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국민 약 70% 믿는 정교회
전쟁 발발 후 내부 균열 가속
우크라, 러 내통 소굴로 간주
사제 60명 친러·군 염탐 기소
‘문화 전쟁’까지 벌이는 러-우

5일 천지일보가 단독 입수한 우크라이나 정부 공문. 이에 따르면 에 따르면 문화정보정책부는 4일(현지시간)부로 정교회의 상징적인 곳인 키이우 페체르스크 수도원(Kiev Pechersk Lavra)에 대해 아침저녁으로 접근을 제한하는 명령을 내렸다. ⓒ천지일보 2023.07.05.
5일 천지일보가 단독 입수한 우크라이나 정부 공문. 이에 따르면 에 따르면 문화정보정책부는 4일(현지시간)부로 정교회의 상징적인 곳인 키이우 페체르스크 수도원(Kiev Pechersk Lavra)에 대해 아침저녁으로 접근을 제한하는 명령을 내렸다. ⓒ천지일보 2023.07.05.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우크라이나가 결국 70%에 달하는 국민이 믿는 정교회에 대해 출입문을 걸어 잠그기로 했다. ‘러시아 색 지우기’라는 논란 속에 당장 성직자들이 ‘종교탄압’이라고 항거하는 등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려오고 있다.

5일 천지일보가 단독 입수한 우크라이나 정부 공문에 따르면 문화정보정책부는 4일(현지시간)부로 정교회의 영적 심장부인 키이우 페체르스크 수도원(Kiev Pechersk Lavra)에 대해 아침저녁으로 접근을 제한하는 명령을 내렸다.

정부가 제재를 가한 키이우 페체르스크 수도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이스탄불 성 소피아 성당에 필적할 만한 곳으로 1051년 성 안토니우스가 세운 수도원이자 동방 정교회의 주요 건물로 꼽힌다.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영적 심장부인 키이우의 페체르스크 수도원(Kiev Pechersk Lavra).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영적 심장부인 키이우의 페체르스크 수도원(Kiev Pechersk Lavra). (AP/연합뉴스)

이번 조치와 관련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쟁으로 인한 유물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1000년 넘도록 지켜온 성 유물을 러시아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이탈리아와 프랑스, 독일, 러시아의 박물관으로 이전한다는 이유에서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유네스코와 합의를 이미 마쳤다고도 했다.

이를 위해 이날부로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출입구 한곳에서만 출입이 허용된다. 이에 따라 아침 예배와 기도회에 참석할 길이 모두 막힌다. 우크라이나 국민이라면 아침저녁으로 누구나 이곳을 오갈 수 있었지만 이 또한 모두 금지된다. 정부 명령은 이곳에 있는 교인들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소유물과 소지품을 별도로 제출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내세우는 유물 보호와는 달리 러시아 문화 지우기의 일환이라는 논란이 제기된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약 10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름(크림)반도를 장악하고 동부 지역 반군들을 지원하면서 자국 내 러시아 색을 지우려는 노력을 강화해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해부터는 사회 모든 부문에서 러시아 문화 지우기 움직임이 확산했다. 실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 뒤 우크라이나어 사용 장려를 법제화했고 소련 전쟁 영웅들을 비롯한 작가·예술가의 동상을 무너트렸다. 그러나 정교회까지는 손을 쓰지 못했다.

정교회는 기독교 종파 중 하나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구소련 지역과 유럽을 중심으로 약 2억 6000만명의 신자를 두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는 67%에 달하는 국민들이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믿는다. 가톨릭(12%)과 개신교(2.5%)가 그 뒤를 잇는다. 

우크라이나 내 정교회는 지난 2018년 모스크바 총대주교 산하의 정교회(UOC: Ukrainian Orthodox Church of the Moscow Patriarchate)와 키이우 총대주교 산하의 우크라이나 정교회(OCU: Orthodox Church of Ukraine)로 나뉘어졌다. 우크라이나에 탈러시아 정권이 들어선 뒤 종교적으로도 러시아에서 독립하자는 움직임이 일었고, 그 결과 모스크바 총대주교 관할에서 벗어난 OCU가 생겼다.

