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3’ 주춤사냥개들의 글로벌 인기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요즘은 악당(惡黨)이라는 말보다 빌런(villain)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그런데 그 어원을 보면 좀 아이러니하다. 누구의 관점이 반영됐는지 생각할 때 악당과 같다. 빌런은 라틴어 ‘빌라누스(villanus)’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빌라누스는 특정한 사람 무리를 말하는데 바로 고대 로마의 농장 ‘빌라(villa)’에서 일하는 농민이었다. 왜 이들이 나쁜 의미가 됐을까. 이 농민들이 농장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이들을 나쁜 사람들로 규정한 단어가 바로 빌라누스가 된다. 이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간단했다. 오랫동안 착취를 당하는 상황을 바꿔보려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이런 상대적인 측면은 악당도 마찬가지다. 악의 무리에 해당이 되는데 악의 무리는 그래도 뭔가 공동의 가치를 갖고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반대 집단에서 그들을 악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나쁜 이들을 가리키는 단어는 악인(惡人)이다. 절대적으로 누가 봐도 나쁜 짓을 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영화와 드라마, 웹툰, 소설 등에서 빌런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액션 오락물이나 복수극 콘텐츠에서는 빌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오히려 상대적인 사연을 지닌 빌런보다는 악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통쾌한 응징을 생각한다면, 더욱 악당이나 빌런이 아닌 악인이 등장해야 한다. 악인은 상대적으로 편을 들어줄 수 없는 정말 나쁜 놈이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정말 나쁜 자가 등장해야 흥행을 할 수 있고, 그 배역의 연기자도 주목을 받을 수가 있는 패러독스의 관계에 있게 된다.

‘범죄도시1’의 경우 배우 윤계상이 열연했던 장첸이 극악무도했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했던 점이 있다. ‘범죄도시2’에서 배우 손석구가 무자비한 강해상을 잘 소화해 더욱 마석도(마동석) 캐릭터의 진가를 부각해 냈다. 윤계상과 손석구는 평소의 이미지와 다른 악인의 면모를 보여줘서 한층 주목을 받기도 했다. 악인 연기야말로 보통 수준의 배우가 할 수 없는 경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범죄도시3’에서는 악인이 약하다는 지적이 초반부터 비등했다. 중심 악인이 처음부터 공개된 데다가 위치가 마약계 팀장이라는 점도 미약했다. 대신 일본 야쿠자를 등장시켰지만, 주도면밀하거나 갖가지 전략을 사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미 마석도 캐릭터가 원 펀치의 강력한 우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숫자와 관계없이 악인들은 별로 힘을 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더구나 마석도라는 캐릭터가 거의 상황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웃음 포인트까지 표출되기도 한다. 이런 통제감은 반복될수록 복합적인 사건의 얼개가 필요하다.

넷플릭스 시리즈 ‘사냥개들’은 이런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의 캐릭터 구성이나 플롯과 달랐다. 기본적으로 성장형 히어로 플롯을 지니고 있다. 젊은 남자 주인공은 복싱으로 싸움에 능하지만, 완벽한 격투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시련을 겪으면서 단단해지고 출중한 실력을 갖추게 된다. 개인도 성장하지만, 집단 협업을 통해서 공동의 목표를 이뤄간다. 심지어 악인은 선한 세력을 무너뜨리고 승승장구까지 하기에 큰 고난 속에서 더욱 큰 역량을 축적하는 계기가 된다. 한순간에 복수극의 형태를 띠지만, 형사처벌을 통해서 제도적 복수를 실현한다. 이 과정에서 K 신파가 작동하고 혈연적 가족주의만이 아니라 대안적 가족주의도 눈물샘을 자극한다. 대기업-재벌가나 공권력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규정하기보다는 통합적 관점에서 모색한다는 점이 젊은 세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가 된다. 절대 악인의 구축을 통해서 이러한 점이 빛을 발하게 한다. 만약 ‘사냥개들’이 영화로 제작된다고 해도 반응은 세계적이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이제 상대적인 악인이 필요 없는 흐름이 됐다. 나쁜 녀석들은 지독하게 악독해야 한다. 범죄는 사회적 환경에 따라 만들어진다거나 범죄자는 사회 모순의 결과물이라는 의견은 부차적이다. 왜 이런 흐름이 됐을까. 아무래도 너무 많은 정보가 모바일을 타고 사람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정을 면밀하게 살펴볼 여력이 없는데 악당이니 빌런이니 그런 존재의 사정을 살피는 데 피로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삶은 팍팍해지고 사회 구조는 복잡다단한데 누군가 응징하고 싶은 마음은 많아졌지만, 각각의 사정을 상대적으로 이해하다 보면 정말 분노를 표할 대상이 없어져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나쁜 악인이 대중문화계에서 등장해야 흥행에 성공하는 문화 심리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는 이유일 것이다. 피로증에 시달리게 하는 TMI 현상이 자칫 억울한 피해자를 낳을 수 있는 쉬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사냥개가 되기 쉬운 구조에 노출된 사회적 약자들이 여전히 엄존한다는 점이다. 그들 스스로 혼자 움직일 수 없는 구조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색하기를 바라고 있다. 다만 스코틀랜드 출신의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은 말했다.

“인생에서 좋은 패를 쥐는 것보다 오히려 좋지 않은 패를 갖고 게임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말도 되새길 필요가 있는 한국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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