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철 정치학 박사ㆍ고려대 강사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는 뜬금포를 날렸다. 지난 1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다. 이 대표는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서 영장실질심사 받고 검찰의 무도함을 밝히겠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런데 이 말은 당초 배포된 연설 원고에 없는 내용이었다. 이 대표는 교묘하게도 원고에는 싣지 않고 말로만 했다. 그래서 그렇게 크게 보도되지는 않았다. 이 대표는 불체포 특권의 당사자이다. 자신이 이미 이 특권을 이용해 구속을 피했기 때문이다. 써먹을 만큼 써먹고서는 ‘뒷북’이라는 비판이 대번에 따라온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이재명 대표를 향해 불체포 특권 포기 선언 ‘쇼’라면서 진정성이 있다면 여야 의원 전원의 불체포 특권 포기 서약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며 압박했다. 이 대표는 기자들이 서약에 동참하겠냐는 질문을 던지자 입을 꾹 닫았다. 교섭단체 연설에서 의기양양하게 포효하던 이 대표는 온데간데없다.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은 “국회의원은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44조 1항의 규정에서 기인한다. 권위주의시대에나 통용됐던 특권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나온 지는 이미 오래다. 이런 일이라면 앞장서기 좋아할 이 대표도 이미 수차례 공약을 했다.

이 대표는 지난 지방선거 당시인 2022년 5월 22일 충청북도 청주 유세에서 “불체포 특권을 제한해야 한다. 100% 동의할 뿐만 아니라 제가 주장하던 것입니다. 10년 넘도록 먼지 털 듯이 탈탈 털린 이재명 같은 깨끗한 정치인에게는 불체포 특권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전 5월 11일에는 중앙선대위 출범식에서 “제가 인생을 살면서 부당한 일을 한 일이 없기 때문에 검찰 경찰 수사 아무리 압박해도 전혀 걱정되지 않습니다. 자꾸 방탄, 방탄하는데 여러분들은 물도 안든 물총 두렵습니까?”라며 자신감을 과시했다. 하지만 지난 2월 27일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회부됐을 때 이 대표는 보란 듯이 불체포 특권을 적극 활용했다.

이 대표는 싹 말을 바꿨다.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보고되기 전날인 2월 23일 이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자청해서는 “강도·깡패가 날뛰는 무법천지가 되면 당연히 담장이 있어야 하고 대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사법리스크가 아닌 검찰리스크다”라며 이 대표 특유의 말재간으로 프레임을 바꾸려 애썼다. “국경을 넘어 오랑캐가 불법 침략을 하면 열심히 싸워 격퇴해야 한다. 저는 그걸 정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강조하기도 했다. 대선 당시 불체포 특권을 공약하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시엔) 지금처럼 없는 사건을 만들어서 조작하는 걸 대놓고 할 것까지는 예상 못했다”며 “상황이 참으로 엄혹하게 본질적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상황을 호떡처럼 뒤집고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이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했던 말도 있다.

2016년 11월 28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향해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을 하든 퇴진을 하든 임기 마치고 나오든, 딱 나오는 그 순간에 소위 소추권 면제가 해소되는 순간부터 그 즉시 영장 준비해서 청와대 밖으로 나오는 그때 딱 잡아서 수갑 채우는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독하게 들이대는 사람이 자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렇게 거꾸로 일 수 있을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독하게 해대는 사람이 자신에 대해서는 상황이 바뀌었다고 태연하게 말한다.

민주당도 문제다. 결국 민주당 의원들이 이 대표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표 방탄 후에도 민주당은 자신의 의원들을 세 명이나 방탄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서는 찬성표를 던졌다.

당장 송영길 전 대표가 이 대표의 불체포 특권 포기 발언에 발끈하고 나온다. 송 전 대표는 “불체포 특권이 없으면 어떻게 검찰 독재 정권과 싸울 수 있나”라며 “포기하자는 사람은 검찰 독재 정권에 항복하겠다는 투항주의자”라고 했다.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인사의 발악이라 국민들은 듣는다.

민주당 안에서는 이 대표를 수사하는 검사를 상대로 한 검사 탄핵 소추안 발의가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는 소식도 곧바로 전해졌다. 친명계 강경파로 통하는 김용민 의원이 주도하고 있는데 벌써 50명 조금 넘게 동의한 상황이라고 한다. 검사 탄핵 소추안 발의에 필요한 종족수인 100명을 채우기 위해 부산히 움직이고 있는 모양이다. 김용민 의원은 유튜버에게 이재명 대표를 수사하는 검사의 탄핵을 요구하는 청원을 올려달라고 해 물의를 일으킨 인물이기도 하다. 불체포 특권이 안 되면 수사 검사를 직접 ‘날리겠다’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다.

이재명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불체포 특권 포기를 돌발적으로 선언하는 퍼포먼스를 한 데는 이 대표 나름의 계산이 있는 것 같다. 송영길 전 대표가 반발하고 있듯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사건과 관련 물타기를 하려는 것이다. 이슈를 그쪽으로 옮기고 그쪽으로는 불체포 특권을 포기해서 자신을 향한 화살을 피하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더 이상 넘어오지 않을 거라는 계산도 한 것 같다. 무엇보다도 계속 버틸 수 없는 매서운 국민 여론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의식도 한 것 같다.

민주당을 보고 있는 국민의 시선이 차갑기만 하다. 이 대표 체제 하에서만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4명이나 불체포 특권으로 방탄을 했다. 법 앞에서 일반 국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특권이다. 국민들에게는 법을 지키라고 하면서 국회의원은 법을 대놓고 무시하는 행태를 보면 국민들은 ‘오물’을 떠올릴 것이다. 이 대표는 자신의 문제기 때문에 그 오물을 무릅쓰고 있으며, 민주당에다 끼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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