두 정교회의 반목은 전쟁 이후 심화했다. 지난 1년간 전쟁 과정에서 많은 우크라이나 국민은 UOC를 떠나 OCU에 합류했다. 이로써 OCU가 최대 교파가 됐으나 여전히 국민 수백만명이 UOC 신도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 이번 조치는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러시아의 침공을 지지했다는 혐의에 따른 후속 조치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11월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있는 페체르스카 라우라 수도원 단지 입구에서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SBU) 요원들이 교구민을 검색하고 있다. SBU는 이 정교회 수도원 성직자들이 러시아를 미화하고 러시아와 동맹을 맺을 수 있다는 등의 친러 행보를 보이자 수도원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AP/뉴시스)
지난해 11월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있는 페체르스카 라우라 수도원 단지 입구에서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SBU) 요원들이 교구민을 검색하고 있다. SBU는 이 정교회 수도원 성직자들이 러시아를 미화하고 러시아와 동맹을 맺을 수 있다는 등의 친러 행보를 보이자 수도원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AP/뉴시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은 정교회의 핵심 사제들을 스파이로, 이곳 교회를 러시아 내통자 소굴로 보고 있다. 실제 우크라이나 수사 당국은 전쟁이 발발한 지난해 2월 이후 모두 61명에 달하는 사제들을 친러 선전 혐의와 우크라이나 군 정보 염탐혐의로 기소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 1월 정교회가 러시아와 관계를 끊지 않은 데다 모스크바 총교구에 최고 영적 권위를 부여하는 교회 명령체계도 그대로 두고 있다고 밝혔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도 최근 언론에 나와 “교회 지도자들이 계속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페체르스크 수도원 성당의 대사제 파블로 레비드는 현재 러시아 침공을 지지했다는 혐의로 도주 감시용 발찌를 착용한 채 가택에 연금돼 있는 상태다. 고급 차를 타면서 교통위반 딱지를 떼는 경찰에 항의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한 그는 자비의 장군을 뜻하는 ‘파샤 메르세데스’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에 우크라이나 정교회 측은 이 명령이 불법이라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현재 사제들과 교인들이 현장에 나와 정부 측과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메트로폴리탄 클레멘스 우크라이나 정교회 시노달 정보·교육부 회장은 “수도원에는 수십년 동안 거주 등록을 한 많은 승려가 살고 있다”며 “법원의 결정 없이는 아무도 우리의 자유를 제한할 권리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아프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자 많은 사람들과 순례자들이 이곳에 온다. 정부 명령으로 신도들이 아침 예배에 참여하는 것을 막는데 교인들과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된다”면서 “형법 용어로 종교 활동과 종교적 의식 등 종교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라고 규탄했다.

우크라이나 법원에 출석한 페체르스크 수도원 원장 파블로 대주교.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법원에 출석한 페체르스크 수도원 원장 파블로 대주교. (AFP=연합뉴스)

한편 그간 ‘하나의 교회’를 추구해 온 동방 정교회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내부 균열이 가속화돼왔다. 이보다 앞서 2018년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러시아에서 독립하면서 불을 지폈다. 당시 정교회 세계총대주교가 러시아 정교회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교회로 자립하려던 우크라이나 정교회 공동체에 대한 ‘독립’을 승인하면서다. 이후 러시아 정교회는 세계총대주교청과의 관계 단절을 선언하고 독자 행보를 밟고 있다.

◆‘문화 전쟁’까지 벌이는 러-우크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우크라 자국 내와 러시아가 장악한 헤르손 등 점령지에서 물리적 전쟁뿐 아니라 ‘문화 전쟁’도 벌이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으로 치달으면서 언어 사용을 놓고 주민들 간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에서 한국계이자 소련의 전설적인 락 가수인 ‘빅토르 최’의 노래를 놓고 주민들 간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빅토르 최가 소련 시절 가수인 만큼 노래 대부분이 러시아어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지난달에는 우크라이나 유명가수 막스 바르스키가 크레멘추크에서 공연을 펼치고 나서 며칠 뒤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막스 바르스키는 무대에서 자신의 노래 ‘Берега(한국어로 해변)’를 러시아어로 부른 뒤 현지 주민이 경찰에 조사를 요청하면서다. 오데사의 한 카페에서는 러시아어를 쓰는 바텐더와 손님이 충돌하기도 했다.

이러한 다툼과 관련 또 다른 오데사 출신의 가수인 슬라바 카민스카야도 이번 러시아어 노래 사건을 두고 강력한 항의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우크라이나 헌법의 제10조를 게시하며 “우리 국가 소수민족의 언어 사용과 발전에 대한 자유 보장에 대해 저에게 설명해달라”면서 “법을 준수하는 시민 여러분, 도대체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라고 썼다.

