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최혜인 기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민간인들을 ‘인간방패’로 내세운다는 비난을 받는 하마스가 이스라엘 봉쇄 작전으로 인한 연료난 속에서 병원으로부터 연료를 훔쳐 작전에 사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일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하마스의 서부 자발리야 지휘관, ‘인도네시안 병원’, 주민 간 대화라고 주장한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하마스가 병원에서 연료를 훔치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인도네시안 병원’은 최근 폭격으로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자발리야 난민촌과 불과 500m 떨어진 곳에 있는 시설로 가자지구 가장 큰 병원 중 하나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각) 가자지구 자발리야 난민촌에서 이스라엘 폭격 생존자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에 넋을 잃고 앉아 있다. (AP/뉴시스) 2023.11.01.
지난달 31일(현지시각) 가자지구 자발리야 난민촌에서 이스라엘 폭격 생존자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에 넋을 잃고 앉아 있다. (AP/뉴시스) 2023.11.01.
최근 폭격으로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자발리야 난민촌 인근의 ‘인도네시안 병원’. (제공: 이스라엘 방위군(IDF)) ⓒ천지일보 2023.11.02.
최근 폭격으로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자발리야 난민촌 인근의 ‘인도네시안 병원’. (제공: 이스라엘 방위군(IDF)) ⓒ천지일보 2023.11.02.

이 녹취 영상에서 병원장과 함께 있다고 밝힌 하마스 측 지휘관은 “우리는 당신(주민)이 내게 말했던 사람으로부터 연료를 받기 위해 왔었다. 얘기했던 것처럼 1000리터 분량”이라면서 “지금 연료가 떨어져 새로운 1000리터 연료를 (주민에게) 공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에 “지금 ‘인도네시안 병원’을 말하는 거냐”는 주민 질문에 하마스 지휘관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주민은 “의사가 연료가 없다고 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하마스 지휘관은 직접 병원 측에 말해보라며 수화기를 넘겼다.

이후 주민이 “그들이 어제 인도네시안 병원에서 연료를 채우라고 말했었다”고 말하자 병원장 대신 수화기를 든 병원의 한 관리자는 누가 그랬냐고 물었고, 주민은 “(팔레스타인) 재정부에서 그랬다”고 전했다.

이후 병원 측은 “사실 어젯밤에 재정부 관계자가 내게 그들(하마스)이 필요로 하면 기름을 공급해주라고 했다”며 “가져갈 연료량은 1000리터였다”고 확인해줬다. 그러자 가자 주민이 “만약 오늘 밤 연료를 (추가로) 받으러 간다면 문제가 되느냐”고 물었고, 병원 측은 “문제가 된다. 정부 대표자가 1000리터를 채워주라고 했는데 공급할 수 있는 양이 600리터밖에 없다고 말하니 그거라도 채워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연료가 부족해 받지 못한다는 상황으로 흘러가자 그 주민은 하마스와 주민들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는 듯 “우린 지금 당장 일해야 한다, 연료를 채워 달라”고 소리 높였다.

이어 그가 “우리 모두는 팔레스타인 안위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일하고 있다. 주여 그들(하마스)에 기름을 채워달라. 사람들이 압박하고 있다. 더 늦어지면 그들이 우릴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할 수 있다”고 호소하자 병원 관리자는 “어떨지 한번 보자”고 답했다.

병원 마당에 수습된 폭격 희생자들 시신[가자시티=AP/뉴시스] 가자지구 알할리 병원 폭격으로 숨진 희생자들의 시신이 17일(현지시각) 가자시티에 있는 알시파 병원 마당에 놓여 있다. 이 폭격으로 최소 500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마스는 이를 이스라엘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오폭이라고 대응하고 있다. 2023.10.18.
병원 마당에 수습된 폭격 희생자들 시신[가자시티=AP/뉴시스] 가자지구 알할리 병원 폭격으로 숨진 희생자들의 시신이 17일(현지시각) 가자시티에 있는 알시파 병원 마당에 놓여 있다. 이 폭격으로 최소 500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마스는 이를 이스라엘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오폭이라고 대응하고 있다. 2023.10.18.

