, 수습된 유해와 유전자 데이터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광주시와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앞으로도 행방불명 피해신고를 받기 위해 적극 노력할 계획이다.

또 발견된 시신 유골과 디엔에이(DNA) 비교 분석작업을 전문기관에 맡겨 그 결과를 조사활동 보고서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정석희 5.18민주과장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나의 가족이자 이웃의 처참한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안타깝게도 이 중 많은 분들이 돌아오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생존 여부는 물론 언제 어디에 묻혔는지 모른다”며 “암매장으로 희생된 마지막 한 분까지 찾아내기 위해 진상규명조사위원회 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등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광주교도소 내 경비교도대의 숙소 뒤편 공동묘지에서 유골 40여구가 발견된 장소. ⓒ천지일보 2023.11.26.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광주교도소 내 경비교도대의 숙소 뒤편 공동묘지에서 유골 40여구가 발견된 장소. ⓒ천지일보 2023.11.26.

한편 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 동안 ‘국가폭력’에 맞선 민주화운동이다. 1979년 10.26 사건으로 고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12.12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이는 신군부 세력의 탄압 정치에 따른 전국적이고 산발적인 학생시위를 저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대학교에 강제 휴교령이 발령되고 5월 18일 아침 전남대학교에 계엄군이 주둔, 무차별 학생들을 진압했다. 시민들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해 유혈 진압이 계속됐다.

기록에 따르면 18일 하루 동안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계엄군에게 끌려갔고 폭력에 도심 병원들은 부상자들로 넘쳤다. 5월 20일에는 광주의 모든 중·고등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다. 현재 전일빌딩 245(옛 전일빌딩) 전시관에는 참혹했던 당시의 사진과 영상 등 헬기사격 탄흔 자국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또한 5.18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5월 27일 도청 주변을 포위한 계엄군은 건물 안에 있던 시민군에게 총을 쏘고 격한 공격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윤상원 열사를 비롯한 여러 시민군이 사망했다. 4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5.18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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