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1967년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된 지리산이 각종 개발사업으로 또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다 자칫 국립공원 1호가 아니라 국립개발공원 1호가 될 판이다. 도대체 지금 지리산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남원에서는 정령치에 산악열차를, 산청에서는 천왕봉 턱 밑에 케이블카를, 함양에서는 벽소령 도로와 케이블카를, 하동에서는 하동알프스 산악열차에 이어 임도가 지리산을 여기저기 들쑤셔 놓더니 이에 뒤질세라 이번에는 구례에서 케이블카에 이어 골프장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나중에는 지리산 터널 뚫어 도로 확장하자는 주장까지 나올까 두렵다. 정말 이 꼴 보려고 지자체 실시했나 개탄스러울 정도다.

문제의 골프장은 구례군의 지리산 온천랜드가 조성돼 있는 산동면의 산 정상부, 지리산국립공원과 불과 170m 거리의 간미봉 기슭이다. 구례군은 지리산 온천랜드가 침체돼 이를 다시 부흥하기 위한 일환으로 인근에 골프장을 조성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온천이 낙후돼 골프장을 만들겠다니 이 무슨 뚱딴지같은 논리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지역주민들 몰래 축구장 29개 면적의 소나무 1만여 그루를 벌채하고 골프장 조성을 위해 아름다운 산기슭을 무참히 파헤쳐 버렸다. 지리산 노고단의 정기가 뻗어 내린 이곳 간미봉은 노고단과 함께 예로부터 산악을 숭상하던 우리 민족이 지리산 산신에게 제를 올리고, 나라와 국민의 안전을 기원하던 성역과도 같은 곳이었다. 이러한 신령스러운 땅에 불경스러운 골프장 건설을 위해 산과 숲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곳은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으로 수백년 된 굵은 아름드리가 숲을 이루고, 멸종위기야생생물 1등급 수달과 2등급 삵, 담비, 팔색조 등 멸종위기 동물의 서식 흔적이 발견되는 천혜의 생태 보고이다. 더군다나 예정지 아래쪽에는 사포마을·산수유마을·다랭이논 등이 있어 골프장 조성 시 환경훼손은 물론이거니와 산사태 등과 같은 지역주민의 안전에 대한 우려도 있다.

그런데도 구례군은 생태계 보전 가치가 높은 이곳에서 수확벌채가 진행되도록 서둘러 허가를 내주었고, 게다가 벌채 허가를 내면서 해당 지역이 자연재해 취약지역이라는 사실을 검토하지도 않았다. 인근 마을주민들에게 벌채 사실을 고지하지 않아, 주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행정의 의무도 저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지역발전과 환경보호를 위한 개발이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말끝마다 지역경제 활성화, 지역소멸 방지를 이야기 하는데 골프장을 만들면 과연 지역 경제가 활성화 될 것인가? 지역 주민들에게는 어떤 혜택이 돌아가는가? 골프장이 오픈하면 어떻게 온천랜드가 다시 활성화 되고 지역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말인가? 아무리 따져봐도 모를 일이다.

지자체든 개발업자든 그 누구든 지리산 국립공원 꼭대기까지 오르는 케이블카가 필요한지, 기후위기 시대에 열선으로 도로를 달구며 숲을 훼손하는 산악열차가 필요한지, 지리산국립공원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벽소령 도로가 필요한지, 산불을 이유로 대규모 임도 설치를 해야 하는지, 지리산 자락에 45만평(150ha) 규모의 골프장이 정말 필요한지, 입에 발린 상투적인 수사가 아닌 진정성 있는 답을 내놓지 못하면 당장 지리산 토건사업을 멈춰야 한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지리산국립공원을 보호지역 카테고리 Ⅱ로 등재하고 국제적으로 우수하게 관리되고 있는 보호지역인 ‘녹색목록(Green List)’으로 인증한 바 있다. 특히 백두대간 최남단에 있는 지리산은 반달가슴곰 등 멸종위기종 야생생물 44종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육상생태계로 꼽힌다. 뿐만 아니라 국가와 지자체 지정 80여점의 문화재와 다랭이논, 천년송 등의 향토문화 경관이 보존돼 있는 자연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지리산은 임기 몇 년의 정치인들의 것도 아니요, 개발과 탐욕에 눈먼 토건업자들의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지리산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과 자연, 그리고 거기에 함께 살고 있는 지역 주민, 지리산을 사랑하는 온 국민이 더불어 공생하는 생명평화연대의 장이다. 지리산 개발 광풍, 당장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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