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헌혈 공식 기록 500회… 외국 헌혈까지 포함 700회
대한적십자사 공식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나눔 실천’ 홍보
“정기 헌혈로 다른 사람들 돕고 내 건강도 챙길 수 있어”
8800회 ‘행복’ 강연… “모두를 위한 행복대학 설립이 꿈”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서재균 국회나눔포럼최고위과정 주임교수가 최근 천지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14.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서재균 국회나눔포럼최고위과정 주임교수가 최근 천지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14.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옛말이 있습니다만, 저는 항상 ‘하늘은 남을 돕는 사람을 돕는다’라는 말을 하고 다닙니다. 이는 저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이 말을 듣고 실천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증언이기도 합니다. 남을 돕는 삶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삶이니까요.”

대한적십자사를 통한 국내 헌혈 공식 기록 500회. 전산 입력 전 과거 기록까지 포함하면 600회. 출장이나 여행을 가서 우리나라 기록에 포함되지 않은 해외 헌혈 기록(100회)까지 포함하면 무려 700회가량 헌혈을 한 자타공인 ‘헌혈왕’이 있다. 바로 서재균 국회나눔포럼최고위과정 주임교수다.

대한적십자사의 홍보대사로도 활동 중인 서 교수의 또 다른 별칭은 ‘행복 전도사’다. 자신보다 남을 더 챙겼는데도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다는 그는 자신이 그토록 행복한 삶을 누리는 ‘비결’을 사람들에게 강의를 통해 전하고 있다. 서 교수가 강연한 횟수는 무려 8800회에 달한다.

‘평범’과는 거리가 먼 서 교수이지만 그가 본래부터 이러한 꿈을 가졌던 건 아니었다. 헌혈을 시작했던 계기도 특별하지 않았다. 청소년기 길거리 버스에서 헌혈했던 게 첫 헌혈이었다. 서 교수가 본격적으로 헌혈을 시작한 건 예비군 훈련 때부터다.

그는 적십자사 직원으로부터 ‘회원으로 등록하고 정기적으로 헌혈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시에는 휴대전화가 있었던 때가 아니었기에 적십자사에서는 회원들에게 ‘삐삐(무선 호출기)’를 나눠주고 헌혈 시기가 다가오면 삐삐를 통해 이를 안내했다.

서 교수는 헌혈에 한 번 두 번 참여하면서 신기한 체험을 했다. 그는 사춘기 시절부터 빈혈을 앓았는데 정기적인 헌혈을 시작하고부터는 빈혈 증상이 거짓말같이 말끔하게 사라진 것이다. 헌혈로 건강한 몸을 갖게 된 그는 더 좋은 피를 헌혈로 나누고자 술과 담배도 멀리한 것은 물론이고 운동도 꾸준히 하게 됐다고 했다.

헌혈 500회를 기념하는 서재균 교수. (제공: 서재균 교수)
헌혈 500회를 기념하는 서재균 교수. (제공: 서재균 교수)

“정기적으로 피를 뽑게 되면 우리 몸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피를 더 많이 만들게 돼 있습니다. 새롭고 건강한 피가 제 몸속을 돌게 되니 건강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아요. 헌혈로 남도 돕고 내 건강도 챙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서 교수의 말은 과연 빈말이 아니었다. ‘헌혈’과 ‘건강’과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한 대학병원 의대 교수는 서 교수의 혈액을 정기적으로 받아 연구를 진행하는데 그의 연구에 따르면 서 교수의 혈액 나이는 ‘38세’로 나타났다.

물론 술과 담배를 모두 끊고 하는 정기적인 헌혈이 장점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서 교수는 사회초년생 시절 한 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일을 했다. 그러나 그는 술을 마실 수 없었기에 다른 동료들처럼 판매업 대표들(바이어)과의 술자리를 가지며 자사 제품을 홍보하고 계약을 따는 일은 할 수 없었다.