또 현재 외국에 있다는 그는 한 명의 팔로워와의 개인 대화에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지 않을 계획이며 러시아어를 우크라이나어와 함께 쓸 것이라고 피력했다. 우크라이나 헌법 제10조는 우크라이나어를 유일한 국어로 하면서 러시아어나 기타 소수의 언어에 대한 사용·보호·개발을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주민증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가요를 공공장소에서 부르는 게 금지됐고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할 시 체포될 수도 있었다. 배움터인 일선 학교들은 러시아 교육과정을 채택해야 했고, 학생들은 러시아 국가를 외우는 등 우크라이나인이 아닌 러시아인이라고 교육받아야 했다.

이는 마치 과거 세계대전 전범국 일본이 일제강점기에 한글을 금지하는 등 내선일체라는 구호를 내걸고 민족말살정책을 추진한 대목과 겹친다. 언어가 문화를 이루는 데 핵심 요소인 점을 고려해 모국어부터 없애려 한 것이다.

이처럼 헤르손 점령 후 반년이 넘도록 TV와 거리 광고판에 러시아 행정당국의 선전이 이어졌지만, 오히려 강제성이 주민들의 반감을 사게 하는 등 역효과를 불러왔다. 실제 전쟁 전에 러시아어로 2개 국어를 하던 다수의 우크라이나인은 러시아어를 쓰지 않는 방향으로 틀기도 했다.

러-우크라 전쟁이 2022년이 아닌 이미 2014년에 예고 됐다는 박병환 소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 이 지도에서 오른쪽 청녹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러시아어를 주민 80%이상이 사용하는 지역이다. 현재  전쟁은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제공: 박병환 유라시아연구소장) ⓒ천지일보 2023.03.04.
러-우크라 전쟁이 2022년이 아닌 이미 2014년에 예고 됐다는 박병환 소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 이 지도에서 오른쪽 청녹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러시아어를 주민 80%이상이 사용하는 지역이다. 현재 전쟁은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제공: 박병환 유라시아연구소장) ⓒ천지일보 2023.03.04.

이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가 자국 내에서 러시아어 사용 전면 금지 등 강경한 정책을 편 것에 대한 대응이라는 시각도 있다. 과거 우크라이나가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역대 정부는 친서방, 친러 노선이 교차했는데, 우크라계가 다수인 서부와 러시아계가 다수인 동부는 지지하는 정파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그러던 중 2014년 극심한 정치적 혼란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서부 지역 과격 민족주의 세력이 당시 친러 성향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합법 정부를 폭력으로 무너뜨리고 친서방 정권을 수립했다. 그 이전까지 우크라이나는 극단적인 친서방-친러 외교정책을 취하지 않았으나, 새 정부는 우크라 내 러시아어 사용 전면 금지 등 강경한 정책을 폈다.

이에 러시아도 맞대응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방 언론이 거의 보도하지 않았지만 우크라군이 소위 ‘반란 지역’에 대해 ‘인종청소’ 수준의 만행을 자행했고, 이에 지역 지방 정부들이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해 헤르손 등을 장악, 같은 방식의 정책을 폈다는 시각이다.

결론적으로 ‘문화 말살’ 비판이 일자 러시아 측은 ‘러시아의 날’을 맞아 지난달 12일(현지시간) 헤르손주에서 우크라이나어를 러시아어와 함께 공용어로 정하는 법령을 채택, 시행한다고 밝혔다.

[헤르손=AP/뉴시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을 완전히 장악한 러시아가 '위장' 주민투표를 시행해 이 지역을 '헤르손 인민공화국'으로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은 지난 3월 7일 헤르손 주민들이 러시아의 점령에 반대하며 러시아 군인들을 향해 구호를 외치는 모습. 2022.04.28.
[헤르손=AP/뉴시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을 완전히 장악한 러시아가 '위장' 주민투표를 시행해 이 지역을 '헤르손 인민공화국'으로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은 지난 3월 7일 헤르손 주민들이 러시아의 점령에 반대하며 러시아 군인들을 향해 구호를 외치는 모습. 2022.04.28.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주민들이 23일(현지시간) 러시아 영토로 편입 여부에 대한 주민투표를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주민들이 23일(현지시간) 러시아 영토로 편입 여부에 대한 주민투표를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지난 3월 29일(현지시간) 키이우의 페체르스크 수도원 내에서 기도하는 친러 성향 우크라이나 정교회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3월 29일(현지시간) 키이우의 페체르스크 수도원 내에서 기도하는 친러 성향 우크라이나 정교회 (로이터/연합뉴스)
페체르스크 수도원 밖에서 기도하는 UOC 교인들. (AFP/연합뉴스)
페체르스크 수도원 밖에서 기도하는 UOC 교인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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