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법률 서비스는 특유의 복잡성과 대면 영업을 중요시하는 분위기 때문에 다른 서비스 영역보다 상대적으로 기술 도입이 느리다. 하지만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정보기술(IT)이 발전하면서 성역처럼 여겨졌던 법률산업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법률영역에도 기술이 들어옴으로써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결과를 가져왔고, 법률과 기술이 결합한 법률 서비스 플랫폼 등 ‘리걸테크(Legal-Tech)’가 출현한 것이다.

‘리걸테크’는 기술을 활용해 변호사 검색, 상담 신청, 법령 검색, 업무 처리 등을 도와주는 기술 및 서비스로 법률과 기술이 결합한 서비스다. 초기에는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이나 소프트웨어를 말했으나 최근에는 새로운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과 산업으로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리걸테크 등장 배경에는 법률 서비스의 수요공급 변화도 들 수 있다. 법률 체계가 고도화되면서 검토해야 할 문건 등 법조인의 업무 부담이 늘고 법률시장이 개방되면서 법률서비스 차별성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또한 세계화와 개방의 진전은 법률 분쟁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적은 노력과 비용으로 만족한 분쟁해결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법률에 기술을 접목하는 변화가 필요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은 2015년부터 변협 등 변호사 단체들과 운영의 적법성을 놓고 다퉜다. 변협은 로톡을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3차례 고발했으나 검찰과 경찰은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2021년 변협이 로톡 플랫폼에 가입한 변호사를 징계하는 내용의 변호사윤리장전 조항을 신설해 논란이 재점화됐다.

법무부가 지난 9월 변협과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 간 갈등에서 로톡 측 손을 들어줬다. 법무부 징계위원회는 온라인으로 변호사 상담서비스인 로톡을 이용한 변호사 123명에 대해 변협이 내린 징계 처분을 모두 취소 결정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 리걸테크가 개화기를 맞이할 수 있는 큰 진전이다.

리걸테크 업계는 이번 법무부의 결정에 향후 리걸테크의 성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 지난 수 년여간 변협의 과도한 공격 속에 고통을 겪어왔으나 이제는 많은 국민이 법률 플랫폼이 무엇인지 알고, 변호사들도 리걸테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또한 리걸테크 스타트업 앞에 글로벌 시장으로의 길이 열렸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랙슨에 따르면 금년 4월 기준 전 세계 리걸테크 업체 수는 7500여곳에 달한다. 누적 투자 규모는 119억 달러(약 16조 1000억원)가량이다. 그중 35억 달러(약 4조 7000억원)가 최근 2년간 진행돼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리걸테크의 장점은 자동화, 양질의 법률 서비스 제공, 고객 경험 변화에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리걸테크 분야는 법률산업 관련 법·규제로 산업 발전이 더딘 상태이다. 법무부의 판단을 계기로 혁신 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이번 정부의 규제완화와 발맞춰 전문직 서비스 플랫폼들은 기존 산업과의 갈등 해소, 서비스 개선 등의 노력 또한 지속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 발생을 막기 위해 시정 조치와 단속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

또한 최근 플랫폼, AI 등 신산업의 등장으로 인해 전문직 산업에도 디지털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전문직 플랫폼들의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발전을 저해하는 기득권의 맹목적인 카르텔은 지양돼야 한다. 정부 규제 역시 이용자들의 효용성, 산업의 변화 등에 맞춰 시의적절한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해당 플랫폼 역시 소비자 피해 등을 부를 수 있는 정보나 기술을 악용해서는 안 된다. 리걸테크를 비롯한 혁신 산업 분야에 정부, 업계와 학계, 전문직 단체 등이 머리를 맞대 합리적이고 적절한 개선책을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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