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하던 말 중에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 고생을 안 할 수 있다면 안 해야지 왜 사서라도 고생을 하라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냥 얻은 것보다 어떤 수고 후에 얻은 것이 더 값지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지금은 젊어서 고생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고생을 사서 하는 경향이 있다. 고산병을 각오하면서까지 높은 산에 오르거나, 마라톤에 도전하거나, 단식을 하는 것도 비슷한 일일 것이다. 분명 목표는 다를 수 있지만 고통에 도전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고통에는 선택적 고통이 있고, 비선택적 고통이 있다. 당연하게도 비선택적 고통은 갑자기 당하게 되는 고통이다. 우리는 평생 그런 고통을 피하면서 살게 된다. 그런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대부분 사람의 소망일 것이다. ‘선택적 고통’은 좀 다르다. 대부분 이겨낼 수 있는 일에 도전하고, 이뤄냈을 때는 무척 기분이 좋아지고 뿌듯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좋은 결과를 갖게 됐을 때, 그동안 느꼈던 고통을 ‘값진 고통’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고통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어서 이것은 어쩌면 우리 인생의 백신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인생을 살다가 비슷한 종류의 고통이나 비슷한 강도의 고통이 오게 됐을 때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해서 무서운 놀이기구를 탄다거나, 무서운 영화를 보는 것, 심지어 매운 것을 먹는 것도 그 이후에 오는 편안함을 즐기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가 매운 것을 먹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매운 것을 먹을 때, 우리가 느끼는 것은 매운 맛이 아니라는 것이다. 캡사이신수용체라는 통각수용체를 통해서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매운 음식을 통해서 고통을 느끼게 될 때, 뇌에서는 고통을 없애기 위한 엔돌핀을 분비하게 되고 그로 인해 고통이 사라질 뿐 아니라 시원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문제는 매운 것에 대한 고통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전혀 관계없는 실연이나 시험 등의 스트레스를 통한 정신적 고통들도 같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슬픈 영화를 보거나 슬픈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너무 슬퍼서 마음 아파하고 울고 나면 내 안에서도 카타르시스가 일어나면서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부정적인 자극은 긍정적인 자극보다 강도가 훨씬 세다는 것이다. 박완서 작가의 ‘기나긴 하루’라는 단편 소설에 보면 시어머니의 여고 동창들이 모여서 학창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자부심으로 꽉 차서 일본 노래까지 부르다가 마지막 부분에는 ‘아 가난했던 그 시절이여’라고 외치는 내용이 나온다. 그 긴 세월 중에 하필이면 가난한 시절이 그립다는 이야기인가를 주인공이 어이없어하는 말이 나온다. 아마도 어렵던 시절을 대조해 보면서 지금 행복을 만끽해 보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고 고생하는 것이 어쩌면 행복의 전제조건일지 모르겠다. 어려운 상태의 극한이 어디인지를 스스로 경험할 때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처럼 더 짜릿한 행복을 느낄 권리가 생기는 것 같다. 고생은 사서도 할 줄 아는 사람만이 더 크고 많은 행복을 누릴 권리도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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