이번 대화와 관련 이스라엘군 측은 “하마스가 병원에서 연료를 훔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연료가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하기로 돼 있었지만 하마스의 테러 인프라에 사용될 것이라고 영상은 확인해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하마스는 알 아흘리 병원 사건 때나 시파 병원과 그 아래 하마스 인프라를 폭로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계속 거짓말을 할 것”이라며 “앞으로 계속 구체적인 증거를 공개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알 아흘리 병원 사태는 최근 미상의 미사일 폭격으로 500여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을 말한다.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이 원흉이라고 주장했지만 이스라엘군은 레이더와 녹취록 등 각종 증거자료를 통해 하마스의 미사일 오발사로 벌어진 참극이라고 맞서며 네 탓 공방을 벌인 바 있다.

하마스가 학교·병원 등 민간인들이 많이 몰리는 공공장소를 방패 삼아 반이스라엘 작전을 펼친다는 말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가자 최대 병원인 ‘알 시파 병원’ 지하에 하마스의 사령부와 지하터널 출입구 등이 있다는 발표도 있었고, 요르단강 서안지구(웨스트뱅크) 난민촌에 자리 잡고 있던 모스크 지하가 모스크와 어린이집을 방패 삼은 작전 거점임을 알려주는 IDF와 이스라엘안보국(ISA) 합동 작전 영상도 공개된 바 있다.

가자지구의 병원 상황과 관련해 앞서 지난달 말 AFP은 가자지구 병원 35곳 중 12곳이 연료 부족으로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가동 중인 병원들도 연료 고갈 우려 속에 응급실을 제외한 다른 부서의 기능이 모두 정지됐다는 보도다. 실제 이달 1일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가자지구 모든 병원 중 16개 병원이 포격과 연료 부족으로 운영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전쟁 상황으로 절반 가까이가 문을 닫은 셈이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이 같은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병원 등 민간 시설에 연료 재고가 있는데 하마스가 주민들을 인간방패로 사용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적 선전술을 펴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최근 이른바 ‘생명줄’인 이집트 라파 관문이 열려 물과 식량, 의약품 등 인도적 구호 물품이 공급됐지만 이스라엘의 완강한 반대로 연료는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하마스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근거가 없다고 반박해왔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 대변인이 하마스가 의료진들이 환자들을 위해 써야 할 병원 비축 연료를 자신들의 작전 수행을 위해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발표했을 때도 하마스 측은 “적군(이스라엘군) 대변인의 발언에는 근거가 없다”라며 “이스라엘이 우리 국민을 상대로 새로운 학살이 자행될 수 있는 길을 닦기 위해 주장을 꾸며냈다”고 반박했다.

22일(현지시간) 이집트 라파에서 가자지구 인도적 지원을 위한 트럭들이 국경을 통과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2023.10.23.
22일(현지시간) 이집트 라파에서 가자지구 인도적 지원을 위한 트럭들이 국경을 통과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2023.10.23.
23일 천지일보가 입수한 이스라엘 방위군(IDF) 모스크 대테러작전 영상. 이에 따르면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 아래에는 방마다 각종 무기나 작전 지휘를 위한 CCTV, 땅굴을 팠던 잔해 등으로 빼곡했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이스라엘안보국(ISA) 제공 영상 캡쳐) ⓒ천지일보 2023.10.23.
23일 천지일보가 입수한 이스라엘 방위군(IDF) 모스크 대테러작전 영상. 이에 따르면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 아래에는 방마다 각종 무기나 작전 지휘를 위한 CCTV, 땅굴을 팠던 잔해 등으로 빼곡했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이스라엘안보국(ISA) 제공 영상 캡쳐) ⓒ천지일보 2023.10.23.
요르단강 서안지구(웨스트뱅크) 제닌에 있는 이슬람 사원 ‘알 안사르 모스크’ 내부 배치도. (제공: 이스라엘 방위군(IDF)·이스라엘안보국(ISA)) ⓒ천지일보 2023.10.23.
요르단강 서안지구(웨스트뱅크) 제닌에 있는 이슬람 사원 ‘알 안사르 모스크’ 내부 배치도. (제공: 이스라엘 방위군(IDF)·이스라엘안보국(ISA)) ⓒ천지일보 2023.10.23.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대원들. (출처: 뉴시스)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대원들. (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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