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칼럼니스트

TV 속에서는 종일 정치 이야기다. 누가 무슨 말을 했네, 누구는 무슨 짓을 했네, 누구는 얼마나 해먹었다더라, 누구는 입에 담기 민망한 그런 짓을 했다더라, 어느 누구는 밥을 굶기 시작했다더라, 사실은 굶는 시늉만 한다더라….

보고 있자니 열불이 나고, 안 보자니 궁금하고, 그렇게 하릴없이 TV를 켰다 끄기를 반복한다. 결혼과 이혼을 여러 차례 하면서 이것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웃음을 준 어느 개그맨은 “이혼하면 외롭고, 결혼하면 괴롭다”고 했다. 방송이 그렇다. 안 보면 궁금하고, 보면 열불 난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큰돈 들이지 않고 패널 몇명 갖다 앉혀 놓으면 서로 알아서 싸워주니 이보다 좋을 순 없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해대며 “가짜 뉴스”라고 쏘아대면서, 우리도 이 가짜뉴스란 단어를 일상으로 쓰고 있다. 유언비어, 카더라 방송, 왜곡보도라는 말들이 사라지고 이제는 가짜뉴스로 단어가 통일이 돼버렸다.

희한한 것은 권력이 바뀔 때마다 “가짜뉴스 때려잡자”고 난리를 친다는 것이다. 가짜뉴스로 재미를 본 자들이 가짜뉴스의 위력을 알고, 그들 역시 가짜뉴스 때문에 가진 것을 빼앗길까 몹시 겁이 났을 것이다. 여의도가 도적떼 소굴, 가짜뉴스 생산 공장으로 둔갑했다. 아무말대잔치를 해대는 가짜 언론은 그들의 훌륭한 동업자다.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산다는 연예인들도 한 입씩 거든다.

임금이 신통찮고 권력을 쥔 자들이 썩어 백성들이 힘들 때, 어김없이 가짜뉴스가 나왔다. 태봉을 세운 궁예가 대표적이다. 신라 말기 백성들이 극한의 고통을 겪자, 궁예는 스스로 세상을 구할 미륵불이라 자처했다. 원래 중이었으나 도둑 무리에 가담해 권력과 명예를 꿈꿨다.

궁예는 수덕만세(水德萬世)를 연호로 썼다. 화덕(火德), 즉 불로 다스리는 신라 왕조를 물(水)로 뒤엎고 만년 동안 권세를 누리겠다는 것이다. 그는 두 아들의 이름을 보살이라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미륵불과 보살 가족’은 도솔천에서 내려온 부처가 아니라 부처의 탈을 쓴 악마였다.

후백제의 견훤도 미륵사가 있는 익산을 근거지로 나라를 세웠다. 그 역시 자신에게 미륵불의 이미지를 씌우고 아들 이름을 금강(金剛), 신검(神劍)이라 했다. 고려 태조 왕건도 도참설을 이용해 왕(王)씨가 임금이 될 것이란 가짜뉴스를 만들어 퍼트렸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도 가짜뉴스 기술자다. 그는 중 무학을 파트너로 영입하고 ‘목자위왕(木子爲王)’, 자신의 등에 서까래 세 개가 내려 앉아 왕(王)자가 되었다는, 실로 황당한 꿈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사람들은 “이제 왕씨 세상이 가고, 이씨 세상이 오는가, 이것이 과연 하늘의 뜻인가” 여겼다. 정 도령 세상이 온다는 정감록도 가짜뉴스다. 조선 초 무학이 지었다는 설도 있고 정도전이 만들었다는 말도 있다. 시대에 따라 그 내용이 조금씩 바뀌었는데, 핵심 내용은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금서로 찍혔지만 민중들 사이에서 소리 없이 읽혔다. 가짜뉴스였지만, 고단한 세상을 이겨내는 환각제 같은 역할을 한 셈이다.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코미디언 이주일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담배, 그거 독입니다.” 그가 살아있다면 “가짜뉴스, 그거 독입니다”라고 했을지 모르겠다. 가짜뉴스, 그거 독 맞다. 다우너 소가 광우병 소로 둔갑해 허둥대며 쓰러지는 충격적인 장면이 TV 화면 가득 잡히고, 먹으면 뇌에 구멍이 송송 난다고 했지만, 그런 소식은 아직 없다.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그 분이 청산가리를 드셨다는 소식도 아직 없다. 그 많은 소고기는 누가 다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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