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바비 코어(Barbiecore)는 트렌드 현상으로 바비 인형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핵심 코드를 말한다. 특히 1980년대의 복고적이고, 낭만적인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구체적으로 바비 인형이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핑크색이 패션 트렌드 현상을 보여줬다. 영화 ‘바비’가 전 세계 극장가에 선을 보이면서 이런 바비코어 트렌드가 더욱더 주목받았다. 바비코어룩이 유행을 하고 있는데, 하나 같이 핑크색이다. 왜 핑크색은 이렇게 주목을 받을까? 핑크색은 색 그대로가 아니라 남성, 여성 젠더 이슈에 포획된 면이 있는데 이것의 미래지향적인 모습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영화 ‘바비’는 남성과 여성, 양쪽에서 탐탁지 않게 생각할 수 있었다. 여전히 여성을 분홍색에 가두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남성들이 불편해할 수도 있다. 영화에서 주로 등장하는 바비랜드는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의 나라이다. 남성들은 거의 존재감이 없으며, 있어도 부수적인 인물에 불과하다. 사실상 남성성이 사라진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여성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 스스로 망각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바비랜드가 현실 세상과 틈이 생겨 위기에 빠지는 순간이 오고 자칫 가부장제에 무너질 수 있게 되지만, 주인공 바비 등의 노력으로 지켜내면서 여성이 보편적으로 갖는 장점도 부각한다. 특히 직업 이전의 출산은 단연 돋보인다. 다만, 이 영화에서 핑크색으로 점철된 바비랜드는 남성성을 제약하고 정체성을 다르게 만드는 공간으로 나온다. 정말 핑크색 선호는 이런 사회적 성별 구획에 따른 산물일까.

물론 기존 연구들은 그러한 결론을 내리기도 하는데, 영아기 때부터 핑크색 선호가 있다는 연구도 있다. 지난 2011년 2월 미국 버지니아대 주디 델로아체 교수는 국제학술지 ‘British Journal of Developmental Psychology’에 실린 논문에서 만 1세 정도의 어린이들은 색깔에 대한 선호를 보이지 않았지만, 2세부터는 여아가 남아보다 분홍색을 고르는 횟수가 많아졌다고 밝혔다. 반대로 남아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것을 두고 사회학적 학습의 결과라고 분석하기도 하지만, 생물학적 본능이라는 지적이 있는 등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핑크색 선호가 사회학적 학습의 산물이라는 점에 이견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분야로 진화심리학적 견해가 있다. 영국 뉴캐슬대학의 애냐 허버트 박사 연구팀은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원시 시대부터 열매 등을 채집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이를 잘 구분하기 위해 분홍색이나 연보라색을 좋아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다. 다만 이 주장에 대해 원시 시대부터 노동을 해야 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과연 핑크색을 좋아하게 될지 의문일 수 있었다.

어쨌든 색은 사회적으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심리학·범죄·법(Psychology, Crime & Law) 저널에 실린 논문을 보면 남녀의 행동에 핑크색이 오히려 반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했다. 벨기에 겐트대학교 심리학과 연구진은 한 방은 핑크색으로 페인트칠을 했고, 다른 방은 회색으로 바닥을 흰색으로 천장, 벽으로 칠하고 죄수를 넣은 후 3일 이후 반응을 조사했다. 그런데 다른 연구와 달리 공격성이 감소하지 않았다. 영화 ‘바비’에서는 핑크색이 남성의 공격성을 누그러뜨리는데 왜 이 연구에서는 핑크색이 공격성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연구 결과가 나왔을까. 연구진은 그 이유로 핑크색 때문에 남성성이 침해당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오히려 반작용이 일어난 것으로 해석했다. 오히려 핑크색에서 남녀 성차를 강조할수록 그것에 대해서 오히려 반감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젠더리스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바비코어 핑크 트렌드에서는 사실상 남녀 구분이 없는 모습을 지향한다. 케이 팝 아이돌은 남성, 여성을 불문하고 핑크색을 꺼리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일반 사회문화적으로는 핑크색이라면 여성에게 한정돼 있다. 하지만 미래 세대에게는 약간 다를 수는 있을 것이다. 전 세계 어린이들이 필수적으로 접하게 되는 콘텐츠 아기상어의 핑크퐁을 생각하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뽀로로가 파란색, 루피가 핑크색이라는 점에서 봤을 때 좀 더 진전된 모습을 보이는 셈이 된다.

2018년 호주 국립대 연구팀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색은 ‘밝은 분홍(bright pink)’일 것으로 결론 내렸다. 서아프리카 모리타니에의 사하라 사막 타우데니 분지에서 해양 퇴적물을 분석했는데 시아노 박테리아가 바로 밝은 핑크색이었던 것이다. 이때는 동물도 존재하지 않았던 때였다. 핑크색은 처음부터 태초에 남성, 여성의 구분이 없었고 사람으로 인해 분별이 있게 됐다. 어느 순간 인간의 삶 속에서 그렇게 존재했을 뿐이며, 앞으로 미래 세대에는 자율적 선택만이 놓여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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