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1610(광해 2)년 허준(許浚)이 마침내 동의보감(東醫寶鑑) 편찬(編纂)을 완료하였는데, 여기서 그 이전에 여러 책을 편찬한 내용을 소개한다. 구체적으로 1581(선조 14)년 찬도방론맥결집성(纂圖方論脈訣集成)을 펴냈으며 이어서 창진집(瘡疹集)의 개정판(改訂版)도 냈는데 세조(世祖)부터 성종(成宗)까지 의학(醫學)의 대가(大家)로 알려진 임원준(任元濬)의 창진집을 수정한 내용이다.

또한 1591(선조 24)년에 노중례(盧重禮)가 저술한 태산요록(胎産要錄)의 개정판을 냈다. 한편 허준이 동의보감을 편찬한 이후의 저서(著書)는 다음과 같다.

1612(광해 4)년 이미 1581(선조 14)년에 완성했던 찬도방론맥결집성(纂圖方論脈訣集成)을 내의원(內醫院)에서 간행했다. 1613(광해 5)년 훈련도감(訓練都監)에서 목활자(木活字)로 인쇄된 동의보감이 마침내 내의원에서 간행되었으나 안타깝게도 현재 남아있지 않고 그 이후 전주와 대구에서 목판본(木版本)으로 간행된 것이 현재에도 보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해 2월에 내의원에서 간행한 신찬벽온방(新撰辟瘟方) 1권 1책과 그해 12월에 역시 내의원에서 간행한 벽역신방(辟疫神方) 1권 1책이 있다.

덧붙이면 신찬벽온방(新撰辟瘟方)은 1612(광해 4)년 12월에 전국적으로 온역(瘟疫)이 전파되는 급박한 상황에서 환자를 구호하기 위해 허준이 오래전부터 전해 오던 벽온방(辟瘟方)을 참작하여 다시 찬집(纂集)한 것이다.

또한 ‘벽역신방(辟疫神方)’은 그 이듬해인 1613(광해 5)년 10월에 전국적으로 당독역(唐毒疫)이라는 발진성(發疹性)의 열병(熱病)이 유행하여 인명 피해가 큰 상황에서 그해 12월에 허준에게 명하여 편집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으니 당시 광해군은 허준을 신임하였다는 것인데, 이는 왕세자(王世子) 시절 치명적인 전염병(傳染病)인 두창(痘瘡)을 치료해 준 점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광해군은 이러한 특수 질환들이 전국적으로 유행할 때 마다 허준에게 명하여 해당 병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방서(治療方書)들을 편찬케 하였던 것이다.

허준은 동의보감이 간행된 지 2년 후인 1615(광해 7)년 내의원(內醫院)에서 후학(後學)을 가르치다가 향년(享年) 78세를 일기(一期)로 별세(別世)하였으니 사실상 80평생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허준은 별세한 이후 그동안의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1품인 익사공신 보국숭록대부(翼社功臣輔國崇祿大夫)에 추증(追贈)되었다.

이상과 같이 6회에 걸쳐서 조선(朝鮮) 최고(最高)의 명의(名醫) 구암(龜巖) 허준(許浚)의 80 평생을 간략히 서술하였는데 많은 백성들의 생명을 구하고자 혼과 정성을 다하였던 그의 고귀(高貴)한 생애(生涯)가 우리 사회에 널리 전파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