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레트로의 생명력에는 조건이 있다. 복고는 과거에만 함몰되지 않고 새로운 스타일로 거듭날 때 변화된 문화가치에 부응해야 생명력을 길게 할 수 있다. ‘Y2K 트렌드’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말에 시작됐던 Y2K 트렌드의 부활은 신구 세대가 같이 만들어 즐기는 세대 소통과 통합적 특성을 보여줬기에 사회적으로 바람직했다. X세대와 Z세대가 같이 공유할 수 있는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Y2K 트렌드는 단순히 복고의 소환 즉, 그대로 과거의 모습을 불러내는 선에 그치지 않아야 그 본질에 부합한다. Z세대가 Y2K 트렌드에 호응을 보내는 이유는 과거가 아니라 하나의 스타일로 재발견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뉴트로(Newtro)라고 규정한다면, 새로운 창조적 스타일이 바로 Y2K 트렌드이다. Y2K 트렌드의 대표 사례였던 ‘댄스가수 유랑단’은 그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는 사례였다. 그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을 때 애초의 성과도 허물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완선, 엄정화, 이효리, 보아, 화사 등이 참여해 화제를 불러 모은 tvN 예능프로그램 ‘댄스가수 유랑단’은 X세대와 Z세대가 같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충분해 보였다. X세대는 물론이고 Z세대에게도 실제로 날이 갈수록 인기가 높았다. 특히 21세기에 태어난 Z세대에게 수용되는 것은 문화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있다. 하지만 시즌 마지막이었던 서울 콘서트는 그 민낯을 드러내 줬다. 달라진 시대적 문화가치를 간과하고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이유는 콘서트 관객들을 마치 20세기의 방청객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20세기는 그야말로 방송사의 결정대로 기획과 집행대로 제작이 이뤄지던 시대였다. 하지만 이제 21세기는 관객 즉 팬 중심이어야 한다. 그것이 뉴트로이다. 옛것 같지만 새로운 스타일을 구사해야 한다. 20세기 때처럼 관객을 줄 세우거나 방송 화면을 가득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곤란하다. 모든 것은 공정하고 투명하며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양해를 구해야 한다. ‘댄스가수 유랑단’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댄스가수 유랑단’은 무대 녹화 개념이 아니라 스튜디오 녹화 개념으로 구성했다. 관객들은 방송 프로그램 편집을 위한 병풍이자 수단이 됐다. 녹화 시간이 매우 길었고 세트 전환 시간이 지체돼 공연 관람의 흐름이 끊겼다. 생각지 못했던 초대가수들의 무대가 비중을 차지했고, 그들의 인터뷰도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피로증이 유발되니 온전히 ‘댄스가수 유랑단’을 보려 했던 관객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결국 길어진 녹화 시간 때문에 공연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돌아간 관객들이 속출했다. 더구나 일요일 늦은 밤에 공연 녹화가 이뤄져서 더욱 이런 사례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관객들에게 충분히 고지되지 못했다. 더구나 관객은 자신이 보고 싶은 공연의 내용을 위해 정당한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에 더욱더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당연히 자신의 권리에 따라 문화적 향유를 할 수 있어야 했다. 따라서 환불 요청이 쏟아진 이유를 알 수가 있다. 더구나 방송 녹화 제작에 참여한 스텝들도 예상을 넘은 노동을 수행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방송 프로세스가 정확하고 구축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객이나 스텝 모두에게 누가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은 이를 당연시한 마인드가 문제다. 애초에 공연 녹화 제작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사과 한마디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방송은 이렇게 제작이 되는 것이라는 태도는 더는 반복될 수 없다. 만약 옛날 것들이 모두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면 그것은 복고 세대에게 한정된다. 과거의 아름답지 않은 것들은 과감하게 삭제하고 적절하고 바람직한 것을 부각하는 것이 Z세대의 뉴트로 스타일이다.

20세기에는 방송사의 관점에서 제작 구성이 이뤄져도 그것을 수용하는 행태가 일반적이었는지 몰라도 21세기에는 이는 공정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점은 21세기에 출생한 Z세대에게는 필연적이다. 어느 세대보다 공정에 민감한 감수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는데 이는 반드시 젊은 세대의 특징으로 치부할 수 없다. 배려와 시혜가 아니라 당연히 받아야 할 정당한 권리보장이 이뤄지지 않을 때 이는 공정하지 않을 뿐이다. K팝을 키워낸 20세기의 소녀들이 빠순이(열성 소녀 팬)라고 비난받았던 행태가 21세기 공정 세대에게는 다시 반복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달라진 시대적 문화가치의 본질에 주목하고 이에 맞춰 끊임없이 피드백의 교감을 이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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