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칼럼니스트

흉악한 계절이었다. 하늘이 무너진 듯 비가 쏟아져 마을이 휩쓸려가고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대낮에 흉기 난동이 일어나고 죄 없는 사람들이 다치고 세상을 떠났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착한 선생님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웃나라에서 원자로 오염수를 방류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우리들끼리 멱살잡이를 하며 이판사판 싸움질을 시작했다. 무더운 여름날 벌어진 일들이었다.

사람들이 험한 꼴로 살고 있을 때, 언제나 그렇듯 무심하게 시간이 흘렀고, 언제나 그랬듯이 매미가 찾아왔다. 사람들은 죽거나 말거나 매미들은, 늘 그랬듯이, 목 놓아 울었다. 죽어라고 울어댔다. 20년을 땅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잠시 나온 세상, 원 없이 울다 가야겠다, 그런 생각이라도 한 것일까. 매미가 생각을 할 리 만무하고, 악으로 깡으로 울다가, 정말 재수가 좋으면, 씨 한 방울 남겨 놓을 수 있다는 것, 그게 자연의 섭리이고 매미의 사명이다.

우리 삶도 한 철 목 놓아 울다가는 매미와 다를 바 없다. 세상에 나와 겨우 스무날쯤 살다가는 매미와, 평생 죽을 둥 살 둥 허덕이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 중 어느 쪽 삶이 더 무거울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을, 한낱 곤충과 그 삶의 무게를 따지는 것이 턱도 없는 소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모든 생명은 각자 주어진 삶을 살다 사라지고 그래서 모두 허망하고 무상하다. 매미나 인간이나 그게 그것이다. 도긴개긴이다.

아득한 시절 중국의 학자 육운이라는 사람은 매미가 다섯 가지 덕을 지녔다고 했다. 머리에 아롱진 무늬가 있으니 그것은 문(文)이요, 이슬을 마시며 사니 그것은 청(淸)이요, 곡식을 먹지 않으니 그것은 염(廉)이요, 집을 짓지 않고 사니 그것은 검(儉)이며, 계절을 지킬 줄 아니 그것은 신(信)이다. 매미도 글을 알고 청렴하며 검소하고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이슬 대신 참이슬을 퍼마시고 글을 읽지 않으며 곡식을 배불리 먹으려 하고 큰 집을 가지려 하고 계절을 몰라 철없는 짓을 하는 인간들에 비하면, 매미가 인간보다 백배는 낫다.

엄기창 시인은 매미를 두고 이런 시를 지었다. ‘매~애앰 매~애앰/매미가 울고 있다/노래를 부르기도 아까운/짧은 생애인데/매미의 목숨이 눈물로 녹고 있다.//매미의 꿈속에서 최루탄이 터지고/질기게 잡고 있던 다리/진실의 한 끝이 유리처럼 부서지고/맴맴맴맴맴맴맴/매미는 소스라쳐 날아가고 있다.’

올여름, 흉악한 세상을, 온몸으로 울다 스러져 간 매미들은 무슨 꿈을 꿨을까. 칼날이 날아다니고 자동차가 사람을 덮치고 사람이 사람을 죽게 만드는 그런 아수라장 같은 장면들이 매미의 꿈속에 나타났을까.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진실의 한 끝이 유리처럼 부서지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 것은 분명하다.

‘유리처럼 부서진 진실의 한 끝’을 알리려 한 매미의 마음을, 사람들은 알았을까. 매미의 울음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본 사람들은 알아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한강 변 둥근 모자 같은 지붕을 뒤집어쓴 큰 건물에 모여 하루가 멀다 않고 악다구니를 해대는 그 인간들은 모를 것이다. 매미 소리를 듣기는커녕, 매미가 왔다 간 줄도 모를 것이다.

올여름 매미들도 어느새 다 사라졌다. 계절을 지키는, 그래서 신(信)이 있다는 매미의 덕이 과연 틀리지 않았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듯이 내년에는 내년의 매미가 찾아올 것이다. 내년 여름 매미들은 무슨 꿈을 꾸게 될까. 또 어떤 ‘부서진 진실’을 알리기 위해, 20년 땅속 삶을 뒤로하고 기어이 이 세상으로 기어 나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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