서 교수는 ‘술을 마시지 않고 계약을 딸 방법은 없을까’ 고민 끝에 바이어와의 만남 장소를 고급 호텔 레스토랑으로 잡고, 호텔로 가기 전 꽃집에 들렀다. 장미꽃 한 다발을 구입한 그는 곧장 호텔로 가 최고급 요리와 함께 꽃다발을 바이어에게 선물했다. 서 교수는 그 자리에서 술도 마시지 않았고 2차도 가지 않았으며, 1차에서 모든 대화를 마무리했다. 미팅 비용도 다른 동료들보다 많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다음날 서 교수는 바이어로부터 계약을 진행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바이어들 역시 미팅을 하고 나면 술에 잔뜩 취해서 밤늦게 집에 들어가기 마련인데 그날은 남편이 집에 일찍 들어온 것은 물론 손에 꽃다발까지 들고 있으니 (바이어의) 아내가 큰 감동을 받았던 모양이예요. (아내가) ‘좋은 사람 같으니 그 사람과 내일 꼭 계약하시라’ 이렇게 말을 했다는 겁니다.”

술 한 모금 마시지 않고 큰 계약을 따낸 서 교수는 이후로의 활동에서도 남다른 성과를 내며 1등 판매원으로 등극했다. 그의 일화는 순식간에 회사 대표에게 전해졌다. 회사 대표는 서 교수에게 대뜸 임직원들을 상대로 하는 강연을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해서 서 교수는 사내 첫 강연자로 서게 됐다.

‘영업사원에게 계약을 따내는 성패는 다름 아닌 고객 감동과 고객 행복에 있다’를 주제로 한 그의 첫 강연은 대성공으로 마무리됐다. 그때부터 서 교수는 영업사원으로 뛰는 것보다 사내 강연자로 더 많은 일을 하게 됐다고 했다.

서 교수는 세계 여행을 다니며 지구를 30바퀴쯤 돌았다고 했다. 여행을 다니면서도 틈틈이 헌혈을 잊지 않았다. 해외에서 하는 헌혈은 대한적십자사의 기록에 남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에겐 기록보다 ‘나눔’ 그 자체가 더욱 큰 기쁨이었기에 방문하는 나라를 가리지 않고 헌혈을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감동하며 눈시울을 붉힌 외국인들도 많았다고 했다.

‘주는 기쁨’과 ‘행복’에 대해 강연하는 서 교수는 이러한 자신의 경험담을 주된 강연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한 번은 국회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다가 어느 정도 가격이 나가는 기념품을 선물로 받았는데 초청자들에게만 주는 것이었고 취재를 온 기자들은 제공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 기자가 너무 가지고 싶어 하자, 서 교수는 선뜻 자신이 받은 선물을 그 기자에게 줬다.

행사 후 서 교수는 국회 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행사 주최 측 관계자가 우연히 서 교수를 보고선 그에게 선물을 못 받았냐고 물었다. 이에 서 교수가 “기자에게 줬다”고 하자 해당 관계자는 “마침 남은 선물이 있는데 교수님께 드리겠다”며 기념품 2개나 선물했다. 1개였던 ‘전부’를 남에게 줬지만, 결과적으로 2배나 얻게 된 셈이다.

서 교수는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강연자로서 살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돈을 많이 번다고 다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문득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게 뭘까’를 생각하다가 사람들의 모든 행동의 목적이 ‘행복’으로 귀결되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때부터 행복을 연구하면서 행복을 강연하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어요. 다른 사람을 도울 때 느끼는 행복감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 도움이 나에게 또 다른 행복한 일로 찾아오는 내 경험을 사람들에게 전하게 됐습니다.”

서 교수는 모든 학생이 100% 장학금으로 등록금 없이 다닐 수 있는 ‘행복대학교’를 설립하는 꿈이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 학생들도 100% 전액 장학금으로 학비 걱정 없이 마음껏 배울 수 있는 대학을 만드는 게 꿈”이라며 “행복대학교에서 배움을 얻은 해외 유학생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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