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현 정부의 원전강화정책으로 신규원전 건설은 물론 노후원전 연장 가동까지 가시화되자 이에 대한 적절성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원전 가동과 함께 늘 따라다니는 안전성 문제와 환경오염 문제 그리고 핵폐기물 처리 문제까지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만일 수도권에 부산 기장 고리 규모의 원전단지를 건설하고 이를 가동한다면 원전의 안전성 논란은 물론, 지역차별 논란, 송전망 건설 갈등 등 많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부의 주장대로 원전이 절대 안전을 보장하고 문제 없는 친환경 발전이라면 수도권에 못 지을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오히려 경제성이나 효율성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수도권에 신규원전단지를 조성하게 되면 향상된 과학기술에 힘입어 신규 원전의 수명 또한 예전보다 훨씬 긴 60~100년이라고 하니 거기에 지금처럼 수명연장까지 한두 차례 더 하면 향후 여러 세대에 걸쳐 수도권 에너지 공급에도 문제없다고 한다.

더군다나 수도권에 원전단지를 건설함으로써 그간 끊임없이 제기됐던 원전 안전성 논란과 지역차별 논란 특히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과 송전탑 건립에 따른 소모성 갈등 같은 분쟁도 일시에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사실 이러한 주장과 별개로 수도권 원전 건설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수도권의 전력 자립이나 에너지 민주주의 차원에서도 매우 바람직하다. 현재 수도권 전력 자립도는 서울이 2.6%, 경기도가 59.8%에 불과하다. 반면 강원도는 199%나 된다. 비수도권 생산, 수도권 소비라는 전력 불균형이 지속되고, 발전소 건설의 위험 부담은 비수도권 지역주민들에게 가중될 수밖에 없는 에너지 불평등 상황인 셈이다.

지역 간 전력자립도 차이가 이렇게 큰 이유는 국내 발전소가 동·서해안에 밀집돼 ‘중앙집중식’ 전력공급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해안엔 석탄화력발전소, 동해안에는 고리, 월성, 울진 등 원자력발전소가 몰려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수도권에서 전력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반면, 발전설비용량은 이에 매우 못 미치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의 ‘안전하고 믿음직한 친환경 에너지’ 논리대로라면 원전의 수도권 건설 주장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혹자는 원전은 반드시 해안가에 있어야 한다며 원자로 냉각수와 온배수 문제로 수도권 입지 조성은 불가하다고 말하지만 이는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거나 선입견에 불과하다. 한강이나 내륙 등에도 원전단지 조성이 충분히 가능하며 이는 유럽의 사례로도 입증된다.

원전 강국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경우, 해안가 원전단지는 불과 4곳에 불과하며 후쿠시마 사고 전까지 프랑스는 58기, 독일은 17기의 원전을 내륙에 지은 바 있다. 한강 유역에 원전단지를 조성할 경우 대규모 온배수 유출로 인한 생태계 교란을 우려하는 지적도 있지만 이는 사실 동해안이나 남해안도 매한가지다.

최근 방폐장 건립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처리도 수도권 원전단지 내 임시저장시설을 마련하고 원전 부지를 활용해 건설하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지난 40년간 핵폐기물의 영구처리 없이 부산 고리와 동남해안가 원전을 잘 이용해 왔으므로, 정부가 서울과 수도권 주민들을 설득하면 될 일이다. 지금처럼 값싸고 안정적인 전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고 혜택 또한 가장 많이 누리는 수도권에서 전력을 직접 생산하고 공급하고 소비하고 그 쓰레기까지 책임지는 게 마땅한 이치라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고리원전이 있는 부산 기장군 주민들은 “그렇게 원전이 안전하고 필요하다면 청와대나 국회의사당 인근이나 수도권에 건설하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것은 ‘대도시 인구 밀집지역은 피해야 하는’ 원전 입지 선정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대도시 인구 밀집지역 회피 원칙’이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지방 대도시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의 씁쓸한 현실이다.

그래서 제안한다. 원전이 그렇게 안전하고 든든한 그린 에너지라면 그리고 모든 갈등과 논란을 잠재우고 원전을 통한 에너지 백년대계를 꿈꾼다면 대규모 원전단지를 서울 수도권에 건설하겠다고 선언하라.

이참에 청와대 아래, 용산 대통령실 아래에 폐연료봉을 보관할 고준위 방폐장도 함께 건립하자. 그렇게 모범을 보이고 솔선수범하자. 그러지 못할 거라면 원전은 안전하니 문제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원전 새로 짓고, 수명 다한 낡은 원전 연장 가동하자고 말해서는 안 된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유명한 영화 ‘친구’에 이런 명대사가 있다. “니가 가라 하와이.” 좋으면 억지로 권하지 말고 직접 하면 될 일 아닌가.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